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EBS가 수신료 현실화 논의에 뛰어들었다. 한국방송학회·한국언론학회·한국언론정보학회가 주최하고 EBS가 후원한 공동심포지엄에서 강명현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교수는 “EBS가 공영방송으로서 안정적인 공적재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신료의 20%를 배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EBS는 2000년 공사로 전환된 이후부터 전체 재원에서 수신료가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 2000년 수신료 12.1%, 국고·기금 25.2%, 자체 재원 62.7%였으나 2018년에는 수신료 7.3%, 국고·기금 23%, 자체 재원 69.7%로 집계됐다. EBS 2019년 결산 현황을 보면 전체 재원 중 공적 재원이 31.7%, 상업적 재원이 68.3%로 공적 재원보다 상업적 재원에 기댄 구조다.

8일 서우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20 공동심포지엄' <변화하는 미디어지형에서의 공영방송 가치 확립>의 세 번째 세션 발제자들 (사진=한국방송학회)

공사인 EBS의 이러한 ‘기형적 재원구조’는 상업적 재원을 마련하기 어려워지면서 생존의 문제로 다가왔다. EBS 역시 OTT 등장 등으로 광고, 협찬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동안 상업적 재원을 충당하던 출판 수익마저 줄어들어 지금의 상업재원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다. 출판 수익이 전체 재원의 40~30% 내외에 달하는 주요 재원이었지만 2015년 이후 출판 수익이 급감했다.

강명현 교수는 EBS 재원구조 정상화를 위한 개선 방안으로 ‘수신료 배분비율 인상’안을 꺼냈다. 강 교수는 “EBS는 수신료 배분 비율을 현 3%에서 최대 20% 수준으로의 지속적 증액을 요구해왔다”고 말했다. 현재 EBS는 전체 수신료의 2.8%를 배분 받는다.

현재 전체 수신료 600억 중 3%가 아닌 20%를 EBS가 받게 되면 1300억 원으로, 이는 EBS 매출액 2500억 원의 약 50% 수준이다. 수신료 50%에 기타 공적 기금 20%가 합쳐진다면 전체 재원의 70%를 공적 재원이 감당하는 재원구조가 가능해진다는 계산이다.

또한 해외 교육채널 수신료 분담 비율을 참고하면 20%가 적당하다고 했다. 영국 BBC는 전체 수신료의 29%를, 일본 NHK는 20%, 프랑스는 16%를 교육채널에 배분해 평균적으로 수신료의 20%가 적정 비율이라는 주장이다.

봉미선 EBS정책연구위원이 준비한 토론문에 실린 '2000년 EBS 공사화 이후 재원 구조' 자료

강 교수는 이를 위해 ‘방송법’이 아닌 ‘방송법 시행령’을 일부 개정하자고 제안했다. 방송법 시행령 제49조는 교육방송에 대한 수신료를 ‘매년 수신료 수입의 100분의 3에 해당’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수신료 수입의 100분의 20의 범위에서 방송통신위원회가 정하여 고시하는 금액’으로 수정하자는 것이다. 방통위가 수신료 배분을 조정하게 되면 법을 바꾸지 않아도 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일 것이라고 소개했다. 다만, 이 방법은 KBS 반대 등으로 실효성이 없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 교수는 공적재원을 늘리기 위한 장기 대책으로 ‘수신료는 KBS’라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 EBS가 자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현재 KBS가 주체로 되어있는 수신료 징수·결정 체계를 개선해 EBS에도 수신료 금액 자체 산정, 발의권을 부여하고 방통위가 이를 조정해 반영하는 체계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방송법 개정을 거쳐야 하지만 정파적 논쟁으로 고착화되어 있는 수신료 정상화 문제를 개선해 나갈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봉미선 EBS 정책연구원은 “방통위가 수신료 재원틀에 개입하는 건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일”이라며 일부 반대 의견을 냈다. 봉 연구원은 “방통위는 공영방송의 거버넌스를 비롯해 재허가, 방송평가 등 공영방송을 규제하는 기구인데, 규제기구가 TV수신료 재원의 틀까지 개입한다면 공영방송의 독립성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신 TV수신료의 성격, 범위, 합리적인 수신료 산정과 사용, 징수 등을 객관적이고 전문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TV수신료위원회’를 별도로 설치하고 위원 중 방통위 몫은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플로어에서 질문하는 유시춘 EBS이사장 (사진=한국방송하회)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유시춘 EBS이사장이 직접 타개책을 묻는 등 EBS의 절박함을 나타냈다. 유시춘 EBS 이사장은 정준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 겸임교수에게 “공영방송 시스템 전체가 임계점에 다다른 상황에서 EBS의 실현 가능한 실천안은 무엇이 있을까”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KBS나 MBC처럼 방송사 자체의 혁신안이 먼저 나와야 한다”며 “방송사가 어떤 부분을 역점에 두고 나아갈 것이며 어느 정도에 돈이 필요하고, 시민과 어떻게 소통할지 제시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수신료 제도에 ‘바우처’ 제도, 기부금 제도를 활용하는 등 시민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제도를 새롭게 설계하는 실험도 할 수 있다”며 “현재 2500원의 수신료에서 500원은 시민들이 직접 채널을 선택해 지불하는 식으로 시청자 참여방법을 결합한 새로운 수신료 제도를 고민해 봐야 한다”고 했다.

이밖에 넷플릭스 등 별도의 세금 없이 이익을 취하는 OTT에 대해 ‘구글세’와 같은 세금을 받아 공적 자원에 투자하는 방식의 제도도 거론됐다.

EBS는 2017년 이후 매년 100억 이상의 적자경영 상태로, ‘자이언트 펭TV’의 성공으로 2018년 대비 2019년도 적자폭이 줄었지만 2019년 당기순손실액은 101억원에 달한다. 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는 지난달 ‘EBS 창립 20주년’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기형적인 재원구조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앞서 5월 31일 발표된 <2019 사업연도 EBS 경영평가보고서>에서는 공적 재원보다 상업적 재원에 의존하는 현재의 재원 구조로는 EBS가 교육방송으로서의 정체성과 가치를 담아내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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