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타인은 지옥이다>는 2018년 3월부터 연재를 시작하여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지방에서 올라온, 이제 겨우 인턴을 시작한 젊은이 윤종우(임시완 분)가 쪼들리는 형편으로 인해 허름하다 못해 음산한 재개발지구 고시원에 살게 되며 맞부닥치게 된, 고시원보다 더 음산한 고시원 사람들. 거기에 그의 서울살이를 팍팍하게 만드는 직장 내 인간관계 이야기가 단절된 관계 속에서 도시의 삶을 홀로 이어가는 이 시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 화제의 <타인은 지옥이다>가 김희애, 김상중이 출연한 <사라진 밤>을 감독했던 이창희 감독의 연출, OCN 드라마틱 시네마로 돌아왔다.

드라마로 돌아온 웹툰

OCN 드라마틱 시네마 <타인은 지옥이다>

화제의 웹툰이었던 만큼 시작 전부터 과연 웹툰 속 '기괴했던 인물'들이 얼마나 드라마로 잘 구현될 것인가 대한 관심이 컸다. 너스레를 떠는 말솜씨와 다르게 음산한 고시원을 방치하며 좋은 청년들만 남았다는 이상한 주인 엄복순. 더듬는 말과 기괴한 웃음소리의 306호 일명 '키위'라는 변득종. 문이 열린 방안에서 늘 어디선가 지켜보는, 안경 속 두 눈으로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치게 만들던 313호 홍남복. 그리고 멀끔하게 생겼지만 한 손으로 조폭 아저씨를 제압한다거나 306호, 313호를 벌벌 떨게 만드는 공포의 대상 유기혁 등의 캐스팅이 관건이었다. 그리고 이정은, 박종환, 이종옥, 이현욱의 캐스팅은 그런 기대에 딱 맞아떨어졌다.

거기에 이제 VR버전 서비스를 실시했다지만 드라마로 구현된 에덴고시원은 그 자체로 이미 스릴러가 된다. 폐소공포증을 불러 일으킬만한 공간으로, 고시원에 들어와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다리조차 뻗지 못하는 주인공 윤종우의 303호. 뭐 하나 멀쩡한 것이 없는, 오래된 더께가 덕지덕지 눌어붙은 화장실과 얼마나 상했으면 피가 줄줄 흐르는 계란이 구비된 부엌.

그 공간에서 종우가 머물게 된 방이 싼 이유가 사실은 그 방에서 한 사람이 자살해서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주인 아줌마와, 그런 아줌마가 말하는 좋은 청년들이라지만 도대체 좋은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기괴한 웃음소리와 불편한 시선의 동거인들. 무엇보다 자신의 공간 안에 들어와 있음에도 그 모든 음산한 공기 안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타인의 풀 안에 던져진 불편함의 극대화가 첫 회부터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 드라마의 완주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또 다른, 장르 마니아들의 열렬한 환호와 함께.

반전이 된 원작의 변주

OCN 드라마틱 시네마 <타인은 지옥이다>

하지만 원작의 충실한 고증은 동시에 이미 유명한 웹툰이 된 리메이크 작의 발목을 잡는다. 첫 회가 방영되고 나서 과연 원작 캐릭터와 싱크로율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 드라마는 이런 원작의 함정을 '변주'의 반전으로 타개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한다.

우선 윤종우가 서울에 올라온 첫날, 그의 대학 선배이자 그에게 직장을 제공한 신재호와 술자리를 갖는다. 농담인지 조롱인지 모를 신재호의 말 상대로 지친 채 술자리를 끝낸 종우가 술집 앞에 기대어 있을 때, 그의 눈앞에서 취객 두 명의 싸움이 벌어진다. 격렬해지는 싸움에 종우가 끼어 들려하자 신재호는 말리고, 원작에서는 신재호의 만류로 외면하는 바람에 그중 한 명이 죽음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드라마 속 종우는 결국 그 싸움에 뛰어든다. 원작이 타인의 무관심, 방관에 대한 경고를 주제의식으로 부각시켰다면, 같은 설정을 끌고 온 드라마는 신재호의 대사를 통해 원작의 주제 의식과 함께 군 시절의 트라우마를 상기시킨다. 드라마는 부지불식간에 감정적으로 싸움에 뛰어드는 종우를 그리며 보기엔 조용해 보이는 주인공 캐릭터의 '반전' 요소를 제공한다.

OCN 드라마틱 시네마 <타인은 지옥이다>

어떻게든 이제 막 시작한 서울 생활을 가급적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고 평탄하게 보내고 싶은 종우. 그런 그가 시작한 고시원 생활에서 정작 그를 직접적으로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은 이제 곧 나갈 거라는 안희중(현봉식 분)이다. 사사건건 종우와 부딪치는 그는 고시원에서 드러난 '폭력'적 요소다. 그러나 라면을 끓여 함께 먹던 날, 종우에게 가급적 이 고시원에서 빨리 벗어나라 진심 어린 충고를 하며 어쩌면 그는 그저 보기에만 폭력적일 뿐인 인물일지 모른다는 여지를 남긴다. 그런 그가 자신의 방에 남겨진 모조 총알로 인해 흥분하고 306호 변득종을 마구잡이로 다그치는 순간, 맞은 편에서 등장한 또 한 명의 306호. 원작에서 한 명이었던 사람이 쌍둥이로 밝혀지며 이 드라마가 원작과는 다른 궤도에 진입했음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다른 궤도의 대미는 바로 치과의사로 등장한 304호 서문조(이동욱 분)이다. 원작에서는 없던 이 인물이 과연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커진다. 그런 가운데, 원작에서 고시원의 306호, 그의 쌍둥이 형 307호, 그리고 313호가 무서워했던 인물, 사실 원작에서 최종 보스로 예정된 유기혁을 2회 만에 죽임으로써 원작의 '스포'를 무색하게 만든다. 그리고 306호, 307호, 313호 등을 하수인으로 했던, 단 한 손에 덩치 큰 안희중을 제압했던 미지의 공포 유기혁이 2회 만에 죽어버림으로써, 비로소 드라마 <타인의 지옥>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OCN 드라마틱 시네마 <타인은 지옥이다>

2회 엔딩. 고시원 사람들에게 방해하지 않기 위해, 혹은 방해받지 않기 위해 건물 옥상에서 연인에게 전화를 걸던 종우에게 다가온 서문조는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가 불쾌했던 종우는 왜 자길 보며 웃느냐며 불쾌한 질문을 던지고, 이에 서문조는 종우가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 반가워서 그랬다며 다시 미소를 보낸다. 드라마를 열었던 종우에 대한 린치. 과연 그 진실은 무엇일까? 그리고 서문조의 미소처럼 서문조와 같은 사람인, 가슴 안에 또 다른 불길을 잠재하고 있는 종우는 호락호락 당하기만 할까?

장 폴 샤르트르는 일찍이 그의 저서 <닫힌 방>에서 자유로운 존재로 정의 내려진 인간, 그러나 끊임없이 그 실존은 타인과 관계되어야 하고, 규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타인은 지옥이다'란 명제로 표현한다. 서로에게 '사형집행인'이 되어가는 사람들,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는 오늘날 이 명제에 가장 공감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정서 속 '지옥도'를 구현한다. 과연, 웹툰과 다른 드라마 속 지옥도는 어떨지, 그 본격적인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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