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자유한국당은 KBS 보궐이사 추천이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재차 부결되자, '월권'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해 추천 몫을 주장하고 있다. 정치권이 공영방송 이사에 대한 추천 권한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방송법상 방통위가 공영방송 이사 추천 권한을 가지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소속 박대출 한국당 의원은 11일 성명을 내어 "방통위 KBS 보궐이사 추천, 월권하지 마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방통위가 또 다시 폭거를 저질렀다. 야권 몫인 KBS 보궐이사 후보를 연거푸 퇴짜 놓았다"고 비난했다.

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앞서 천영식 KBS 이사가 총선 출마를 이유로 재임 1년여 만에 사퇴하자 한국당은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 방해 인물로 지목된 이헌 전 세월호 특조위 부위원장을 보궐이사로 추천했다. 방통위가 이를 부결하자 한국당은 이번엔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한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를 보궐이사로 내세웠다. 이 전 기자 추천 건 역시 10일 열린 방통위 상임위원 간담회에서 부결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의원은 "방통위가 법적 하자 없는 이 전 기자를 왜 반대하나. 이게 월권이고 불법"이라며 "법상 결격 사유는 6가지다. 여기에는 '세월호' '5·18'은 없다"고 했다. 방송법상 KBS 이사의 결격사유는 당원, 공직, 대통령인수위원 등의 신분을 상실한 날부터 3년이 지나지 않았을 때 등이다.

그러나 박 의원의 '야권 몫' 주장은 법적 근거가 없다. 방송법은 KBS 이사 추천·임명권과 관련해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하여 방통위에서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국회, 방통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등에 따르면 애초 한국당은 정당가입 이력을 확인하지 않은 채 한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인사를 KBS 보궐이사로 추천하려고 했다.

여·야 정치권이 관행에 따라 방통위 상임위원을 통해 공영방송 이사를 추천해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방통위가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과정에서 야당 추천 인사를 처음으로 부결하고, 한국당이 '추천 몫'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정치권 추천 관행은 공식화된 모양새다.

박 의원이 속한 국회 과방위는 2018년 12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관련 방송법 개정안을 2019년 2월 임시국회까지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공영방송 이사 정치권 추천 비율을 7대6으로 조정하고 사장 선출 시 이사 3분의 2이상의 동의를 받도록 한 박홍근 민주당 의원 안, 이사·사장 선출 시 국민의견을 수렴하는 정의당 추혜선, 민주당 이재정 의원 안 등이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한국당은 박근혜 정부 당시 반대했던 '박홍근안'을 이번 정부 들어 당론으로 내세웠다. 민주당은 과거 보수정권 하에서 언론장악 방지를 위한 '차악'책으로 발의된 '박홍근안' 대신 국민의견을 수렴하는 안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여야 정치권, 각계 입장 차이가 크고 패스트트랙 정국으로 국회가 공전하면서 관련 법 논의는 무산됐다.

그러나 이번 두 번의 부결 사건을 통해 확인된 것은 정당 추천을 법에 명시할 경우 공영방송 정치적 독립 훼손은 물론, 5·18 민주화운동 등에 대해 망언을 한 인사도 공영방송 이사직에 직행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두 번의 부결로 방통위가 법에 따라 독립적 선임 절차를 밟을 것을 촉구하는 언론·시민사회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전국 241개 언론·시민단체로 구성된 '방송독립시민행동'은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당 인사 추천과 방통위 논의를 규탄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10일 성명을 내어 "이번 기회에 위법한 정당 관행 추천을 끝장내야 한다"고 방통위에 촉구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11일 성명을 내어 "방통위 스스로가 2020 업무계획에 밝혔듯 법에도 없는 정당추천의 KBS 이사 추천 악습을 끊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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