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대폭 증가하면서 보수언론 중심으로 '중국인 입국 금지'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가 중국 눈치를 보느라 전면 입국금지 조치를 안해 벌어진 사태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밀입국 가능성을 높여 감염자 추적 감시가 안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방역망에 구멍이 뚫릴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는 모양새다. 확진자 대부분이 국내 환자로 나타나고 있으며 국내 확진자 중 해외여행 이력이 없거나 감염경로가 확인되지 않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올라온 중국인 입국금지 요청 게시글이 22일 총 76만 1833명의 동의 서명을 얻으며 종료됐다. 국내 코로나19 확진자는 602명이다.

중앙일보는 24일자 지면 1면에 중국인 입국 전면금지를 촉구하는 내용의 사설을 실었다.

중앙일보는 24일 사설 <중국서 오는 외국인 입국, 전면 금지하라>를 1면에 배치했다. 중앙일보는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하다가 골든타임을 놓친 문재인 정부의 방역 실패가 혹독한 대가를 초래한 것"이라며 "정부는 더 큰 희생이 나기 전에 방역의 기본, 즉 유입 차단에 나서야 한다"고 썼다.

중앙일보는 "정권의 이익이 국민 생명보다 소중한가. 중국에서 들어오는 외국인에 대한 전면 입국금지는 더 이상 늦출 일이 아니다"라며 "정부가 중국 눈치 보고, 총선 승리에 몰두하는 와중에 전염병은 말 그대로 전국 곳곳에서 창궐하고 있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사설 <대통령은 대구·경북에 가야 하는 것 아닌가>에서도 "근본 책임은 중국인을 입국 금지하지 않은 정부에 있다"면서 "22일 마감된 '중국인 입국금지' 국민청원도 눈여겨 봐야 한다. 서명에 76만 명이나 참여한 이유는 일찌감치 국경을 폐쇄한 북한·러시아와 달리 후베이성 외엔 입국금지조차 하지 않은 정부의 대응이 납득되지 않아서"라고 했다.

중앙일보 이하경 주필은 칼럼 <코로나 최고 숙주는 문재인 정부의 중국 눈치보기다>를 썼다. 이 주필은 "중국의 눈치를 보고 우리 국민을 희생시키는 것은 한국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다"라며 "운명공동체라면서 중국에 대해 전면적 입국금지를 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사설 <中감염원 차단했으면 재앙 없었다, '누가 왜 열었나' 밝히라>에서 "바이러스는 창궐지인 중국에서 들어왔고 누군가 '그림자 전파자'가 신천지 신도들을 감염시킨 것"이라며 "정부가 사태 초기 중국을 거친 외국인 유입을 막는다는 방역의 기본만 제대로 지켰다면 신천지 대구 교회가 감염되는 사태도 있을 리 없다"고 단정했다.

조선일보는 "정부가 감염원 대량 유입 차단이라는 기본 중의 기본을 무슨 이유에선지 지키지 않은 것이 사태를 이렇게 키운 것"이라며 "코로나 수퍼 전파자야말로 정부"라고 했다. 또다른 사설 <중국인은 한국 오는데, 한국민은 외국서 거부당하는 사태>에서 조선일보는 "중국 공산단의 어떤 선전 매체는 '한국 전염병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고 썼다. 중국눈치 보느라 방역 문을 열어놨는데 중국이 훈계까지 한다"며 "기가 막힌다"고 썼다.

24일 중앙일보 이하경 주필 칼럼(위)과 동아일보 박제균 논설주간의 칼럼(아래)

동아일보 박제균 논설주간은 칼럼 <정권의 오만이 재앙을 키운다>에서 "중국과 북한 정권에는 비굴할 정도로 수그리는 문재인 청와대는 시선을 국내로 돌리는 순간 고래를 뻣뻣이 쳐든다"며 문재인 정권이 80년대 NL(민족해방) 운동권 좌파이기 때문에 문제라고 했다.

