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최선욱 KBS 공영미디어연구소] 지난 20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는 ’식물상임위’, ‘불량 상임위’로 불렸다. 과방위 내 여야 간사 간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법안을 심사해야하는 위원회 회의가 열리지 못하거나 연기되어 결국 폐기된 법안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방위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원자력안전위원회 3개 정부부처의 업무관련 87개 소관법률의 제·개정 권한을 갖고 있다. 하지만 20대 국회 기간 동안 상임위원회에 접수된 총 1,029개 법안 중 126건(12.2%)만이 가결되었다. 896개 법안은 임기만료 또는 대안 반영으로 폐기되었다.

과방위 소관법률 중 방송법의 경우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20대 국회 동안 접수된 방송법 개정안은 총 98개였으며, 이중 가결된 법안은 4개로 가결율은 불과 4.08%였다. 98개 법률 개정안의 총 개정조항 685개 조항 중 불과 19개 조항만이 개정되었다. 이중 상당수의 조항이 일본식 용어인 ‘당해 법인’을 ‘해당 법인’으로 수정하거나 한자용어인 ‘잔임 기간’을 ‘임기 중 남은기간’으로 수정하는 개정이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회의실. ⓒ민중의소리

국내 미디어시장에서 넷플릭스 등 해외 거대 테크 기업의 미디어 서비스가 차지하는 점유율은 뚜렷하게 성장하고 있고, 이들 기업들이 국내 방송산업의 콘텐츠 제작, 유통 등 전반에 미치는 영향 역시 커지고 있다. 국내 방송시장은 ‘시청률이 좋으면 광고가 판매 된다’는 기본적인 시장의 작동원리조차 무너지고 있고 한류의 원조 격인 드라마는 투자를 해도 제작비의 회수가 되지 않는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등한시 한 채, 정부는 지난 6월 범정부합동 전략으로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을 발표했지만 현실감은 크게 떨어진다. 과연 이 전략이 국내 디지털미디어 산업과 한류 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인지 내용을 접하는 순간 깜짝 놀랐다. 국내 콘텐츠 산업은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데 국회의 미디어 관련 입법 성과조차 초라하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국내 많은 산업들이 경기침체의 영향을 받고 있는 반면, 국제적으로 미디어 이용과 소비시간은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국제적인 경기침체 속에서도 산업별로 미치는 영향은 크게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항공, 여행, 제조 산업 등은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콘텐츠 중심의 미디어 산업은 오히려 위기 속에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산업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

21대 국회의 과방위는 미디어 분야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국내 창의산업이 글로벌 분업화의 종단에서 거대 해외 테크 기업에 콘텐츠만 공급해주는 역할로 소모되기 전에 국내 선순환 구조를 조성해야 한다. 글로벌 경계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미디어 시장에서 어떤 국내 방송사나 미디어 기업이 해외 테크 기업의 콘텐츠에 대응하게 할 것인지, 누가 창의 산업의 일자리를 창출하게 할 것인지, 누가 시장의 실패요인을 보완하게 할 것인지, 누가 사회적 격리로 인해 앞으로도 TV 앞에 앉아있을 해외 시청자들에게 한국인들이 생각하고 살아가는 모습의 콘텐츠를 생산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틀과 그에 맞는 법률을 입안해야 한다.

과거 발의된 법안을 재구성하거나 용어수정 수준의 법안과 근시안적인 법률 개정안을 얼마나 많이 발의했는지로 의원의 성과를 자족할 때가 아니다.

* 해당 칼럼은 개인 SNS에 게재된 것으로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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