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종종 광화문에 가게 된다. 통일로를 따라 서울을 가다 보면 서울과 경기도 경계에서 대규모 현대식 도시가 건설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도시 빼곡하게 대단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주변을 정리해 시내가 흐르는 산책로를 만들고, 인공 폭포가 계획에 맞춰 배치되었다. 몇 년 전 은평구와 삼송에 이르는 대규모 도시건설이 완성되었고, 아직도 그 주변에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느라 공사 중이다.

서울에서 파주로 이사 오게 되면서 일이 정리되지 않아 한동안 버스를 타고 서울로 출퇴근을 했다. 밤이 되어 연신내에서 버스를 타고 삼송을 지나 벽제를 거쳐 집으로 돌아오다 보면 서울에서는 볼 수 없었던 광경을 가끔 볼 수 있었다. 고라니가 차도로 내려와 뛰었다. 차 안의 사람들은 자주 있는 일인 듯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만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에 얼굴을 유리창에 바짝 가져다 대고 고라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고개를 꺾고 보았다.

대규모 현대식 도시건설이 진행되면서 가장 걱정된 것은 고라니 가족이었다. 괜찮을까. 산이 없어지고, 살던 터전이 없어졌는데 괜찮을까. 어디로 갔을까. 도시건설계획에 고라니 가족 이주 계획도 있었을까. 내 쓸데없는 걱정과 상관없이 은평구에, 삼송에 아파트 단지, 상가, 쇼핑센터가 계획대로 차곡차곡 자리에 배치되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홍대에서 약속이 있어 버스를 타고 모래내를 지나가게 되었다. 십삼, 사 년 만이었다. 버스 안내방송에서 모래내, 라고 안내했다. 창을 통해 본 곳은 모래내가 아니었다. 구역을 나누어 깨끗하게 정리된 도로와 말끔한 모습의 대단지 아파트가 그곳에 있었다. 낡은 다가구주택도, 단독주택도, 슬레이트집도, 떡볶이를 팔던 문방구도, 아가씨집도 없었다. 알 수 없는 공간이었다.

순간, 다른 세계를 버스가 통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예전 모래내는 오래되고 낡은 슬레이트집이 줄지어 들어서 있던 동네였다. 그곳에 A가 살았다. 좀 과하게 취한 날이었다. 코가 탁자에 닿을 것처럼 꾸벅거리던 A가 고개를 들었다. 따뜻한 청주를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래내 판자촌에서의 생활이었다.

A는 어릴 때부터 모래내에서 살았다. 아침이 되면 몇 개 안 되는 화장실 앞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조금만 늦어도 이미 줄은 끝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수도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 하나뿐이었다. 뚝방촌이라고 불리는 그곳은 6.25 전쟁 이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A를 보며 웃었다. A는 씁쓸하게 웃으며 믿기지 않지, 하고 말했다.

80년대에 판자촌은 개발 사업이 미치지 않은 동네에, 뚝방을 끼고 있는 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서울 외곽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던 시기에 모래내가 재개발지역으로 정해지면서 지역 사람들이 보상금을 받고 대거 이주를 시작했다. A는 그때야 알게 되었다. 수십 년을 살아온 슬레이트집이 A네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상 한 푼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별안간 길거리로 쫓겨나게 생겼다. 하늘이 무너졌다.

기나긴 법정 싸움이 시작되었다. A는 지금 사는 집이 자신들의 집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지난한 하루하루였다. 나는 그때 A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알지 못했다. 보고 싶다고 전화해 술을 한 잔 마시고 간 적은 있었다. A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다. A는 혼자서 법정을 오가며 그곳에서, 가족들이 자신들의 땅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A네 가족도 보상금을 받고 이주를 했다.

본격적으로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면서 수십 년간 함께해온 공동체는 해체되었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당시 남가좌동, 북가좌동 등 모래내 주변 동네 전세금은 두, 세배로 치솟았다. 모래내에서 나온 사람들은 그곳에서 전세를 구할 수 없었다. 모래내보다 더 싼 동네로 이주하게 되었다.

지금 모래내에는 타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다. 보상금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모래내로 돌아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자금이었고, 보상금을 받아도 까먹는 일만 남았으니까.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돈을 지키는 방법을 잘 모른다. A는 모래내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혼잣말한다. 혹시 아세요. 그곳에 고라니와 A가 살았어요.

김은희, 소설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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