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장영]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누구라도 쉽게 풀어낼 수 있어 보이지만 오랜 시간 상황에 길들여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억압과 복종이 반복되면 그렇게 굳어버릴 수밖에 없다. '봄날의 개'가 그렇듯 말이다.

악몽에 몸서리치는 문영을 안아주는 강태와 그런 그를 꽉 붙잡으며 "도망가. 빨리. 당장 꺼져"라고 울부짖는 모습은 아프게 다가온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키고 싶은 사람을 위한 외침이자, 자신을 지켜달라는 간절한 몸부림이기도 하니 말이다.

성에 갇힌 공주를 구하러 오는 왕자를 죽여버리겠다는 어머니의 말은 그렇게 문영을 지배하고 있다. 어린 시절 자신의 집을 찾은 강태가 건넨 꽃을 짓밟고 "꺼져"라고 외친 것 역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도 문영을 지배하는 것은 그의 엄마다.

tvN 토일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강태를 짓누르고 있었던 것도 어머니였다. 악몽은 아니지만 그를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든 것 역시 어머니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형에게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는 강태의 삶이 정상일 수는 없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해줬던 그 말들은 성장한 후에도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족쇄처럼 채워져 있다.

이제 문영은 과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긴 생머리를 잘라버리는 것이 어머니에게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게 힘들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강압적인 태도에 길들여진 문영은 어머니가 곁에 없어도 쉽게 이를 거스를 수 없다.

하지만 문영이 대단한 것은 스스로 악몽이 된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벗어나고 피할 수도 있음에도 모두가 두려워하는 그 성으로 들어선 것은 자신과 마주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홀로 버티고 싸우기 어려워 강태에게 도움을 청하고, 상태를 이용해 함께 동거를 시작했지만 분명한 것은 문영은 과거의 자신과 싸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장 힘겨운 시간 자신 곁에 있었던 아이 강태는 이제 성인이 되어 다시 자신 앞에 있다. 그리고 그때는 도망쳐서 미안하다고 한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롭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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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에 시달리는 문영에게 강태는 선물을 줬다. 악몽인형인 '망태'다. 나비 악몽을 꾸는 형을 위해 강태가 직접 만들어준 것이었다. 그것을 이제는 문영에게 줬다. 고통스러워하는 문영을 위한 강태의 마음이 담긴 선물이기도 했다.

문제는 망태를 상태도 좋아한다는 것이다. 동생이 자신을 위해 직접 만들어준 인형이다. 이를 문영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다섯 살 아이들처럼 싸웠다. 문영은 코피가 흐르고, 서로 밀리지 않고 망태를 가지기 위해 싸우는 이들로 인해 둘로 쪼개진 망태로 싸움은 끝났다.

어린아이처럼 싸우는 이들은 성장을 멈춘 어른들이었다. 순수할 정도의 철없음은 그들이 어린 시절에서 멈춰있음을 잘 보여주니 말이다. 그런 그들의 성장이 이뤄진다는 점이 중요하게 다가온다.

강태는 문영을 통해 어머니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자신에게 쓴소리를 하고, 우산도 씌워주지 않았던 어머니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강태다. 하지만 그는 그 증오와 같은 감정만 기억하고 있었지만, 실제 어머니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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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짜장면만 싫어한 것이 아니라 짬뽕도 싫어했다. 두 아들이 먹는 것만 지켜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그랬다. 돈이 없어도 어린 아들들이 좋아하는 짬뽕을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게 어머니이니 말이다.

그 시절 딸 하나를 키우는 것도 벅차고 힘들었다는 주리 어머니의 이야기에 강태가 울컥해 눈물을 쏟아내는 것은 당연했다. 성치 않은 아들까지 두 아이를 홀로 키워야 하는 어머니의 삶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그건 지나 봐야 알 수 있는 감정이니 말이다.

작은 우산에서 밀려나 홀로 비를 맞는 강태를 부르는 엄마와 형. 잠든 강태를 안쓰럽게 쓰다듬으며 서럽게 울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모습을 강태는 애써 잊으려 했다. 그렇게 독한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살아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문영은 억압의 상징이었던 머리를 잘랐다. 그리고 그렇게 강태에게 자랑하듯 말하는 문영에게 예쁘다고 이야기하는 강태는 행복했다. 자신을 평생 억압했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 있는 문영을 정말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태가 정리한 머리는 자랑이었지만, 상태에게는 안 좋은 변화로 다가왔다. 긴 생머리가 좋았다는 상태는 그렇게 코피 나게 서로 싸우는 관계가 되었다. 상태가 머리카락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문영의 변화는 급격하게 이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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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이 목줄을 끊어내자 강태도 일탈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평생 FM처럼 살아왔던 강태가 병원을 나가지 않고 하루를 쉬며 문영과 함께했다. 자신에게 일을 도와달라는 원장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해서 문영이 다시 병원에 나올 수 있게 만드는 행동 역시 그전의 강태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멋진 만년필에 욕심이 나서 팬이라는 남성과 친한 모습을 보인 문영과 그런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강태의 질투는 재미있게 다가왔다. 강태가 문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장면이니 말이다. 강태의 변화는 빠르게 이어지기 시작했다.

모든 상황에서 오직 참는 것으로 버텨왔던 그가 폭주했다. 문영을 때린 환자 보호자를 때리는 모습은 그동안 강태에게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과거의 강태라면 절대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강태는 그렇게 스스로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무급 정직을 당하고 나가는 강태는 웃었다. 이 상황이 서럽거나 두렵다기보다는 후련했다. 그동안 한 번도 거스르지 못했던 그 지독한 목줄에서 이제야 벗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직을 당한 채 문영 앞에서 이제 놀러 가자며 환하게 웃는 강태는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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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의 어머니 도희재는 괜찮은 병원에 있다. 하지만 그게 누구인지 모른다. '클레멘타인'을 부른 환자가 존재하지만 이를 부정한다. 문영의 수업을 듣고 있다. 문영의 어머니라면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문영은 자신의 어머니라 생각하지 않는다.

도희재는 박옥란 환자가 맞을까? 도희재 작가의 광팬이자 성형 중독에 빠져 있는 그가 과연 도희재일까? 이런 상황에서 문영의 아버지인 고대환은 잠깐 돌아온 정신 속에서 딸에게 너도 어머니처럼 될 거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은 모든 문제의 시작이자 끝이 아내이자 문영의 엄마인 도희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남주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출판사 대표인 이상인을 짝으로 맺으려는 시도는 아쉽게 다가온다. 아직 과정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몰아넣어 하나가 되도록 하는 방식이 과연 좋은 것인지 가늠이 안 된다. 상태의 변화가 변수로 다가올 수도 있을까?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상태의 변화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미제 사건을 풀어낼 수 있다. 오 원장도 시도했지만, 여전히 나비에 대한 두려움이 큰 상태가 나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밝혀낼 수 있을까? 상태는 그런 점에서 미스터리한 존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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