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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 ‘퍼가요~♡’를 해봤을 당신에게

기사승인 2019.11.20  12:5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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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브릭의 실눈뜨기]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미디어스] 최근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일이 있었다. 싸이월드 폐쇄 소식이다.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포도알 1,000개를 모은 내게는 청천벽력 같은 뉴스였다. 싸이월드에서 다이어리 다음으로 공력을 쏟은 건 성격테스트다. 셀 수 없는 ‘퍼가요~♡’를 일촌들의 파도타기에 실어 보냈다. 나에 대한 궁금증이 많던 10대 후반이었던 탓이 클 거다. 

가장 궁금했던 질문은 내향적인 사람인지 외향적인 사람인지 묻는 거 같다. 예나 지금이나 모임을 즐기기 때문에 외향적이라는 답변을 하곤 했는데, 최근에 읽은 어떤 글에서 말하기를 평소에 지인들과의 만남을 좋아하는 것과 내/외향성은 크게 상관이 없다고 한다. 글에 따르면 내/외향성의 기준은 힘든 일을 겪을 때 대처방식으로 결정된다고 한다. 평소에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했느냐와 상관없이 고통의 순간에 다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면 푸는 사람은 외향적. 치유될 때까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연락을 끊는 사람은 내향적이라는 것이다.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포스터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주인공 리 챈들러(케이시 에플렉)는 외향적인 사람이다. 형, 조카와 나간 바다낚시에서는 손맛을 보는 것보다 함께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는 게 즐겁고, 겁없이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새벽 2시까지 잔치를 벌인다. 부인이 눈으로 레이저를 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도 개그본능을 참지 못하고 농을 던지는 위인이다. 숙취 말고는 별다른 걱정도 없고 진지하지도 않은 듯 보이는 평범한 이웃. 그가 바로 리 챈들러다. 물론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사고를 겪기 전까지 이야기다.

사고 이후로 리는 내향적으로 바뀐다.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정든 고향을 떠나 허름한 지하 단칸방에서 유령처럼 산다. 아파트 시설관리를 하며 생계를 꾸리지만 주민들과 잘 지내볼 생각은 없어 보인다. 업무를 마치면 단골술집에서 맥주 한잔 하는 게 일과인데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여자에게도 심드렁하다. 유일한 관심이라면 반대편에서 자기를 힐끗힐끗 쳐다보는 남자들뿐이다. 동성에게 성적매력을 느껴서는 아니다. 본인을 쳐다보는 게 거슬려 얼굴에 주먹을 꽂으려는 의도일 뿐.

이렇게 변한 리에게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사건이 생긴다. 고향에는 투덜거리면서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하며 자기의 곁을 내주고 의지하는 조카. 술만 먹으면 주먹질을 일삼는 리를 자기 일처럼 변호해주는 친구. 그리고 ‘잊고 싶은 과거’가 있다. 리가 잊고 싶어 하는 과거의 어느 시간과 장소에 사는 주변 사람들은 그를 외향적으로 돌려놓기 위해 노력한다. 문제는 리가 과연 이것을 원하냐는 것이다. 리는 쏟아지는 호의가 두렵다. 슬픔이 갈무리 되지 않은 탓이다.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장면

『슬픔의 위안』은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유가족들을 인터뷰하고 관찰한 론 마라스코, 브라이언 셔프의 에세이다. ‘휴식’ 챕터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순수한 휴식은 슬픔의 고통을 치료해주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다. 그러나 슬퍼하는 사람이 참 하기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도 휴식이다.” 저자들은 “슬픔이 원기를 고갈시키는 것처럼, 좋은 감정 역시 에너지를 무척이나 소진시킨다”고 말한다. 아무리 힘든 상태여도 호의를 전하는 사람과는 대화를 나눠야 한다. 주변 사람의 호의에 반응하는 것 역시 감정을 소모시키는 일이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와서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내 슬픔을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고 싶기도 하지만 혼자 있고 싶기도 하다. 나는 내가 내향적인지 외향적인지 모르겠다. 순간순간, 슬픔의 크기와 시간에 따라 내 성격은 변한다. 그러니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호의의 거리와 강도도 유동적이다. 고정된 사실은 하나다. 슬픔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식이 무엇인지 판단할 정보량은 타인보다는 내가 많을 것이라는 점.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장면

싸이월드 폐쇄 해프닝에 나처럼 서둘러 자료를 백업할 방법부터 검색한 사람도 있지만 로그인을 포기한 지인도 심심찮게 보인다. 눈감고도 입력할 수 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아이디와 비밀번호 찾기가 귀찮아서가 아니라 잊고 싶은 기억들은 잊힌 채로 두고 싶다는 이유다. 유행가 가사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나.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미덕도 백업을 포기한 이들의 결단과 맞닿아 있다. 호의를 베푸는 건 권리가 아니다. 슬픔이 갈무리 되지 않은 사람에게 베푸는 호의는 때로 폭력이 된다. 어떤 사람에겐 ‘왜 힘든 일이 있는데 말을 안 했니. 내가 너한테 그런 존재 밖에 안 되니’라는 아쉬움의 표현에 ‘미안해 ...내가 정신이 없어서...’라는 말을 쥐어짜내야 하는 순간이 슬픔의 근원보다 더 고통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는 탓이다. 잊고 싶은 기억을 애써 들추지 않는 것. 사려 깊은 친구의 조건은 이처럼 단순하다.

고브릭 webmaster@mediaus.co.kr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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