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조국 사태'를 거치며 '사실 충분성의 원칙'을 고수해 온 국내 언론의 태도가 도전받고 있다. '사실이면 뉴스가 된다', 혹은 '사실만으로 좋은 뉴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언론의 믿음은 얼핏 무해해 보이지만, 과연 저널리즘 원칙과 시대적 변화에 부합하느냐는 물음이 나온다. '사실'은 뉴스를 구성하는 한 요소일 뿐이며, '사실'과 '의견'의 구분이 필요하고, 파편화된 사실의 나열은 공중의 이해를 저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 "언론의 '단편적 사실' 보도 관행, '조국 보도'에서도 어김없이 작동"

25일 한국언론정보학회가 주최한 '언론개혁 : 취재 보도 관행과 저널리즘 원칙의 성찰' 특별세미나에서 박영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는 "언론이 시민들과 싸워 끝내 이길 수는 없다"는 전제 아래 '조국 검증 보도'를 바탕으로 언론의 고질적 관행을 짚었다.

25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는 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로 '언론개혁 : 취재 보도 관행과 저널리즘 원칙의 성찰' 특별세미나가 개최됐다. (사진=미디어스)

언론에 대한 사회적 불신과 혐오가 깊어지는 가운데 '조국 검증 보도'는 시민들과 언론 사이 간극을 재차 드러냈다. 시민들은 언론의 '받아쓰기' 관행 등을 비판하고, 언론은 표면적으로 입장을 밝히지는 않지만 적지 않은 기자들이 '기존대로 해왔을 뿐'이라는 입장을 보인다.

박 교수는 이 같은 간극이 발생하는 결정적 원인에 언론의 취재·보도 관행이 있다고 봤다. 박 교수는 "기자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해서 언론의 본질적 속성이나 불가피한 생리처럼 느껴지는 관행들이 조국 장관 보도에서도 어김없이 작동했다"면서 "익숙해서 잊고 있었을 뿐, 사실 이 관행들은 저널리즘의 기본적 원칙을 위배하거나 시민적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언론의 사실 확인 관행을 문제로 꼽았다. 언론은 '진실(truth)'을 추구하되, 수사권 등 현실적 한계상 '사실(fact)'을 보도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보도가 가능한 '사실'의 범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이다. 박 교수는 맥락이 제거된 '단편적 사실'과 맥락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종합적 사실'은 상의한 의미와 가치를 갖고, 저널리즘은 '종합적 사실'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이를 '조국 사태'에서의 언론 보도들로 설명했다. 박 교수는 8월 20일 동아일보 <고교 때 2주 인턴 조국 딸, 의학논문 제1저자 등재>기사의 경우 충분히 언론이 제기할 만한 의혹이라고 봤다. 전문가 자문을 충분히 구했고, 책임저자와 공동저자, 인사청문회 준비단에 대한 충분한 취재를 거친 이 기사는 위법사실을 밝혀낸 것이 아니라도 입시 불공정성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교수는 이후 이어진 '단편적 사실'에 근거한 여러 언론보도들에서 언론의 사실 확인 관행의 문제가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8월 22일 한국경제 <"조국 딸 유급위기 때 동기 전원 이례적 구제"> 기사는 조 전 장관 딸이 유급 위기에 처한 학기에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이 유급 대상인 동기생들 전원을 구제하는 방식으로 유급을 면하게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기사는 '해당 학기에 유급자가 없다', '이런 상황에 대해 교수들과 학생들이 이례적이라고 말한다'라는 단편적 사실만을 근거로 둔다. '조 장관 딸을 구제하기 위한 부산대 의전원의 특혜'라는 의혹제기를 뒷받침하기에는 부족한 근거이다.