박 논설주간은 "문제는 이렇게 오만하고, 그래서 무능한 집권세력이 코로나 사태라는 초유의 시련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느냐다"라면서 "문 정권은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를 박근혜 정부 책임으로 몰아붙이던 때를 돌아보며 더 겸허해져야 한다. 오만의 장막을 열어젖히고 아집의 색안경을 벗어던져야 보다 유연하고 효과적인 대책으로 가는 길이 보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중국인 전면 입국 금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한의사협회가 전면 입국금지를 주장했고, 중국인 입국금지 조치를 시행한 나라들에서 확진자 수가 비교적 적다는 주장 정도가 주요 근거를 이룬다.

지난달 23일 JTBC '뉴스룸' 보도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에볼라 바이러스 당시 "국경폐쇄, 여행 및 무역에 제한을 두어서는 안 된다. 이런 방안들은 '두려움'으로 인해 도입되는 것이지,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했다. 오히려 WHO는 심각한 부작용을 우려했다. 입국 금지 시 밀입국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감염자가 밀입국 할 경우 방역망에 구멍이 뚫린다는 것이다.

국제보건규칙은 감염은 통제하지만 불필요한 국가간 이동을 방해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심환자나 감염자에 대한 입국거부, 감염지역으로 비감염자가 입국하는 걸 막는 것 정도가 가능한 조치로 규정돼 있으며, 각국이 개별적으로 강력한 조치를 할 때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을 때'로 제한했다.

JTBC는 "입국 지점에서 검역 잘하고, 해당자를 격리 치료하는 게 최선이다. 이건 국제적으로 정립된 의견"이라며 "발병국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입국을 막아야한다는 건, 가장 중요한 '감염병 예방 효과'도 없고, 오히려 방역 체계가 뚫릴 위험이 있으며, 규범에도 맞지 않다"고 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24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통화에서 중국인 입국금지 실효성에 대해 "우리 검역시스템이 감당이 가능할 정도로 유행이 확인된 나라에서의 입국자를 조절할 필요는 있다"면서 "그렇지만 입국금지와 같은 완전히 봉쇄하는 형태의 입국관리는 실제로 그 효과를 입증하기가 좀 어렵다"고 했다.

엄 교수는 "중국 관련 입국제한을 한 나라 중에서 완벽하게 유입을 차단한 나라가 그렇게 많지 않고, 또 현재 상황이 입국제한을 통해 환자가 유입되던 단계를 이미 지난 상황"이라며 "주로 확진자들이 발생하는 부분이 신천지와 대남병원을 중심으로 한 확진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런 논란을 하기보다 빠른 진단과 격리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 19일 대한병원협회, 대한감염학회,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대한예방의학회 등이 개최한 '코로나19 대응 긴급 심포지엄'에서는 지역확산 방지를 위해 봉쇄전략에서 완화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이어졌다.

24일 양승훈 경남대 교수 경향신문 칼럼 <지금 필요한 건 응원과 위로의 글>

양승훈 경남대 교수는 이날 경향신문 칼럼 <지금 필요한 건 응원과 위로의 글>에서 "무엇이, 누가 이 사태를 만들어 냈는지 다양한 설이 떠다닌다"며 "중국인의 입국을 막지 않은 정부냐, 몰래 병을 옮긴 신천지 환자냐. 탐정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신천지와 중국을 엮어서 다양한 '소설'을 쓴다"고 지적했다.

이어 양 교수는 "2020년. 얄팍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로 제갈공명을 자처하는 '선지자'들이 정부와 사회를 믿지 않고 종말론을 쓰고 있는 사이, 일상을 사는 수많은 시민들은 자기의 역할을 하면서 의연하게 대응하고 있다"며 "지금 더 필요한 글은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보건시스템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의 가이드를 주고, 불안해하는 시민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주고 안심시키는 것이 아닐까"라고 썼다.

경향신문은 사설 <공포·혐오 부추기는 보수세력, 뭘 얻겠다는 건가>에서 "보수야당과 언론은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문재인 정부가 중국 눈치보기를 하고 있다'며 감염증 공포를 '반문재인 공세'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면서 "대다수 시민들은 개인보다 공동체의 이익과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마당에 무책임한 선동으로 불안과 혐오를 부채질하는 세력은 도대체 무슨 이득을 보겠다는 것인가"라고 따져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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