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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0.01.23  09: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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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해, 바다와 같아라]

[미디어스=백종훈] 사~두. 사~두. 사~두. 

예비교무들이 며칠 머물다 떠난 지리산에 다시 홀로섰다. 한 해 일정을 다 마쳤으니 이제 겨울나기 채비를 한다. 매해 두 달여씩 꽁꽁 얼어붙어 씻는 것은 둘째 치고 설거지는커녕 수세식 화장실도 이용할 수 없기에 가능한 오래 탈 없이 머물려면 만전을 기울여야 한다. 

높은 곳에 놓인 물탱크에 양껏 물을 채운 뒤 지하수가 올라가는 관에 고인 물을 뺀다. 그래야 언제고 다시 물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가압펌프 둘레에 열선을 넉넉히 감고 헌옷을 두툼하게 씌웠다. 어찌 알았는지 무당벌레 떼가 지들도 살아보자고 새카맣게 모여든다.   

겨우내 사용하지 않을 건물로 이어지는 수도 밸브를 잠그고 나서 노출된 배관을 보온재로 싼다. 가스 순간온수기 안에 괸 물을 흘려내고 양변기에 담긴 물을 퍼낸다. 찬바람이 들지 않게 문단속을 단단히 한 후 거처로 돌아온다. 

아기 예수 오신 밤을 지내고 짐을 꾸렸다. 지리산을 잠시 비우기로 했다. 위빠사나 수행처 마하시 선원에서 연말연시를 보내려 했다. 내려가는 길에 우체국에 들렀다가 백장암 주지 행선스님을 만났다. 음력 10월 15일에 시작한 동안거가 끝나는 이듬해 1월 15일 이후에 차담을 나누자 했다. 붉은 포도주 빛 터틀넥 스웨터를 입은 내가 자못 흥미로운 눈치다.  

두 시간 남짓 운전해 명상센터에 도착했다. 출가자라고 따로 알리지 않았기에 일반인들과 같은 숙소동에 묵게 되었다. 샌드위치 판넬로 지은 건물에 벽돌로 외벽을 쌓고 내부에 합판으로 벽을 쳐 방을 나눈 구조다. 2평정도 되는 공간에 매트리스와 앉은뱅이책상이 두 개씩 놓여 있다. 침구에 새 시트를 씌우고 바로 수행홀로 갔다.    

붉은 장삼을 두른 미얀마 스님 두 분이 지도인으로 맨 앞자리에 계셨다. 그 뒤로 잿빛 승복을 걸친 여러 비구, 비구니와 각지에서 오신 분들이 좌우로 남녀를 갈라 앉았다. 숄로 한껏 멋을 낸 우아한 젊은이들이 많았다. 

새벽 3시 반부터 밤 9시까지 앉아서 하는 명상과 걸으며 하는 명상을 번갈아 거듭한다. 선객들은 눈, 귀, 코, 혀, 피부로 드나드는 모든 느낌에 집중해 한 동작 한 동작 주의심을 놓치지 않는다. 우 소다나 사야도께서 하루 한 시간 법문하시고 이어 개별 면담시간을 가졌다.  

첫 공양은 새벽 6시다. 부드러운 죽과 채식 위주의 소박한 반찬이 정갈하다. 식판에 먹을 만큼만 적당히 덜어 착석한다. 어느 때보다 집중하며 천천히 씹으니 잡생각이 들 틈 없다. 일과대로 정진하다 11시가 되자 사람들이 법당을 빠져 나간다. 신경 쓰지 않고 내 할 일만 했다. 

정오가 다 되어 공양간에 갔더니 텅 비어 있다. 아차! 오후에는 먹지 않는 규칙을 잊었다. 점심공양은 11시였다. 사정을 알리니 이미 거둬들였던 음식을 다시 내 주셨다. 아무도 없는 식당에서 홀로 공양을 들고 있는데 안쪽에서 뭔가 볶는 소리가 들리더니 공양주 보살이 쇠고기 볶음 한 접시를 내 오셨다. 

남방불교 전통에서는 조류와 어류만이 승가에서 허용될 텐데 민머리에 회색 선복 차림으로 영락없는 승려 모양새를 갖춘 내게 소불고기라니! 찰라 흠칫했으나 합장하고 이내 그 뜻을 받아들였다. 식기를 깨끗이 닦아 돌려드리니 미소로 화답한다.    

누구 하나 미동 않는 고요 가운데 어둠이 짙어간다. 밖에서 비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하루내 먹구름이더니 눈이 내리나 보다. 도반이 행여 실수로 빙판에 미끄러질세라 먼저 비를 들고 나선 불제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 해가 저문다.  

선방에서 맞이하는 새해 첫 날. 새벽 예불로 그 시간 함께한 이들을 비롯해 온 생령이 고통에서 벗어나 참된 길을 가도록 자비기도를 올린다. 날이 밝자 부부로 보이는 두 분이 입선인들을 위해 케익을 공양했다. 우리는 이를 나눠먹으며 신년을 축하했다. 

그날 오후 지리산에 돌아왔다. 부처님 모신 대각전 처마 밑에 껍질 벗긴 대봉시를 주렁주렁 달았다. 찬바람을 맞으며 차차 밝은 색을 잃고 몸집이 줄고 주름도 잡힐 것이다. 그렇게 감은 곶감으로 익어간다. 

맨몸으로 시련을 견뎌내는 우리 모두의 마음에 나와 너를 너그럽게 안아줄 수 있는 자비가 피어나기를... 묵묵히 세상 한 구석을 밝히며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이른 아침 두 손 모아 읊조리는 빨리어 경구를 되새겨 경배 올린다.  

사~두. 사~두. 사~두.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새해의 새로움은 날에 있는 것이 아니요 우리의 마음에 있는 것이며 따라서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와 사업에 더욱 정진하는 것이 새해를 맞는 참 뜻이라, 그러므로, 새 마음을 챙기면 늘 새날이요 새해며, 이 마음을 챙기지 못하면 비록 새해가 와도 참다운 새해를 맞이하지 못 하나니라 - 원불교 정산종사법어 7:27

백종훈 원불교 교무 webmaster@mediaus.co.kr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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