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법안 발의에 필요한 최소요건인 국회의원 10명의 동의를 얻어 발의됐다. 차별금지법을 당론으로 정한 정의당은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등 거대 양당에 동참을 호소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금지법'을 '평등법'으로 명칭을 바꿔 입법 촉구에 나선다. 차별금지법은 직전인 20대 국회에서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정의당은 29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인종 등 신체조건과 종교·사상 등 정치적 의견,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고용형태, 건강상태,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예방한다는 게 이번 법안의 골자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 등이 29일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법안을 발의하려면 국회의원 10명의 동의가 필요하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안에는 장 의원을 포함한 정의당 의원 6명 전원과 더불어민주당 권인숙·이동주 의원, 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등이 공동발의로 참여해 정족수를 채웠다.

장 의원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21대 국회의 존재 이유를 보여줄 수 있는 법이다. 사실과 다른 왜곡된 정보를 만들고 퍼뜨리는 일부 개신교 교단의 압박을 두려워하며 시민들 사이에 이미 존재하는 사회적 합의를 애써 외면해왔던 과거의 용기 없는 국회와 지금의 21대 국회는 완전히 다른 국회"라며 "21대 국회야말로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되었고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정의당은 민주당과 통합당에 차별금지법 입법 동참을 호소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보도에 따르면 통합당도 일부 조항을 뺀 제한적인 차별금지법 발의를 검토한다고 한다. 정의당은 차별금지법조차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입장"이라며 "이런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저는 통합당의 차별금지법 제안을 환영한다. 법안에 현격한 차이가 있지만 차별금지법 논의를 본격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심 대표는 "이제 집권당인 민주당만 남았다"며 "민주화 세력의 자부심을 갖고 있는 민주당이 또 그래서 압도적인 국민 지지로 슈퍼여당이 된 민주당이, 국민의 88%가 염원하는 차별금지법 법제화에 책임있게 나서줄 것을 간곡히 호소드린다"고 강조했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욕을 먹어도, 당장의 이득이 없어도 그 길이 옳다면 그 길로 가는 우직함이 노무현 정신이다. 민주당이 차별금지법에 함께하는 것이 고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잇는 길"이라고 했다. 통합당을 향해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그 진정성을 믿는다. 그러나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장애' 등에 '나중에'란 없다"고 호소했다.

차별금지법은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안을 법무부에 제출하면서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같은 해 정부입법 발의를 시작으로 지난 14년간 7번의 차별금지법 추진이 있었지만 모두 폐기됐다. 이 중 2013년 19대 국회 김한길, 최원식 민주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철회됐다. 20대 국회에서는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추진했으나 정족수 10명을 채우지 못해 한 건도 발의되지 않았다.

반면 차별금지법 입법에 대한 최근 국민 여론은 우호적 응답이 높다. 지난 23일 국가인권위가 발표한 '2020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8.5%는 차별금지와 평등권 보장을 위한 법률 제정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15일 발표한 '21대 국회, 국민이 바라는 성평등입법과제' 조사 결과에서는 응답자의 87.7%가 "성별, 장애, 인종, 성적지향 등 다양한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고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장혜영 의원실에 따르면 장 의원은 지난 25일부터 국회 여야 의원들 전원에게 '친전'(親展)을 보내 포괄적 차별금지법 발의 동참을 호소했고, 그 이전부터 개별 의원실에 접촉해 설득작업을 벌여왔다고 한다. 장 의원실 관계자는 "친전을 보내기 이전에도 이번 국회가 초선 의원이 절반을 넘기도 하고, 차별금지법에 해당되는 이슈를 의정활동 내용으로 가져가는 의원들이 있어 19일경부터 성안된 법안을 가지고 대략 14군데 의원실을 접촉해왔다"고 말했다.

장 의원실은 10일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미국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며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묵념 시위를 벌인 통합당 초선 의원 9명에 대해서는 별도의 설득작업을 벌이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 12일 한국일보는 침묵 시위를 한 9명의 통합당 초선의원 전원이 "차별금지법 입법을 위해 활동할 계획은 없다"고 답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조선일보는 28일 <민주당이 외면한 차별금지법, 통합당이 발의한다>는 제목의 단독 보도에서 통합당이 보수 개신교계 등에서 반대하는 성적지향과 관련한 항목을 뺀 차별금지법안 발의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KBS 6월 29일 <국회의원 전수조사…69명 “차별금지법 찬성”, 206명 “응답 거부”>

KBS가 22일부터 26일까지 국회의원 300명 전원에게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찬성하는 의원 수는 총 69명이다. 민주당 54명, 통합당 7명, 정의당 6명, 열린민주당 2명이다. 반대는 25명으로 민주당 6명, 통합당 19명이다. 응답 자체를 거부한 의원은 206명에 달한다. KBS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설문에 응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무응답'으로 처리해달라는 의원이 대부분이었다"면서 "심지어 한 의원은 '소신으로는 찬성인데 지역 반발, 특히 교회 반발이 심해 답변을 못 하겠다'고 속내를 밝히기도 했다"고 전했다. 정의당 의원 6명을 제외하고 이번 법안 발의에 참여한 의원이 비례 초선의원 4명에 불과한 이유를 짐작케 한다.

한편, 인권위는 30일 전원위원회를 열고 국회를 상대로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에 나선다. 인권위는 법안 명칭을 '차별금지법'에서 '평등법'으로 변경한다는 방침이다. 헌법상 기본권인 '평등'을 법안명에 사용해 법안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위는 이날 자체적으로 준비한 평등법 시안과 국회를 상대로 평등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은 의견표명을 안건으로 올려 의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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