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은 세 가지 면에서 충격이다. 첫째는 현직 시장인 그가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사실 자체이다. 둘째는 그런 선택의 이유로 유력한 게 성추행 관련 고소장이 경찰에 접수된 정황이라는 거다. 셋째는 그의 죽음을 두고 이후 벌어진 논란이 한국사회의 ‘민낯’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는 것이다.

일부 유튜버들이 고인을 조롱하고 모욕하며 돈벌이에 몰두하는 것은 진지하게 논할 문제조차 못 된다. 본인들의 금전적 이득 외에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는 행위가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뉴스를 보며 받는 고통이 이런 주변적 현상들로부터 온 것은 아니라는 거다. 그중에서도 이 사건을 두고 정부 여당 및 지지자들 일부가 보이는 모습은 실망과 좌절을 거듭하게 한다. 비극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심리는 이해하지만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말들을 동원해 전형적인 ‘2차 가해’의 행태를 반복하는 것은 중단해야 한다.

여당 관계자들은 이런 저런 언론에 등장해 연일 박원순 서울시장을 가해자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거나, 흠이 있을지 몰라도 공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런 발언은 맥락을 떠나 문장 하나만 떼어 놓고 보면 일리가 있는 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성추행 피해를 당한 여성이 고소장을 경찰에 제출한 게 죽음의 이유 중 하나 아니냐는 의혹이 있는 상황에선 오히려 이런 발언이 ‘2차 가해’의 맥락을 갖게 될 수 있다. 주의하고 자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11일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를 찾아 “그 분(피해호소인)의 이야기는 중요하고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똑같은 이유로 박원순 시장의 업적 또한 충분히 존중받고 추모할 가치가 있다”고 했다. “똑같은 이유로”라는 대목 덕에 마치 피해 호소인과 박원순 서울시장 양쪽의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허윤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전혀 다른 얘기도 나오고 있다”며 마치 ‘또다른 진실’이 있다는 식의 언급도 했지만 근거를 들지는 않았다. 원래 “얘기”가 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인데, “전혀 다른 얘기”가 있다니, 무슨 뜻이겠는가.

박원순 시장이 왜 극단적 선택을 했는가에 대해선 사실 확인이 어려워졌다. 현직 지자체장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여성의 주장이 또다시 제기된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고인이 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죄’를 따지는 일과 별개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은 피해호소인이 위축되지 않고 자신의 피해를 호소할 수 있는 배려를 하는 것이다.

애도와 추모는 고인의 모습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한 행위이다. 우리 사회가 박원순 서울시장의 어떤 모습을 기억하고 기려야 하겠는가? 여성 인권의 향상을 위해 힘쓰고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노력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스스로 만들어 온 삶의 한 축이었다. 그러한 삶의 모습대로 이 사건을 대하는 것이 진정으로 고인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길이다. 피해 호소인에 대한 신상털기나 음모론적 비난으로 고인의 삶에서 배우고 따라야 할 부분까지 부정하고 모욕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1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영결식에서 유가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공동취재단)

미래통합당은 이번 일을 두고 여러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피해 호소인에 대한 ‘2차 가해’를 염려하며 더불어민주당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 성인지적 감수성을 제고한 결과라면 환영할만한 일이다. 물론 그렇게 보기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배현진 통합당 의원이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박주신 씨의 병역비리 의혹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모습이다. 이는 통합당이 어떤 의도를 갖고 이 사건을 대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

공교롭게도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같은 시기 세상을 떠난 일은 언론이 세상만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많은 언론이 박원순 서울시장과 백선엽 대장의 빈소와 조문 분위기를 비교하며 진보와 보수가 갈리고 있다고 보도헀다. 그러나 두 사건은 명백히 성격이 다르다. 두 사건을 동렬에 놓고 진보와 보수의 태도 문제로 보는 것은 ‘세상만사는 정파적 이해관계가 전부’라는 인식을 전제하지 않고는 설명이 안 된다.

정치와 언론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망을 보는 시각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진보와 보수의 충돌, 추모와 2차가해의 충돌, 무죄추정과 내로남불의 충돌, 온통 충돌뿐이다. 이런 온갖 ‘충돌’의 구도 역시 ‘정파적 이해관계’를 전제한 것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런 시각을 통해 양대 정치 파벌의 진정성(sincerity)을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논의를 끝내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원칙, 기준, 해법을 찾는 노력이다. 언론과 정치가 진작부터 그렇게 해왔다면, 우리는 오늘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됐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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