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법무부가 제정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하 법무부 훈령)이 1일부터 시행됐다. 같은 날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출신 A수사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고 일각에서는 수사관의 죽음이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관련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언론의 검찰 취재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훈령으로 인해 기자들의 취재가 막혔다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깜깜이 수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법무부 훈령에 따라 지난 1일부터 전국 66개 검찰청에는 전문공보관 16명, 전문 공보담당자 64명이 지정됐다. 기자 등 언론기관 종사자는 전문공보관이나 전문공보담당자가 아닌 검사나 수사관을 상대로 사건을 취재할 수 없다. 검사나 수사관도 자신이 담당하는 형사사건과 관련해 언론과 개별적으로 접촉할 수 없다.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전날까지만 해도 차장검사가 각 검찰청 대변인 역할을 수행하며 오보 대응 등 언론과 소통에 나섰다. 하지만 1일부터는 수사와 관련 없는 전문공보관만 언론과 접촉할 수 있게 바뀌었다. 전문공보관으로 임명된 검사에게 연락을 취하자 “사건에 대한 문의 사항은 구두로 답변할 수 없다. 대신 공개심의위에서 공개하기로 결정된 사안은 공문을 통해 언론에 제공된다”는 답변을 들었다는 것이다.

피의사실 공표 논란, 언론의 받아쓰기 논란으로 도입된 훈령이지만 검찰에 대한 언론의 감시 기능을 약화시킨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특히 A수사관 죽음은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다양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A수사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가족에 대한 배려를 바란다”는 메모를 남긴 것을 두고 별건 수사·강압 수사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청와대는 A수사관이 울산지검의 조사를 받은 직후 “앞으로 힘들어질 거 같다”고 말한 통화 내용을 공개했고, 검찰은 “별건수사로 A수사관을 압박한 사실이 전혀 없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한 법원출입 기자는 “2일 서초서 압수수색 들어갔는데 영장을 내준 판사는 모른 척하고 검사는 전화를 안 받고 전문공보관은 같은 대답을 복사 붙여넣기식으로 한다”며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없다”고 말했다.

검찰 취재가 막혀 사실관계 확인도 어렵다. 세계일보는 지난 2일 단독보도로 “2일 사정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A수사관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에 남긴 9장의 자필 유서에는 자신의 휴대전화 초기화를 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 담겨있다”며 “가족과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미안하다는 내용 이외에 휴대전화 증거 보존의 중요성을 별도로 강조한 메시지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중앙지검 공보관은 “금일 모 언론의 '휴대전화 초기화' 관련 유서 내용 보도는 오보”라고 짧게 전했다.

또 다른 법조 출입 기자는 “심지어 유서 내용도 청와대에서 나오는 상황”이라며 “검찰 취재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피의사실 공표 등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검찰이 언론의 취재 자유를 막아서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신문은 2일 사설을 통해 “피의사실 공표 등과 관련한 책임은 기본적으로 검찰에 있다. 수사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검찰이 유불리를 따져 가며 은근슬쩍 언론에 흘려 온 것이 문제의 본질인 것이다. 자체적으로 정비해야 할 내부 조직원들의 자질 문제를 오히려 국민의 알 권리를 막는 데 이용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민상 중앙일보 기자는 3일 ‘취재일기’에서 “서울동부지검은 이날부터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사건과 관련한 공개심의위원회를 개최했다. 법무부 훈령 시행 뒤 검찰의 수사 상황 공개 여부를 두고 열리는 첫 번째 심의위”라며 “권력 최고위층이 모인 청와대 주변에서 벌어진 일을 두고, 이런 거름망이 겹겹이 쌓이다 보면 국민이 알아야 할 정보는 권력에 의해 또다시 오염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법조기자단은 법무부 훈령을 두고 훈령 시행 정지 가처분과 헌법소원 등을 준비 중이다. 법무부와 기자단 간에 협의가 오가던 ‘검사 접근금지’와 ‘구두브리핑 금지’ 조항이 최종 발표안에서 수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조팀 간사인 김건훈 MBN 기자는 “언론의 취재권과 접근권을 제한하는 행위”라며 “법적 대응을 검토 중에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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