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해외 133개국이 중국에 거주하거나 방문한 이들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지난달 16일 중국 국가이민관리국이 발표한 자료를 한국 언론은 이렇게 보도했다. 언론은 이를 근거로 한국 정부가 중국인 입국금지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내용은 정부가 '중국 눈치' 때문에 입국금지 조처를 하지 않은 것이라는 미래통합당 등의 주장에 핵심 근거가 됐다. '133개국' 프레임은 현재까지도 정치권 등에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중국 국가이민관리국이 발표한 자료는 각국의 '입국절차상 제한조치' 현황이다. 이들 국가에는 전면 입국금지를 취한 국가가 포함돼 있지만, 단순 입국절차상의 조치를 취하거나 한국과 같이 특정지역, 즉 후베이성 방문기록이 있는 입국자를 제한하는 국가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한국 역시 133개국에 포함돼 있다.

중국 국가이민관리국이 2월 16일 발표한 각국 입국절차상 제한조치 원본(왼쪽)과 주 중국 대한민국대사관의 번역 공지(오른쪽)

지난달 23일 머니투데이는 <전세계 133개국 중국인 입국금지… 한국은 안하나 못하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머니투데이는 "지난 17일 중국 국가이민관리국은 중국에 거주하거나 방문한 이들에 입국 금지 조치를 내린 133개국을 발표했다"며 "프랑스, 러시아, 독일, 미국, 필리핀, 캐나다, 싱가폴 등이 포함됐다. 목록에 포함된 대부분의 국가들은 중국인 혹은 최근 14일 내에 중국 방문 이력이 있는 사람들을 전면 입국 금지 조치했다"고 보도했다.

머니투데이는 해당 기사에서 정부가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에도 중국인 입국금지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는 미래통합당과 황교안 대표의 주장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반대 입장을 실었다. 해당 기사의 제목은 현재 <'중국인 전면 입국금지' 한국 안하나 못하나>로 수정됐다. 기사에는 5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는데, 대부분 정부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룬다.

이보다 앞서 중국 국가이민관리국 발표 자료를 보도한 곳은 머니투데이그룹 계열 뉴스통신사 뉴스1이다. 뉴스1은 지난달 17일 기사 <중국인 입국 제한국 또 늘어… 총 133개국>에서 "중국 국가이민관리국은 공식 자료를 통해 중국에 거주하거나 방문한 이들에 입국 금지 조치를 내린 133개국을 발표했다. 프랑스, 러시아, 독일, 미국, 필리핀, 캐나다, 싱가폴 등이 포함됐다"며 "목록에 포함된 대부분의 국가들은 중국인 혹은 최근 14일 내에 중국 방문 이력이 있는 사람들을 전면 입국 금지 조치했다"고 보도했다. 머니투데이 기사와 대동소이하다.

지난달 23일 머니투데이는 <전세계 133개국 중국인 입국금지… 한국은 안하나 못하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해당 기사의 제목은 현재 <'중국인 전면 입국금지' 한국 안하나 못하나>로 수정됐다.

이밖에도 많은 언론에서 '133개국' 기사가 생산됐다. 이후 '133개국' 프레임은 정치권으로 번졌고, 최근까지 중국인 입국금지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의원은 2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치·통일·외교·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지금 중국발 외국인을 입국금지하는 나라가 러시아와 북한을 포함해 133개국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 정부는 왜 이리 눈치를 보느냐. 시진핑 방한 때문이냐"고 따져물었다.

그러나 이 같은 보도와 주장은 중국 국가이민관리국이 발표한 내용과는 전혀 달랐다. 전직 시사프로그램 작가 임경빈 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헬마우스'에 지난 2일 <"중국인 입국금지"는 전세계에서 한국만 못하고 있다? 팩트체크 들어갑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재했다.

임 작가는 중국 국가이민관리국이 발표한 코로나19 관련 각국 '입국절차상 제한조치' 문건 원본을 공개했다. 해당 문건에는 총 133개국의 코로나19 관련 입국절차상 제한조치 리스트가 명시되어 있다. 각국의 코로나19 방역·검역조치 현황을 자국민(중국인)에게 안내하는 취지의 문건이다. 지난달 17일 주 주중 대한민국대사관이 해당 문건을 번역해 홈페이지에 공지하기도 했다.

