[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행정수도 이전'을 꺼내들자, 주요 보수·경제지들은 부동산 문제를 덮으려는 국면전환용 카드라며 여야 정치권 갈등만 부추기는 안이라고 비판에 나섰다. 그러나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대의가 있고, 충청권 민심과 해당 지역구 의원들의 반응에 미래통합당이 대놓고 반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비판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세종시로의 행정수도 이전을 제안했다. 21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는 '행정수도 완성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구체적 논의를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김 원내대표 발언 이후 여권에서는 유력 대권주자인 이낙연 의원, 박병석 국회의장, 노무현 정부 행정자치부 장관을 역임한 김두관 의원 등이 연일 행정수도 이전을 역설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국무회의에서 '한국판 뉴딜'은 국가발전의 축을 수도권 중심에서 지역 중심으로 이동시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세종시로의 행정수도 이전을 제안했다. (사진=연합뉴스)

2004년 헌법재판소는 서울이 수도라는 점은 '관습헌법'에 해당한다며 수도이전에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당시 헌법재판소는 '세월의 흐름과 상황의 변화에 따라 국민적 합의가 상실된 경우 관습헌법은 자연히 사멸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지도부는 개헌 없이도 행정수도 이전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김 원내대표 지시로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자체 긴급 여론조사를 실시, 찬성여론이 높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제1야당인 통합당은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이 났다는 점을 강조하며 '부동산 정책실패를 회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사실상의 거부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충청권 민심을 의식한 통합당은 대놓고 반대입장을 밝히지는 못하고 있다. 이미 당 내에서는 정진석 의원 등 충청권 의원들이 민주당 제안 수용·협의 의사를 밝히고 있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가 "행정수도 이전이 아닌 세종시 자체를 좀 더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이라면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논의할 생각이 있다"고 여지를 뒀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부동산 정책 실패를 모면하기 위한 국면전환용 카드가 아니길 바란다는 우려를 내비치며 개헌을 포함한 국민 설득 로드맵을 민주당이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보수·경제지는 여권의 행정수도 이전 제안이 정치갈등을 부추기는 진정성 없는 안이라며 부동산 문제 때문이라면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내놓으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중앙일보는 22일 사설 <수도 이전이 부동산 분노 막는 방패인가>에서 "파급력이 엄청난 국가적 대사를 '부동산 실패 비난'이란 곤경에서 벗어날 카드로 꺼내들었다면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썼다.

중앙일보는 "지금은 코로나19가 덮치고 있는 위기 상황"이라며 "이러한 시기에 뜬금없이 천도라는 논쟁적인 이슈를 여당이 던지는 게 과연 적절한지 되묻고 싶다. 안 그래도 갈등 중인 여야가 소모적으로 싸울 명분만 하나 더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사설 <민심 들끓자 '그린벨트' '수도 이전' 마구 던지고 보나>에서 "행정수도 이전은 2004년에 위헌 판결이 났기 때문에 개헌하거나 헌재가 절차를 거쳐 결정을 바꿔야 가능하다"며 "모두 지난한 일이다. 당장 실현 가능하지 않다. 찬반논란으로 다시 나라가 두 쪽날 수도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부동산 정책 실패로 민심이 들끓자 누군가 국면전환용으로 급조했고 이를 정권 전체가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며 "수도 이전을 다시 꺼내면 2022년 대선에서 충청표를 얻는 데 유리하다는 판단도 했을 것"이라고 썼다.

조선일보는 이날 기사에서 헌법재판소 구성까지 언급하며 "헌재를 믿고 수도 이전을 밀어붙여 보겠다는 계산"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기사 <與가 믿는 구석은 헌재?… 재판관 9명 중 6명이 親與 성향>에서 "헌법재판관 9명 중 8명이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임명되었고, 이 8명 중 6명이 문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 민주당 지명·추천으로 임명됐다"면서 "600년간 자리 잡은 '수도=서울'을 무슨 법논리로 16년 만에 뒤집을 수 있느냐는 지적이 많다"고 보도했다.

