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색깔론이 먹히지 않게 됐기 때문에 앞으로 진보에 유리한 정치 지형이 형성될 거라는 예상을 들은 일이 있다. 그 말대로 과거의 ‘안보-보수’의 세계관은 수명을 다한 것 같지만 색깔론을 대신할 흑색선전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진보들이 겉으로는 대의명분을 말하면서 뒤로는 명분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고 있을 뿐이라는 ‘위선론’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조국 전 장관과 관련한 논란은 위선자 프레임의 파괴력을 보여준 사태였다고 할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더불어시민당 윤미향 당선인 간의 갈등을 보도하는 보수언론의 태도는 이런 점에서 전형적이다. 보수언론만 보면 정의기억연대로 모인 후원금은 윤미향 당선인과 진보를 자처하는 일당(?)들이 적당히 나눠 가져 사적으로 다 써버린 것 같다.

물론 사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정의기억연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사업을 하는 단체이지 후원금을 피해자들에게 나눠주기 위한 단체가 아니다. 피해자에 대한 직접적 지원도 필요하겠지만 법적 소송을 지원한다든지, 쉼터를 운영한다든지, 일제의 만행을 해외에 알린다든지 하는 사업에도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단순히 후원금 대비 피해자 지원 비율만 가지고 윤미향 당선인을 파렴치한 사람으로 모는 것은 잘못됐다.

2020년 1월 8일 서울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421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와 포옹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물론 회계처리가 완벽하지 않은 사례도 있을 수 있고 부적절한 자금 집행이 실재했을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선 정의기억연대와 관계자들이 그만큼의 책임을 지면 된다. 하지만 이런 오류가 반드시 횡령이나 착복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역시 무리다. 이 대목과 관련해선 정의기억연대 스스로가 혹시 위법한 회계처리나 지출은 없었는지 소상히 밝혀야 한다.

그런데 이용수 할머니의 문제제기를 회계처리의 적절성을 묻는 것이라고만 볼 것은 아니다. 이용수 할머니의 주장은, 정확히 말하자면 윤미향 당선인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하는 활동을 했다는 명분을 ‘국회의원’이라는 권력을 갖기 위해 활용했다는 거다. 후원금 등을 어디에 썼는지 모르겠다거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사전에 알고 있었으면서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등의 언급은 앞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이다.

사실 이건 시민단체 등의 활동에서 종종 있는 일이다. 단체의 얼굴을 맡아온 사람이 정치권으로 진출한다든지 하면 내부에선 그간 활동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니 영입을 시도하는 쪽이든 이에 응하는 쪽이든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윤미향 당선인이 국회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이용수 할머니 등에게 충분히 설득했어야 했다.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충분한 대화와 설득, 공감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내부 문제에 가까운 사안에 보수세력이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이유는 뭘까? 이 정권이 맹목적 반일노선 관철을 위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피해자들의 반발을 부추기고 활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싶은 것이다. 이를 통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강제징용 판결과 수출규제 사태로 이어진 이 정부의 대일정책을 비판하겠다는 게 아닐까 한다.

윤미향 당선인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게 중요한 문제처럼 논의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윤미향 당선인 측이 당시 정부가 민감한 내용을 제외한 일방적 통보를 해왔다고 밝힌 상황에서 미리 알았는지 여부를 ‘진실공방’으로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실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는 소녀상 철거와 같은 내용은 들어가 있지 않다. 2017년 12월 위안부 합의 검토 TF는 다시 한일 외교장관이 공동기자회견에서 발표한 합의문 외의 비공개 합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 ‘비공개 합의’는 소녀상과 제3국 기림비 문제는 물론 ‘성노예’ 용어 사용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눈여겨 볼 것은 ‘정대협 등 피해자 관련 단체 설득’이라는 대목 또한 포함돼있다는 것이다. 이 합의 때문에라도 정부가 합의 내용을 정대협 등 피해자 단체와 논의하려 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보수세력은 당시 이들 단체의 한일 위안부 합의에 반대하는 주요 논거가 피해 당사자들을 배제한 논의라는 것이었지만 이번 논란으로 이게 사실상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다. 단체의 대표성이나 판단 기준을 문제 삼을 수는 있겠지만, 앞서의 방식으로 이뤄진 정부의 설득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이 피해자들을 이용했다고 보는 것은 과도하다. 당시 위안부 합의는 국민 다수가 지지하지 않았고 해외언론도 부당함을 지적했었다.

물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가해자 일본과 피해자 한국이라는 전형적 구도에 갇히는 게 아니라 여성이 당하는 전쟁범죄라는 보편적 문제의 차원에서 더 적극적으로 다뤄질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물론 피해 당사자들은 그런 주장도 하지만 공론장에서는 당사자주의가 우선이었다.

아무튼 이 논란을 마무리 짓는 가장 빠른 길은 소모적인 논쟁을 그만두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실질적 해결책을 새로 구성되는 국회가 모색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20대 국회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문희상안’은 뚜렷한 한계를 안고 있었으나 어쨌든 뭔가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시도가 거듭돼야 해결의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갈등이 흐지부지 되는 건 전쟁 피해에 대한 책임을 적극적으로 외면하려고 하는 일본 극우파들에게만 좋은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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