8월 21일 TV조선 <조국 母, 손녀 유급 직후 그림 기증… 다음 학기부터 장학금 받아> 기사는 조 전 장관 딸이 부산대 의전원에서 첫 유급을 당한 후 지도교수가 병원장으로 있는 양산 부산대병원에 조 전 장관 어머니가 직접 그린 그림 4점을 기증했고, 공교롭게 딸 조씨가 다음 학기부터 여섯 학기 연속 장학금을 받아 석연치 않다는 의혹 보도다. 시점이 겹친다는 점, 그림 기증이 이례적이라는 병원 관계자의 말, 문제를 제기한 야당의원의 코멘트가 의혹의 근거로 제시된다. 조 전 장관의 모친이 부산대 간호학과 동문이라는 점 등 그림을 기증할 다른 요인이 있었던 만큼 더 많은 사실을 통한 의혹 검증이 필요했지만 보도는 이 수준에 머문다.

9월 4일 SBS <동양대 "조국 딸 총장상 자료 없다"… '맞춤 수여' 의혹> 기사는 조 전 장관 딸이 어머니가 교수로 있는 동양대에서 총장 표창장을 받은 것과 관련, 결재를 한 기억이 없다는 총장의 증언과 표창장 양식이 다르다는 점 등을 근거로 교수 어머니가 직접 표창장을 준 것 아니냐는 내용의 의혹 보도다. 그러나 표창장 결재 시스템에 대한 검증은 이뤄지지 않았다. 9월 5일 안동MBC <대학이 안 줬다는 조국 딸 '총장상' 정체는?> 보도에 따르면 동양대 내규 상 영어영재교육센터의 모든 업무는 총장 결재 없이 단장과 센터장 전결이 가능했다. 총장 증언과 함께 검증이 이뤄졌어야 했을 부분이었지만 SBS를 비롯해 당시 총장 증언을 다룬 언론사들에서는 이뤄지지 않았다.

사실 확인의 관행 범주에서 취재원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관행은 '조국 사태' 언론보도에서 가장 첨예한 논란이 되고 있다. 언론이 검찰을 지나치게 신뢰하고, 검찰의 관점에서 보도를 한다는 논란이다. 박 교수는 "한국 언론의 검찰 취재원에 대한 맹신과 의존은 정도와 함의에서 단순한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고 진단했다.

9월 7일 SBS <"조국 아내 연구실 PC에 '총장 직인 파일' 발견">보도는 조 전 장관의 배우자인 정경심 교수가 검찰에 임의 제출한 사무실 컴퓨터에서 동양대 총장의 도장과 직인이 파일 형태로 저장되어 있는 것이 발견됐다는 내용이다. 검찰이 유출하지 않고서는 외부에 알려질 수 없는 수사 진행 상황이 보도된 사례로 박 교수는 "저장된 직인 파일이 그 자체로 위조라는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증거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할 때 더 신중했어야 할 보도"라고 지적했다.

9월 17일 조선일보 <"조국 가족의 '동양대 표창장' 위조 수법, 영화 기생충과 닮았다"> 기사는 정 교수가 총장 직인을 사진으로 찍어 이미지 파일을 만든 뒤 이를 짜깁기 한 증명서를 여러 장 위조, 딸과 아들에게 발급한 것이 "확인됐다"는 내용이다. 검찰이 두고 있는 혐의가 확정된 사실인 것처럼 쓰인 기사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이러한 내용이 영화 '기생충'의 비유와 겹쳐지면서 피의자는 공판에 넘겨지기도 전에 여론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하게 된다"면서 "피의사실 보도가 제한되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기사"라고 평했다.

박 교수는 이른바 센 '야마'('핵심'을 뜻하는 언론계 은어)를 잡아야 좋은 기사라는 언론의 인식이 사실을 편의적으로 취사선택하거나, 사소한 사실을 침소봉대하거나, 엉뚱한 사실들을 서로 엮게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여기에 '단독' 경쟁은 무리한 '야마 잡기'를 부추긴다.

8월 22일 채널A <조국 딸, 강남 입시학원서 '구술 조교' 알바… 유급 직후에도 수익 올려> 기사는 장관 후보자의 딸이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채널A는 이를 급여의 문제로 몰았다. 이 보도에서 기자는 학원 관계자가 급여 액수를 밝히길 거부했고, 강남 학원가에선 '시급 10만원 정도 되지 않겠느냐'는 추정이 나온다면서 "하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고 한다.

