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조선일보가 지난 4일 창간 100주년을 맞아 <과거의 오류, 사과드리고 바로잡습니다>라는 제목의 정정기사를 게재했다. 김일성 피살, 현송월 총살,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수사 불만표시 등 과거 오보에 대해 사과했다.

하지만, KBS1TV <저널리즘 토크쇼J>는 8일 방송에서 ‘면피성’ 사과문이라며 “고의로 거짓된 내용을 담은 기사는 정정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KBS1TV '저널리즘 토크쇼J' 8일 방송분 (사진=KBS)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조선일보의 오류는 아주 명확한 오보에 대해서만 몇 가지 해명을 하고 있다”며 “제가 알고 있었던 오류는 5·18 민주항쟁을 일종의 광란의 사태처럼 묘사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당 기사가 정정기사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건 다른 말로 하자면 면피성이다. 굉장히 많은 오류들을 이 작은 오보 기사 안에 응축함으로써 마치 모든 오류를 자신이 사죄하고 바로 잡는 것 같은 착각을 주고 있고, 이게 조선일보가 자주 사용하고 있는 언어유희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임자운 변호사는 “이번 조선일보의 사과 내용을 보면 제작상 실수, 교차확인을 게을리해서 아니면 기자의 판단 실수, 과욕 이렇게만 이야기하고 있는데 사실은 가장 크게 해악을 끼치는 기사는 나쁜 의도를 가지고 고의로 거짓된 기사를 쓰는 경우”라고 지적했다.

임 변호사는 “가령 고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한 검찰 관련 발언, 아니면 고급 요트 탄 귀족처럼 당시 노무현 후보를 비방한 것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그런 기사를 냈다고밖에 보이지 않는데 지금의 사과 내용에는 그에 대한 사과가 빠져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가 바로잡았어야 할 대표적 기사로 김대중 기자의 1980년 6월 5일 르포기사가 꼽혔다. 당시 김 기자는 “동쪽 너머에 무정부 상태의 광주가 있다. 쓰러진 전주, 각목, 벽돌 등으로 쳐진 바리게이트 뒤에는 총을 든 난동자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멀리 보였다”고 썼다. 같은 해 8월 23일자 <인간 전두환>기사에서 “비리를 보고서는 잠시도 참지만 못하는 불같은 성품과 책임감, 그러면서도 아랫사람에게는 한없이 자상한 오늘의 지도자적 자질”을 강조했다.

강유정 교수는 “1980년 5월 조선일보에서 중심적 기자로 떠오르게 된 르포기사인데, 르포라는 말 자체가 기자가 직접 가서 현장을 체험하고 사실적 기록을 담는다는 게 르포타주(보고기사 또는 기록문학)의 어원이라 할 수 있는데 사실에 대해 아주 심각한 왜곡과 훼손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조선일보가 <무정부 상태 광주 1주>라는 왜곡 기사를 실었고, 만약 오보를 수정한다거나 오류에 대해 반성한다면 이 지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갔어야 했는데 의도적으로 빼놨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심용환 역사N 교육연구소 소장은 조선일보가 전두환 정권 당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고 짚었다. 심 소장은 “매출액을 보면 1980년 기준 동아일보가 265억, 조선일보가 161억인데 전두환 정권이 끝나는 1988년 동아일보는 885억 원, 조선일보가 914억 원까지 오른다”며 “굉장히 비약적으로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자운 변호사는 “1980년 5월 광주는 당시 광주에 계셨던 시민들, 학생들에게는 하나의 전쟁 상황일 수 있었고 그러한 상황에 눈을 감거나 심지어 <인간 전두환>이라는 기사가 1980년 8월에 나왔으니 5월 광주 발발 직후”라며 “조선일보는 광주 시민들한테는 전범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정정 보도의 중요성을 짚었다. TV조선에서 5·18 북한군 개입설을 1980년 조선일보 지면에 실었던 기사들을 근거로 들었다. 강 교수는 “일종의 자기 인용, 자기복제”라며 “정말로 오보에 대해 사죄하고 정정하려면 5·18 문제에 대한 정정 보도가 있어야 하는데 이게 사라지는 건 이런 식으로 악용할 계제들을 여전히 남겨놓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5·18 망언·가짜뉴스의 진원지는 "조선일보" )

KBS1TV '저널리즘 토크쇼J' 8일 방송분 (사진=KBS)

동아일보 해직기자인 김종철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은 조선일보가 사과해야 할 보도로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 불리는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보도’를 꼽았다. 김 위원장은 “강기훈 씨가 대필해줬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데 앞장선 게 조선일보”라고 밝혔다.

1991년 김기설 전민련 사회부장이 서강대 옥상에서 투신 자살한 다음 날, 조선일보는 <2,3일 간격 연쇄 발생 계획 의혹>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같은 날 중앙일보는 <분신에 협력자 있었을까>란 기사를 게재해 의혹을 증폭시켰고, 조선일보에 김지하 시인의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기사로 여론이 나빠졌다. 그 결과 강기훈 씨는 유서대필 및 자살방조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고 징역 3년 만기 출소했다. 2015년 강 씨는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았다.

강기훈 씨는 ‘저널리즘 토크쇼J’와의 통화에서 “김지하 씨의 발언이나 박홍 총장의 발언 등을 통해 전체 정국을 주도한 신문이 조선일보였고 나머지 언론은 따라가는 형태였다”며 “처음부터 끝까지 조선일보는 이 사건과 같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강 씨는 “유서대필, 자살 방조와 같은 제목이 제가 느끼기에는 살인마 정도 급의 느낌이었다”며 “검찰발 속보로 경쟁하듯 보도되고 검찰이 이 자가 범인이 틀림없다고 하면 이를 받아내는 형식이기에 지금도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강 씨는 “사실을 왜곡하고 심지어는 조작하고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면서 권력을 유지해 왔던 통한의 역사는 어느 하나 청산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강 씨는 2015년 무죄 확정판결 이후 나온 조선일보 사설을 두고는 “‘유서를 대신 썼는지 안 썼는지에 대한 진실은 강기훈만 알 것이다’라는 문장이 저를 많이 화나게 했는데, 이 모든 사건을 조장했던 당사자는 조선일보다. 조선일보가 이런 말을 쓸 수 있다는 게 언론이 맞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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