전직 시사프로그램 작가 임경빈 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헬마우스'에 지난 2일 <"중국인 입국금지"는 전세계에서 한국만 못하고 있다? 팩트체크 들어갑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재했다. (유튜브 채널 '헬마우스' 캡처)

리스트에 적시된 133개국 중 '중국발 외국인 입국금지' 국가는 미국, 러시아, 북한, 싱가포르, 이탈리아, 몽골 등 20여 개국뿐이다. 이 리스트는 각국의 입국절차상 제한조치를 망라한 것으로 여행객 체온측정, 개항지 예방검사, 입국자 질문서 작성 및 제출, 방역 모니터링 강화, 중국 후베이성 등 특정지역에 대한 제한적 입국금지 등 다양한 각국 조치를 안내하고 있다.

한국도 제한적 입국금지 조처를 시행하는 국가에 포함돼 있었다. 리스트 45번에 올라있는 한국에 대한 중국 국가이민관리국 설명을 살펴보면 한국은 2월 4일부터 중국 후베이성 지역 중국인 또는 후베이성을 방문·체류한 모든 외국인의 입국 금지를 실시하고 있으며 제주도 무사증 입국제도를 일시 중단했다. 2월 5일부터는 중국인 환승 무사증 입국제도가 일시 중단되었으며, 홍콩과 마카오를 경유해 입국하는 모든 여객은 공항 도착 후 반드시 건강상태확인서를 제출하고 체온검사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중국 국가이민관리국이 발표한 각국의 입국절차상 제한조치 자료에는 한국이 포함돼 있다.

앞선 기사들에서 대표적인 '중국인 입국금지' 국가로 명시된 일부 국가들 경우에도 문건상 입국금지 조치를 하고 있지 않았다. 머니투데이 등 언론이 언급한 국가 중 프랑스, 독일, 캐나다의 경우는 입국금지 조치를 하고 있지 않다. 문건에 따르면 프랑스는 공항에서 발열 등 이상증세 발견 즉시 해당자를 격리 조치한다. 독일은 입국 여행객의 체온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캐나다는 과거 14일 내 후베이성 지역을 방문한 모든 입국자에 대해 입국 후 14일간 자가 격리를 실시, 24시간 내 공공위생부에 보고토록 하고 있다. 중국발 국제여행객에 대해서는 14일 동안 건강상태를 관찰하고 이상 증상이 있을 경우 인원 밀집 장소 방문이나 타인과의 밀접 접촉을 피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리스트와 별개로 '중국인 입국금지 안하나 못하나' 주장은 현재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동떨어져 있다. 유럽 내 코로나19 확산 거점으로 일컬어지는 이탈리아는 사태 초기부터 국가 긴급상황을 선포하고 중국과의 직항노선 항공편을 중단했던, '중국인 전면 입국금지' 조치 국가다.

그러나 이탈리아 보건당국에 따르면 3일 오후 6시(현지시간) 기준 코로나19 이탈리아 전국 누적 확진자 수는 2502명으로 전날 대비 466명 증가했으며, 사망자 수는 27명 증가한 79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탈리아의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중국과의 직항노선 운항을 중단한 이란은 사망자 수로 세 번째(77명)를 기록하고 있다.

이탈리아를 여행한 유럽 각국의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 유럽국가들은 이탈리아 국경봉쇄를 주장하지 않고 있다. 바이러스의 전파를 국경폐쇄, 입국금지 등 행정적 경계 조치로 막을 수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임경빈 씨는 3일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영상을 준비하면서 황당했던 건, 포털 메인을 장식하는 기사들이 기초적인 팩트체킹조차 아예 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라며 "오랫동안 방송계에서 일했던 사람으로서 '이럴 거면 기사를 도대체 왜 쓰는가' 하는 심경이었다"고 말했다.

임 씨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복사-붙이기 해서 공포를 증폭시키고, 불안심리를 교묘하게 자극해 특정한 혐오 정서를 일으키는 기사를 쓰는 게 언론의 역할은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국가방역체계란 결국 시민들과 우리 사회가 신뢰의 스크럼(scrum)을 짜고 전염병에 맞서는 것"이라며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신뢰의 스크럼을 더 단단하게 유지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언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책임있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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