9월 21일 채널A <"정경심 처음 봤다"던 병원장은 서울대 동기였다> 기사는 추석 연휴 직전 정 교수가 입원한 병원의 전산자료에 진료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 등 입원 경위에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면서 서울대 의대 81학번인 병원장이 서울대 영문학과 81학번인 정 교수와 동기라는 사실을 단독 보도한 것이다. 정 교수와 친분이 있는 병원장이 진료 기록을 삭제해주는 등의 특혜를 제공했다는 뉘앙스를 풍기지만 제시된 사실은 두 사람이 같은 대학, 다른 과의 동기라는 점 뿐이다. 진료기록이 전산에 남아있지 않은 점에 대해 기자가 의구심을 가질 수 있지만, 이를 검증하는 작업이 사실상 전혀 없는 기사라는 지적이다.

8월 21일 국민일보 <"딸이 학원 못 가니 입시 자료 달라"… 자식 입시 살뜰히 챙긴 조국>보도에 대해 박 교수는 "미담보도인지, 의혹을 남기려고 하는 것인 지 알 수가 없다"고 한탄했다. 9월 18일 조선일보 <조국 처남이 몸담은 해운사, 계열사 명의로 北석탄 운반선 소유> 기사는 조 전 장관 처남이 다녔던 해운회사의 관계사가 보유했다 중국계 선사에 팔았던 선박이 북한에서 석탄을 실어 해외로 운송했고, 이 선박이 규정을 어기고 한국에 입항했다는 내용이다. 박 교수는 "가장 황당한 단독보도"라며 "조 장관과 아무 상관없는 내용을 굳이 연결지어 보도하고 있고, 특히 연결된 내용이 묘하게 북한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악의적"이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언론의 관행을 탈피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박 교수는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보도를 '공동취재' 방식으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언론사 간 경쟁이 아닌 높은 수준의 공동취재를 통해 무책임한 의혹제기를 미연에 방지하고, 인력 보강과 중복 취재 생략 등으로 더 철저한 검증보도를 할 수 있다는 제안이다.

지난 9월 2일 국회에서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기자간담회. (사진=연합뉴스)

■ "언론, '사실이면 충분하다'는 자기기만에서 깨어나야"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한국 언론이 '사실 충분성의 원칙'이라는 '도그마'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하나의 사건 범위 내에 사실들은 차고 넘친다는 것을 언론이 모를 리 없지만, 한국 기자들은 진정으로 모르는 듯이 한 조각의 사실을 뉴스화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도그마'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조 전 장관 딸의 표창장 관련 보도가 이 같은 도그마의 전형이라고 봤다. 이 교수는 "표창장 보도를 할 때 나왔었던 수많은 증언들이 남김없이 전부 뉴스가 됐다. 이걸 문제 삼는 것"이라며 "어떤 언론사, 정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언론 전체의 관행의 문제"라고 비판했다.

세부적으로 이 교수는 ▲'발생적 사실'보다 '제도적 사실'이 더 쉽게 뉴스가 된다는 점 ▲사실성이 단독과 특종을 결정한다는 점 ▲사실확인이 한국 언론의 최고 덕목이 됐다는 점 등으로 한국 언론의 도그마를 설명했다.

이 교수는 "언론의 관행은 공무원, 검찰 등 막강한 권력자가 얘기하는 것은 다 사실에 속한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는 것"이라며 정부 관료의 발표, 검찰 수사관의 언질, 사기업의 실적 통계, 국제기구의 보고서, 전문 연구자의 논문 등은 야당의 논평, 당사자의 해명, 대안적 지표의 존재, 이견의 분포, 이설과 각론 등에 대한 검토나 별도의 배경 설명 없이도 그대로 기사화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런 관행이 이어지는 배경엔 '사실이면 충분하다'는 언론의 믿음과 더불어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언론의 모습이 깔려 있을 수 있다고 봤다. 이 교수는 "우리 언론은 사회적 영향력 행사를 위해서 상황을 한쪽으로 몰아가는 데 능한데, 이를 한국 언론의 경향성이라 불렀다"며 "경향적인 뉴스는 공중의 이해를 돕기보다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뉴스를 제작해서 유통하는 양태를 보인다. 한국 언론이 '사실 충분성의 원칙'을 도그마로 활용하는 것은 실은 이런 경향성을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전력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이 교수는 언론이 사실에 충실하면 충분하다는 자기기만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기사의 훌륭함은 주로 그 사회적 기능에 있고, 주제의 중요성에 있고, 구성의 짜임생 있고, 묘사의 절묘함에 있고, 이야기로서 전개와 반전에 담겨 있다"며 "한국 언론은 사실 보도라는 사소한 성취에 만족하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 애초에 사실 확인이라는 가짜 목표를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국 사태' 이후 언론은… 회의론부터 긍정론까지