7월 22일 중앙일보 사설<수도 이전이 부동산 분노 막는 방패인가>, 조선일보 <與가 믿는 구석은 헌재?… 재판관 9명 중 6명이 親與 성향>

매일경제는 사설 <그린벨트 해프닝 이어 난데없는 수도이전론… 정공법으로 가라>에서 '정공법'은 서울 주택공급 확대라고 했다. 매일경제는 "서울 집값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종시를 수도로 만든다는 발상에는 아연함을 금할 수 없다"며 "수도권 과밀이 문제라고 하는데 국가 경쟁력을 높이려면 수도권 기능을 더 심화시켜야 한다는 합리적 반론이 얼마든지 존재한다. 집값 잡자고 수도를 옮기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이어 매일경제는 "서울 집값은 서울에 공급을 확대함으로써만 잡을 수 있다"며 "대다수 전문가들이 재건축·재개발 기준 완화와 도심 고밀도 개발을 대책으로 주문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가격이 출렁이고 일부 계층이 수혜를 본다 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시장을 정상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한국경제는 사설 <수도 이전·개헌·그린벨트…이렇게 막 던질 이슈인가>에서 "임기가 후반기로 접어든 현 정부에서 추진하기엔 버거운 이슈이기도 하다.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얘기"라며 "여권의 수도 이전과 개헌론이 진정성 없는 선거용일 뿐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 있다. 만약 여당이 수도 이전과 개헌을 반드시 추진할 의지가 있다면 차라리 2022년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국민의 뜻을 묻는 것이 합당하다"고 지적했다.

정부여당의 '국가균형발전'을 내세운 행정수도 이전 방침은 정부 집권 4년차에 나왔다는 점,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일고 있다는 점, 개헌을 필요로 한다는 점 등 때문에 국면전환용, 선거용이라는 의심과 비판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대의명분이 정치·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논의 자체를 해서는 안된다는 식의 비판엔 의문이 뒤따른다.

경향신문은 사설 <지역균형발전과 분권, 범국가적 과제로 추진해야>에서 "당·청이 작심하고 동시에 '국가균형발전'을 의제화하고 나선 형국"이라며 "야당도 행정수도와 지역공생을 놓고 생산적으로 협의할 때가 됐다"고 썼다.

경향신문은 "수도권 집중의 폐해는 재론할 필요도 없다. 국토의 12%인 수도권에 인구 50%, 상장회사 72%, 예금 70%, 대학·일자리가 몰려있다"며 "과밀화된 수도권은 집값·미세먼지·도시열섬 고통에 시달리고, 청년들이 빠져나간 지방은 읍·면·동의 40%가 30년 내 소멸될 것으로 예고됐다"며 "특단의 근본 처방이 없으면 수도권과 지방이 공멸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경향신문은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대거 옮겨진 2011~2015년 수도권 인구 집중이 하락·둔화됐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면서 "8대 2에서 시작해 올해 75대 25가 될 국세·지방세 비율을 2022년 7대 3으로 바꾸겠다는 이행계획도 지키고, 지방자치법 개정과 자치경찰제 입법, 고위공직자의 다주택 처분에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겨레는 21일 사설 <김태년 "국회·청와대 세종 이전", 실행으로 옮기자>에서 "특히 '행정수도 완성'을 국가 균형발전과 함께 부동산 문제 해법으로 제시한 것은 시의적절했다고 본다"면서 "중첩된 문제들을 해결할 창조적 해법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수도권 주택공급 확대책은 시민사회로부터 투기를 조장하는 실패한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은 과거 판교, 위례 등 신도시 개발이 '로또'로 드러나 집값 전반을 상승시켰다고 평가한다. 토지공공성 개념을 토대로 실수요자 중심의 시장을 재편해내지 못한다면 부동산 투기 광풍을 잡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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