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상대 당 공천을 받을만한 사람이 ‘아군’을 택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체성 논란 등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은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달렸다. 김종인 씨 같은 경우가 그렇다.

김종인 씨가 몇 차례나 당과 캠프를 옮겨 다닌 것은 ‘철새’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거대양당의 사정 덕에 그런 비판에는 힘이 실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난 총선에서 박근혜 캠프에 있었던 김종인 씨를 비대위원장 대표로 모셨던 더불어민주당이 김종인 씨가 미래통합당 선택을 고민했다는 이유로 철새라고 비판하는 것은 결국 제 얼굴에 침 뱉기 아니겠는가? 이런 사정 덕에 김종인 씨는 거대양당의 ‘중도층 공략’을 가능케 하는 카로 지금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이, 비유하자면 트로이목마(?) 논란으로 사퇴한 것은 당혹스러운 느낌을 갖게 한다. 공천 철회의 당사자인 김미균 씨는 과거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과 사진 등에 대해 “기업인으로서 정치와 교류한다고 생각한 것이니, 누군가를 강하게 지지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쉽게 공천을 받으려는 사람의 전형적인 거짓말처럼 돼버린 것이다.

그러나 과거 문재인 대통령을 실제로 지지했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번 선거에서 굳이 보수야당을 선택했다면 미래통합당 입장에선 오히려 적극적으로 알려야 할 일이 아닐까? 상대 세력을 지지하던 사람까지 ‘우리 쪽’으로 넘어올 정도로 정권 심판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뜻이니 말이다. 이런 스토리가 쌓이면 중도층 공략에 목마른 입장에선 큰 도움이 됐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김형오식 공천의 핵심은 친박 대 비박이라는 해묵은 갈등을 억제해 과거 새누리당의 구도를 복구하고 무소속 출마라는 이탈을 최대한 방지하며 무소속 출마 사례가 나오더라도 명분을 최소화 하겠다는 거였다. 이른바 탄핵 5적과 친박 8적이 무대 위에서 사라지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편지가 우측으로의 누수를 틀어 막으면서 과거 새누리당의 복구라는 목적은 달성되는 듯 했다.

그러나 이 다음 단계, 즉 중도층 공략으로 넘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된 김종인 씨가 자신의 영향력을 최대화 하기 위해 일부 공천을 문제 삼으면서 억눌려 있던 핵심 지지층의 불만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 사례는 핵심 지지층의 동요 때문에 중도를 공략할 수 없는 미래통합당의 현실을 보여준다.

정치네트워크 시대전환 출범 기념 수요살롱에서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소 이사장이 '새로운 세대가 이끄는 정치가 필요하다'를 주제로 발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래도 김종인 씨 영입이라도 시도한 미래통합당과 비교하면, 집권 여당은 아예 지지층 밖으로 걸어 나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공천을 받지 못한 금태섭 의원의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더불어민주당 핵심 지지자들은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첫째, 금태섭 의원은 공천에서 배제된 것이 아니라 경선에서 패배했다는 것이다. 둘째, 금태섭 의원은 당의 방침에 따르지 않았고 지역구 관리를 소홀히 했으므로 당내 경선에서 패배할 이유가 충분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일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추가공모와 정봉주 전 의원 및 김남국 변호사의 도전 등 경선에 이르는 과정까지 종합해보면 핵심 지지층 외의 사람들에게 이 결과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금태섭 의원을 꺾은 정치 신인도 승리가 ‘기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즉, 내부의 이견에도 포용력을 발휘하는 정당이라기보다는 소신파를 탄압하는 정치세력으로 비춰지기 좋은 사례라는 것이다.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결정하는 과정도 비슷한 문제를 드러낸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비례연합정당 참여에 대해선 다수의 유권자들이 반대하고 있다. 다만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절대 다수는 비례연합정당 참여의 불가피성에 공감하는 것 같다. 총선에서 1당의 지위를 잃으면 국회의장부터 상임위원장까지 다수 지위를 내놔야 해 국정운영 동력의 유실이 심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보수세력이 다수당 지위를 얻는 걸 막아야 한다는 주장은 결국 정파적 손익계산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지층 외의 유권자들에 대한 설득 논리라고 볼 수 없다. 미래통합당의 미래한국당 창당도 스스로의 전망을 적극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한 어떤 결단이었다기보다는, 선거법 개정의 일방적 처리와 문재인 정권 독주를 막아내겠다는 반대 논리 이상의 것이 못 되었다.

지지층 확장을 위한 공격적인 행위를 포기하는 정치 현상은 거대양당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이른바 제3세력을 표방한다는 여러 정당 내지는 세력들도 ‘거대양당이 주도하는 구태 정치 반대’ 이상의 슬로건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민생당이나 국민의당, 심지어 진보정당이라는 정의당도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지금 보는 이 현상의 의미는 단지 극단적 정치의 중도 공략 실패에 그치지 않는다. 현실 정치가 당장 대변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무슨 수단을 통해 다가갈 것인가의 고민을 사실상 포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다. 지금 당장은 눈 앞에 닥친 총선 결과의 이해득실 계산이 더 시급한 문제일지 모르겠으나, 결국 우리 정치는 이 대가를 어떤 형식으로든 치르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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