두 교수의 문제의식에 현직 언론인을 포함한 토론자들은 공감을 표하면서 동시에 문제해결 방법에 대해서는 각 입장을 달리했다.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는 "독자들, 시민들께 굉장히 죄송하다. 언론이 반성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서 "동시에 시민이 옳은지, 그 부분은 잘 모르겠다. 모든 사람이 모든 정보를 동시간대에 많이 알게 되면서 사람들이 뉴스를 잘 믿지 않는다. 자기믿음과 뉴스가 충돌하면 뉴스를 차버린다"고 언론 수용자의 확증편향성 문제를 언급했다. 예를 들어 한겨레의 경우, 상당 수 독자들이 '유시민의 알릴레오'와 같은 취재와 주장을 요구하지만 한겨레가 그와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불가능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아울러 성 기자는 언론이 정파성, 단독경쟁, 조직 내 기자 개인의 성과 문제 등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봤다. 성 기자는 '언론이 왜 그렇게 집요하게 조국 가족을 무너뜨리는 것일까'를 생각했을 때, 언론사주의 정파성과 그 배경에 깔린 개인의 출세욕, 단독경쟁 등이 일정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박건식 MBC PD는 출입처 시스템의 문제와 함께 기자들이 생산자 관행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박 PD는 "기자들은 소비자 관행이 아니라 과거 생산자 관행에 머물러 있다"며 "출입처 관행이 핵심이다. 권력을 감시하기 위해 들어간 것일텐데, 그 기능이 어느 순간 동화의 단계를 지나 유착이 된 것이다. 정파적 문제 이전에 출입처 기자들의 인식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이광수 부산외대 인도학부 교수는 1인 미디어의 등장 등으로 언론의 경계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언론개혁의 의미는 사실상 없다는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이 교수는 "일반인들이 볼 때 언론은 신뢰도를 떠나 존재하지 않는다. 페이스북 포스팅을 보며 내 글을 쓰는 것과 검찰 의도에 따라 흘려준 것을 받아쓰는 것이 과연 무슨 차이가 있나"라며 "개혁은 '정'의 속성이 있고 '부정'으로 갔을 때 하는 건데, 그게 아니라 A에서 B로 간 것일 뿐이다. 생산자 문제가 아니라 소비자들이 귀를 닫고 정치 행위의 주체로 나섰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채영길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언론이 공동체의 저널리즘을 실천하는 것이 아닌 저널리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권력의 당사자가 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봤다. 이에 채 교수는 "기자들 간 연대성과 동질성을 해체하고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저널리스트가 되어야 한다. 기자들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어떤 공동체였는지 발견하는 게 중요히다"고 조언했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는 언론에 제기된 지적만큼 언론의 권력에 대한 감시 책무 역시 완전한 진실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보장되어야 한다며, '조국 사태' 이후 언론에 대한 토론이 한국사회의 저널리즘을 한 단계 진전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대표는 "언론이 당연히 진실을 이야기해야겠지만, 언론이 완벽한 진실을 전할 수 있는가. 언론보도는 언제나 부족하고, 오보를 내보낼 우려를 놓지 않고 의혹을 제기하지 않으면 의혹제기를 할 수 없다"면서 "언론에 대한 감시가 이어지고, 논쟁이 있고, 토론이 더 많아졌을 때 그 압박이 언론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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