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정부가 청해부대를 호르무즈해협에 독자 파병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 “정부가 국회에 동의를 구했어야 했다”는 언론의 지적이 이어졌다. 한겨레·경향신문·동아일보 등 주요 일간지들은 “정부가 국회 동의를 받지 않기로 한 건 유감스럽다”는 내용의 사설을 게재했다. 조선일보는 마침 “미국은 일제로부터 한국을 구한 해방자”라는 내용의 칼럼을 실어 대조된다.

호르무즈해협으로 파견한 청해부대 왕건함 모습 (사진=해군작전 사령부)

국방부는 21일 청해부대의 작전 반경을 아덴만 일대에서 호르무즈해협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우리 국민 안전과 선박의 자유항행 보장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번 독자 파병은 미국이 희망한 IMSC(국제해양안보구상·호르무즈 호위 연합)에 참여하지 않는 형태다. 정부는 국회 동의를 얻지 않고 작전 반경 확대를 결정했다.

이에 대해 한겨레·경향신문·동아일보는 22일 자 사설에서 “정부가 국회에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설 제목은 한겨레 <호르무즈 파병, 국회 동의 구하는 게 ‘정도’다>, 경향신문 <국군의 호르무즈 파병을 우려한다>, 동아일보 <청해부대 호르무즈 파병, 당당히 국회 동의 구하라>, 중앙일보 <국민과 장병의 안전 최우선인 청해부대 파견> 등이다. 조선일보는 호르무즈 파병과 관련한 사설을 게재하지 않았다.

한겨레 <호르무즈 파병, 국회 동의 구하는 게 ‘정도’다> 사설

한겨레는 “정부가 파병 결정에 국회 동의를 받지 않기로 한 건 유감스럽다”면서 “청해부대의 임무는 아덴만 일대의 해적들로부터 우리 선박과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미국-이란 간 충돌 위험이 높은 호르무즈해협 부근에서의 활동은, 단순한 작전범위 확대라기보다는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은 별도의 파병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썼다.

한겨레는 “정부의 독자 파병 결정이 이란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면서 동시에 한-미 관계와 남북관계까지 고려한 ‘다목적 포석’임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라면서 “그러나 호르무즈 안전이 위협받게 된 근본적인 책임은 이란과의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미국에 있다는 게 국제사회 평가다. 어떤 형태로든 파병을 하는 것은 미군의 명분 없는 ‘이란 압박과 봉쇄’에 동참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단독으로 결정하기보다, 국회 동의와 같은 절차를 통해 국민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추진하는 게 옳다”고 강조했다.

경향신문 <국군의 호르무즈 파병을 우려한다> 사설

경향신문은 “국방부는 청해부대 임무 확대가 국회 동의를 구할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기존 파병안에도 청해부대의 작전지역이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 일대로 돼 있지만 유사시 그 외의 해역으로 확대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이번 결정으로 청해부대의 작전구역이 3.5배로 늘어나고 작전의 성격도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새로 국회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옳다는 지적이 많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미국의 파병 요청을 수용하면서 이란과의 관계도 고려한 절충안”이라면서 “미군 휘하로 군을 파견하지 않는 것이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파병의 명분이 약한 데다 향후 감수해야 할 위험요소들이 많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동아일보 <청해부대 호르무즈 파병, 당당히 국회 동의 구하라> 사설

동아일보 역시 국회 동의를 요구했다. 하지만 ‘정치적 이유’를 근거로 들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동아일보는 “정부·여당은 기존 국회의 청해부대 파병 동의에 작전범위 확대 근거가 있는 만큼 동의 절차를 다시 밟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면서 “하지만 제1야당도 반대하지 않는 사안을 두고 국회를 건너뛰는 것은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 내 논란을 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파견 장병에게도 자신들의 임무에 당당한 자부심을 갖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밝혔다.

중앙일보는 “국민과 장병의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제언했다. 중앙일보는 “청해부대의 파견 지역 확대 조치는 국민 보호와 한·미 동맹의 신뢰 회복 차원에서는 일단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면서 “그러나 이란의 앞바다인 페르시아만과 그 입구인 호르무즈해협에는 이란의 해군 부대가 산재해 있다. 여간 위험한 지역이 아니다. 아차 하면 우리 선박은 물론 왕건함도 이란 해군과 미사일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중앙일보는 “청해부대의 호르무즈해협 활동엔 치밀한 작전 지침과 외교 활동이 필요하다”면서 “동맹국인 미국을 아예 못 본 체해서도 곤란하지만, 미국과 이란의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4면 <연합군에 참여않고 호르무즈 독자파병… 美와 이란 사이서 타협> 기사에서 “정부가 미국이 주도하는 IMSC에 참여하지 않고 이미 인근에서 작전 중이던 청해부대의 작전구역을 확대한 것은 일종의 '절충안'으로 해석된다”고 평가했다. 조선일보는 “국제사회의 관심사가 된 호르무즈해협 일대의 안전 확보 노력에 동참하면서도 미국과 이란 중 누구의 편을 드는 듯한 인상은 주지 않기 위해 절충안을 택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선우정 조선일보 부국장 <日帝(일제)를 美帝(미제)로 바꿔치기> 칼럼
선우정 조선일보 부국장 <日帝(일제)를 美帝(미제)로 바꿔치기> 칼럼 중 일부

선우정 조선일보 부국장은 한 발 더 나아가 해리스 미국 대사를 비판한 진보 진영을 두고 “권력집단의 반미가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해리스 미 대사는 한국에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요구한 바 있다. 이에 진보 진영은 “내정 간섭이다”, “해리스 대사는 한국 총독처럼 행세한다”고 비판했다.

선우정 부국장은 <日帝(일제)를 美帝(미제)로 바꿔치기> 칼럼에서 “미국은 일제로부터 한국을 구한 해방자”라면서 “전쟁에서 한국을 구했다. 한국이 원해서 미군을 한국에 뒀다. 한국 발전의 최대 조력자다. 미국은 한국을 무단 통치하지 않았다. 출세를 원하는 대사를 한국에 보낸 적도 없다. 미국은 대사가 칼을 맞아도 직분을 다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선우정 부국장은 “이런 뻔한 사실을 다시 강조하는 이유는 한국의 권력 집단이 원시적 민족 감정과 판타지를 동원해 국민 기억과 상식을 조작하는 '×팔륙 주사파'의 본성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을 때 사람들은 이 정권이 최종 국면에서 '반미(反美)'를 내세울 것이라고 걱정했다. 해리스 대사를 둘러싼 '조선총독' 소동은 걱정이 현실로 변해가고 있음을 말해준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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