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집단감염 소식을 전하며 성소수자 혐오를 확산시킨 국민일보 보도를 두고 3주째 언론사 안팎에 규탄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성소수자단체는 본사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국민일보 차장급·10년차 이하 기자들은 연대 성명을 냈다.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 대책본부’(이하 대책본부)는 29일 오후 2시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책본부는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언론을 통해 생성, 확산되는 상황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혐오조장 언론사’에 직접 방문, 항의하는 릴레이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국민일보를 시작으로 뉴시스, 머니투데이 본사를 거쳐 언론중재위원회에 해당 언론사들에 대한 시정권고 요청서를 전달할 계획이다.

29일 오후 2시에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 앞에서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 대책본부는 항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미디어스)

대책본부는 코로나19 이태원 집단감염 이후 일부 언론들이 성소수자들에 대한 불필요한 정보를 강조하거나 가십화하고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보도를 냈다고 질타했다. 대표적으로 국민일보의 7일 <단독/이태원 게이클럽에 코로나19확진자>, 9일 <“결국 터졌다”...동성애자 제일 우려하던 ‘찜방’서 확진자 나와> 기사를 거론할 수 있다. 머니투데이는 12일 <커트만 쳐진 컴컴한 방, 5년 전 차마 못 쓴 블랙수면방 취재기>를 올렸고 뉴시스는 14일 <성소수자 전용 헬스장도 휴업...주변 상인들 “불안해”>, 20일 <성소수자 커뮤니티, 여전한 즉석만남...“자제해야”우려> 등의 보도를 냈다.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는 “국민일보는 오래전부터 성 소수자 혐오선동에 앞장섰고 게이 업소를 굳이 알리며 정보를 과잉 노출했다”고 지적했다. 머니투데이는 일명 ‘찜방’ 보도를 통해 커뮤니티 안에서 불안과 연대를 해쳤고, 뉴시스는 인권활동가와의 인터뷰를 혐오선동의 도구로 만들어 연대와 신뢰 관계를 모욕했다고 비판했다.

성공회 용산나눔의 집 사회적소수자 생활인권센터의 자캐오 신부는 국민일보 홈페이지의 ‘복음을 실은 국내 유일의 종합일간지’ 문구를 언급하며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생산·확산하는 언론사가 말하는 복된 소식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이태원 코로나 관련 보도행태는 국민일보 제작 방향인 ‘사랑, 진실, 인간’과도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자캐오 신부는 “국민일보 일부 기자들의 보도행태는 지금 우리에게 간절한 한국사회에 긍정적 역동성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일부 수구 개신교의 입장에 맞춰 편견과 혐오를 확산하는 보도가 반성없이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권연대 나누리+ 윤가브리엘 대표는 “코로나 확진자가 11,000명이 넘었지만 집단적인 혐오를 받는 이들은 성소수자들 뿐”이라며 “게이클럽에서만 확진자가 나왔냐"며 "일반 클럽에서도 나오고 있지만 보수 언론들은 마치 성소수자들이 문란해서 퍼트린 것처럼, 게이들이 문제인 것처럼 성적 지향을 공격하고 혐오하는 기사들을 내뱉고 있다”고 성토했다. 그는 “방역에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혐오 보도를 쏟아내는 국민일보를 규탄한다”고 했다.

대책본부는 ‘국민일보는 증오선동을 당장 멈춰라’는 성명서에서 “위기를 틈타 성소수자에 대한 증오와 가십화에 집중했다”며 “국민일보가 양산한 기사들은 성소수자와 관련된 의제들을 겉핥으며 트집 잡고 성적 낙인찍기 급급했고, 정보에 대한 객관성도 결여한 채 성소수자의 구체적인 삶을 문란함으로 조리돌림 하는가 하면 동성애는 HIV/AIDS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동성애 반대 논리를 만들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대책본부는 국민일보가 지탄을 받은 이후에도 차별금지법 반대 기사, 혐오 인사들의 칼럼을 싣고, 성소수자 반대광고 뿐 아니라 문제적인 목사를 지지하는 광고를 싣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국민일보는 소수자 혐오를 바탕으로 적폐의 나팔수가 되었고 증오를 바탕으로 사회의 인권감수성을 퇴행시키는데 일조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대책본부는 국민일보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언론인들에 대해서는 지지한다고 밝혔다. 지난 12일 전국언론노동조합 국민일보 지부의 성명에 이어 국민일보 차장기자단, 10년차 이하 기자들의 성명이 연달아 나왔다.

국민일보 차장급, 10년차 이하 기자들 성명 "혐오는 언론사의 언어가 될 수 없다"

국민일보 차장기자 12명은 27일 성명을 내고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일부 보도가 선정적이고 혐오의 시선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충분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데 사내 구성원에게 죄송하다"며 반성했다.

이들은 “언제부터인가 주장과 사실관계가 구분되지 않은 채 주의 주장이 뒤섞인 동성애 기사가 지면을 차지했다”며 “어떤 언론도 사회적 논쟁거리를 바라볼 때 한쪽의 목소리만 보도하지 않는다. 동시에 그 대상자가 잘못하고 틀렸다고 해서 그 대상에 대한 혐오와 조롱을 기사에 담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근 논란이 된 기사들에 대해서는 저널리즘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짚었다. 이유로는 종교국과 편집국이 분리돼 게이트키핑 기능이 약화됐고, 사회적 맥락속에서 기독교 이슈를 편집국과 종교국이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했으며, 종교국 내 광고와 보도 부서가 분리되지 않으면서 지면 광고와 외부 연재 기사 데스킹이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차장단은 제도적 보완책으로 ▲종교국 보도에 대한 견제 및 검증 시스템 확립 ▲광고와 보도를 함께하고 있는 종교국 시스템 점검 ▲기독교적 가치와 사회 일반 가치가 충돌하는 사안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고민 ▲편집국과 종교국 모두가 참여하는 논의기구 구성 등을 제안했다.

28일에는 10년차 이하 기자들이 성명을 내고 “최근 논란이 된 성소수자 관련 기사들은 그동안 배워온 저널리즘 원칙에도 ‘사랑 진실 인간’이라는 국민일보의 시사에도 맞지 않다”며 “확진자가 성소수자임을 밝히는 것, 성소수자의 블랙수면방 이용실태를 밝히는 것은 불필요했다고 판단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담았다.

기자들은 “더 나아가 혐오는 언론사의 언어가 될 수 없다”며 “비판과 혐오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언론으로서의 존재 자체를 의심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기자 중에는 종교국에서 일하는 기자들도 있었고, 자신들이 이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한 데 대해 반성했다. 이들은 앞서 차장기자단이 제안한 논의기구 신설 등에 대해 찬성하며 회사에 보다 명확한 개선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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