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총선 출마를 이유로 KBS 이사직을 사퇴한 천영식 이사 자리에 자유한국당이 이헌 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변호사)을 추천하면서 공영방송 독립성 훼손이 반복되고 있다는 언론·시민사회 비판이 거세다. 세월호 참사 유족들은 세월호 특조위 조사를 방해한 이 변호사가 KBS 이사로 앉는 걸 용납할 수 없다며 분노를 표했다.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들은 한국당의 이 변호사 추천 건을 부결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6일 전국 241개 언론·시민단체로 구성된 '방송독립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은 경기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변호사를 KBS 이사에 추천한 한국당과 이를 검토하는 방통위를 규탄했다. 방송법상 공영방송 이사 선임에 대한 권한은 방통위와 대통령에 있음에도 정치권 추천 관행이 또다시 반복됐다는 비판이다. 20대 국회에서는 애초 시한까지 못박아 처리하기로 했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논의는 실종된 상태다.

6일 전국 241개 언론·시민단체로 구성된 '방송독립시민행동'은 경기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훈 변호사를 KBS 이사에 추천한 한국당과 이를 검토하는 방통위를 규탄했다. (사진=미디어스)

정연우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는 "지난번 이사 선임 과정에서 방통위는 형식적으로는 공모를 받고 시민의견 수렴 절차를 거쳤다. 그런데 이번엔 그런 것조차 없다"며 "방통위가 정치권의 요구를 받아 밀실에서 특정인사, 부적격 인사를 논의하고 있다. 참담하다"고 토로했다.

오정훈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2년 전 KBS 방송독립을 외치며 정치권은 공영방송에서 손 떼라고, KBS 이사를 공정하게 선출해야 한다고 투쟁을 벌였다"며 "2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은 바뀌지 않았고, 한국당은 천영식 이사 자리에 부적격자인 이헌 변호사를 또다시 추천하고 나섰다"고 비판했다.

유재우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올해 방통위는 업무보고에서 국민의 의사가 반영된 투명한 공영방송 이사·사장 선임절차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바로 이 순간 해야 하는 일"이라며 "정당은 정치적 이득을 앞세워 이사를 보내고 그 결과 KBS는 사회통합보다 갈등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내년도 이사·사장 교체의 시발점이 지금"이라고 촉구했다.

4·16연대 이희철 사업국장은 자유한국당의 이헌 변호사 KBS 이사 추천에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미디어스)

이날 기자회견에는 4·16연대 이희철 사업국장이 참석해 한국당의 이 변호사 KBS 이사 추천에 대한 유족들의 심경을 전했다.

이 변호사는 박근혜 정부 당시 여당(새누리당) 추천으로 세월호 특조위 부위원장을 맡아 '특조위가 특정 세력에 장악돼 정치기관화됐다', '특조위는 세금도둑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등 진상규명보다 특조위 내부비판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특조위가 청와대 조사를 결정하면 여당 추천 위원이 집단 사퇴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이른바 '해양수산부 문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세월호 유족들은 2016년 2월 이 변호사와 해수부 장관 등을 직권남용 및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

이 사업국장은 "이 자(이 변호사)는 본인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야 할 당사자임에도 갖은 망언을 일삼으며 조사를 방해했다"면서 "4·16 유족들과 연대는 이헌을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은 면죄부를 줬지만 우리는 다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세월호 특별수사단 3차 고발 명단에 이헌 이 자를 조사방해 혐의로 고소·고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업국장은 "세월호 참사는 언론참사이기도 했다. KBS는 재난주관방송이다. 그 자리에 이런 철저한 범죄혐의자가 들어간다면 우리사회의 정의와 진실은 가로막힐 것"이라며 "4·16 가족분들과 연대는 소식을 듣고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이헌이 KBS 이사 자리에 앉는 걸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년 전 KBS 공정방송 파업을 이끌었던 성재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한국당 추천 이헌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이 아니라 특별방해위원이었다.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피눈물을 흘리게 한 장본인"이라며 "이번 한국당의 KBS 이사 추천은 또 한번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세월호 참사를 조롱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방통위에도 "정당 추천 구습을 벗어나 거부권을 행사해 방송독립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이날 오전 방통위 상임위원들은 티타임을 갖고 한국당이 추천한 이 변호사 KBS보궐이사 선임을 논의, 최종 부결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KBS 보궐이사 선임 절차에 대한 추가논의는 이뤄지지 않아 향후 한국당의 이사 추천이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방송법상 KBS 이사 결원 시 30일 이내에 보궐이사가 임명돼야 해 다음 주 내로 새 보궐이사가 임명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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