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정부가 주52시간제 확대 시행을 앞두고 보완책을 내놓아 노동계 반발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일부 보수·경제지는 정부와 국회의 적극적인 유연근로제 도입을 주장하고 나섰다. 정부가 정책실패를 인정했다는 취지의 주장으로 한국의 노동시간은 여전히 OECD 회원국 중 최장 수준이라는 점, 자유한국당이 선택근로제와 특별연장근로 대폭 확대 등을 요구하며 경사노위가 권고한 탄력근로제 확대안 처리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 등을 애써 감추고 있다.

18일 고용노동부는 내년부터 주 52시간제가 적용되는 50인~299인 사업장에 대해 처벌을 유예하는 계도기간을 충분히 부여하고, 자연재해·재난 발생 사업장에 허용되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에 '일시적 업무량 급증 등 경영상 사유'를 추가하겠다는 보완책을 발표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1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브리핑실에서 '주52시간제 입법 관련 정부 보완대책 추진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는 19일 사설 <잘못 꿴 주 52시간제 안 고치고, 계속 땜질만 할 건가>에서 "주 52시간제로 인해 노심초사해 온 중소기업들로선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됐다"면서 "그러나 일시 유예일 뿐, '주 52시간 공포'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고 썼다.

이어 한국경제는 "대선공약인 주52시간제가 확대 적용될 때마다 산업현장은 우왕좌왕하고, 정부는 땜질대책에 골몰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애초에 생산성 증가 없이 획일적인 근로시간 단축을 강요한 것부터가 '잘못 끼운 단추'이자 예고된 부작용"이라고 질타했다.

서울경제는 사설 <주 52시간제 땜질보완만 하고 있을 건가>에서 "고용부의 이날 발표는 근로기준법 개정이 국회에서 지연된 데 따른 고육지책으로 볼 수 있다. 여야 간 정쟁에다 경영계와 노동계 간 현격한 견해 차이로 인해 연내 개정이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자 주52시간제 후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보완책을 들고 나온 것"이라며 "결국 문제의 핵심은 현장의 혼란이 일찌감치 예고됐음에도 정부가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하지 않고 주52시간제를 밀어붙인 데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사설 <'주 52시간' 또 유예, 잘못된 법 강행하면 다 멍든다>에서 "주 52시간제는 안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 불가능한 제도"라며 "웬만해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이 정권이 물러선다는 사실 자체가 주 52시간제가 정착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이어 조선일보는 "처벌유예 같은 땜질 처방을 내놓을 게 아니라 주 52시간제 도입 취지는 살리면서도 부작용은 없애는 항구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법을 고쳐 업무 특성과 기업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선택적 근로시간제,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 등 다양한 보완책을 법률로 도입해야 한다"고 썼다.

동아일보는 사설 <주 52시간 근무제 땜질… 입법 뒷받침 안하면 갈등 더 커진다>에서 "계도기간이란 위반을 해도 처벌을 하지 않는 것일 뿐 제도 자체는 시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불안하다"면서 "경직된 주 52시간 근무제는 집중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한 정보기술(IT) 기업이나 일손을 구하기 어려운 중소기업들의 사정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11월 19일 사설 <'주 52시간' 또 유예, 잘못된 법 강행하면 다 멍든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OECD 회원국 중 노동시간이 2위를 기록하는 과로사회다. 2017년 기준 한국인의 연간 노동시간은 2024시간으로 OECD 평균 1759시간보다 265시간 더 길게 일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주 60시간 이상 근무를 과로로 규정하고, 질병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분석한 결과 의료비 부담 등 사회적 비용이 연간 5조원~7조원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가 낸 탄력근로제 확대 안에 대한 국회 입법 논의는 한국당의 반대로 지지부진하다. 한국당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더해 선택근로제 정산기간 확대, 특별연장근로 인가 요건 완화 등을 추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선택근로제는 업무 시작과 종료 시각을 정하지 않고 노동자의 재량에 노동시간을 맡기는 대신 일정 정산기간에 대한 노동시간 총량을 규제하는 제도다. 한국당은 정산기간을 기존 1개월에서 3개월로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연장노동수당 없이 장시간 노동이 가능해져 노동계에서는 장시간 근로에 따른 과로사 가능성을 우려하며 완강한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는 안이다.

국회 환노위원장인 김학용 한국당 의원은 정부가 특별연장근로 보완책을 내놓은 것에 대해 오히려 "행정입법으로 국회를 무력화하는 정부의 특별연장근로 예고를 철회해야 한다"면서 "한국당, 바른미래당은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는 기업의 연구·개발 분야에 조금이나마 숨통이라도 틔워주기 위해 선택근로제 3개월 연장과 특별연장근로시간 완화를 요구해왔다"고 더욱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이에 진보, 중도성향 언론에서는 정부와 국회에 주52시간제 취지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역할을 촉구했다.

한국일보는 사설 <中企 주 52시간제, 연착륙 필요하나 경사노위 합의 감안해야>에서 "경사노위는 이미 중소기업의 어려운 처지를 감안, 지난달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기로 의결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당은 경사노위 합의를 무시한 채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1년으로, 현재 1개월인 선택근로제 산정 기간을 3개월로 늘려야 한다며 법 개정을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1일 근로시간에 제한이 없는 선택근로제 산정 기간 연장은 정보기술 업계에 분명 필요한 것이지만 어렵게 도출한 노사 합의를 무시해서는 결코 주 52시간제 정착은 이룰 수 없다"며 "과로사회 탈피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경사노위 합의를 토대로 신속히 법을 개정한 뒤 추후 노동계와의 논의를 통해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책임 있는 정당의 자세"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사설 <또 주 52시간제 손질, 노동계와의 소통이 중요하다>에서 "9개월간 논의가 서 있다가 지난 14일 환노위에서 자유한국당은 ‘하루 노동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는’ 선택근로제와 특별연장근로 대폭 확대를 요구했다"며 "정부가 그중에 특별연장근로 물꼬를 열고 ‘경영상 사유’라는 포괄적인 잣대를 추가한 셈"이라고 풀이했다.

이어 경향신문은 "중소기업 노조 조직률은 대기업(57.3%)과 달리 100~299인 기업이 14.9%, 30~99인 기업은 3.5%에 그친다. 사업주가 임의로 노동시간을 변형·확대시켜도 노동자 개인이 뿌리치기 힘든 구조"라며 "탄력근로제와 특별연장근로 확대가 모두 수용되면, 12주 기간 단위로 주 60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한 노동자 건강권 보호조치도 위험해져 주 52시간제 법을 다시 손봐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사회적 합의선을 조율하고, 법·제도 대안을 모색하는 노동계와의 소통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겨레는 사설 <주 52시간, 언제까지 ‘땜질’ 대책으로 가야 하나>에서 "늘 생산을 '대기'하며 납기를 맞춰야 하는 대기업 협력업체가 중소기업에 많은 우리 경제 구조상, 노동시간 단축은 쉽지 않은 숙제"라면서 "하지만 장시간 노동에만 의존하는 방식으로 기업이 경쟁력을 갖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국회 입법과 정부 보완책이 '노동시간 단축'이란 큰 틀을 흔드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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