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1이 마무리되었다. 코로나19로 한껏 위축되던 봄 우리를 찾아와, 장미가 만개하는 5월 말에 이르기까지 오랜 벗처럼 시청자와 함께했다.

산부인과 의사 석형(김대명 분)이 밴드를 하자며 오랜 친구들을 불러 모으며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하나뿐인 여동생은 사고로 죽고, 아버지의 외도와 동생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은 어머니를 쓰러트렸다. 그런 가정사의 와중에 아내가 떠났다. 그래서 석형은 아픈 어머니와 함께 오롯이 '혼자'의 삶을 감수하고자 한다.

tvN 2020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1999년 함께 의대에 입학했던 친구들은 어느덧 마흔 줄이 되어 율제병원을 이끄는 주요 교수진이 되어 있었다. 간담췌외과 이익준(조정석 분), 소아외과 안정원(유연석 분), 흉부외과 김준완(정경호 분), 신경외과 채송화(전미도 분).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를 하기 위해 친구들을 이용했다는 석형의 자조적인 고백에 친구들은 어림없는 소리 말라며 콧방귀를 끼고 먹던 자장면에 집중한다. 이렇게 '츤데레'스럽게 다정한 벗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1년이 12부작이라는 짧고도 긴 서사 속에 담겼다.

생사의 기로에서

12회,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은데’ 하는 시청자들의 조바심이 무색하게 율제병원은 바삐 돌아간다. 자신이 하던 '키다리 아저씨'의 자선 사업을 친구 송화에게 넘긴 채 신부가 되기 위해 이역만리 타국으로 떠나려 했던 안정원 교수는 씽씽카를 타다 다쳐 간을 절제할 지경에 이른 어린 환자를 살리기 위해 며칠째 병원을 떠나지 못하고 노심초사한다. 친구들이 소아 중환자실이 ‘정원이의 방’이라고 농담 삼아 하듯, 어린 환자가 생사의 기로에서 오갈 때 그 곁을 떠나지 못하는 정원. 그런 정원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시킨 지 오래된 리조또를 맛나게 먹을 수 있는 건 그 환자의 예후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tvN 2020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하지만 늘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준완은 수술로도 지혈이 안 되는 환자의 부모님께 최선을 다했지만 더는 해드릴 것이 없다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다. 대기가 길어 환자들의 짜증이 폭발할 지경에 들어온 만삭의 산모에게 석형은 안타까운 결과를 알려야 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채송화 선생은 환자의 코마를 선언한다.

그렇게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지난 12부 동안 열심히 달려왔던 이 '현장'이 바로 삶과 죽음이 오가는 병원이었음을 다시 한번 환기시킨다. 아이를 잃은 산모의 통곡이 길게 이어진 후, 마치 판도라의 상자 구석에 숨겨져 있던 희망이 뒤늦게 나타나듯, 12부 내내 석형을 안타깝게 했던 조산 위험이 있던 산모에게 그 고비를 넘겼음을 알리는 희망을 남기며 삶과 죽음을 오가던 병원 이야기는 한 시즌을 마무리한다. 남편에게 간 이식을 해주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에도 자신은 이식을 할 수 없다며 울면서 말하던 아내의 인간적인 고뇌가 풀리며, 이곳이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곳'임을 확인한다.

삶의 영역에 헌신하는 이들

tvN 2020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그곳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을 ‘삶’의 영역으로 끌어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있다. 12부 내내 신부가 되겠다는 자신의 결심을 굽히지 않던 정원. 소아외과 의사가 필요하다던 병원장의 부탁도, 단 하나 남은 막내아들만은 엄마를 외롭지 않게 해야 한다던 엄마의 간절함도 정원의 결심을 누그러뜨리지는 못한다. 하지만 아이만 보면 저절로 얼굴에 함박웃음이 지어지고, 죽음의 길에 나설지도 모를 아이를 놓칠 수 없어 며칠 밤을 새워 조바심을 내던 그 시간이 저절로 정원의 마음을 돌려세운다. 조금 더 많은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정원은 그렇게 송화의 '찬성'을 얻으며 다시 병원에 남는다.

석형은 어떨까? 그토록 석형과 어머니를 힘들게 하던 아버지가 떠나면서 뜻밖의 유언을 남겼다. 석형에게 아버지 대신 회사를 이끌라는 것. 하지만 석형은 그런 뜻밖의 '횡재'와도 같은 유언에 '시간이 아깝다'고 잘라 말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라며. 그 중심에 환자들이 줄지어 기다리는데도 자상하게 산모들을 보살펴 주기를 마다하지 않는, 아이를 잃은 산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산부인과 의사 석형이 있다.

준완이라고 다를까. 시간이 조금이라도 남으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만나던 익순이 유학 가던 날, 준완은 포기할 뻔했던 환자를 살리기 위해 긴 수술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친 몸을 끌고 돌아와 익준이와 컵라면 한 그릇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다 그제야 익순의 출발조차 챙기지 못했음을 깨닫고야 만다.

tvN 2020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기꺼이 신의 소명을 거둘 수 있는 곳,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곳,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조차 잠시 접어둘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슬기로운 의사'들이 살아왔던 지난 1년의 율제병원이다.

물론 막상 병원에 가면 환자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5분은커녕 여섯 달을 기다려 1분 만에 진료를 마치는 현실에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사람 냄새는 어쩌면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코로나19 사태에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발 빠르게 대처하여 안정적 상황을 맞이한 데는 '헌신적이고 책임감 있는 의료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건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듯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때론 어른이 같지만, 자신이 맡은 바 일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책임감 있는 어른'이었던 주인공들과 그 주변 의료진의 모습이야말로 여전히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을 준 '우정어린 힐링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보고 나면 어쩐지 나도 좋은 어른으로 살고 싶게 만드는. 그래서 더욱 그 좋은 친구들과의 잠시 이별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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