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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은 간다

기사승인 2019.08.19  09: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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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해, 바다와 같아라]

[미디어스] 필라델피아의 작은 대학원 Won Institute of Graduate Studies 기숙사는 언덕 높은 곳에 자리한 돌집이다. 옛날에 마을 영주가 살았다고 하는데 그래서인가 멀리서 보면 작은 성으로 보인다. 한 시절 신학교 기숙사로 쓰이다가 이제는 ‘원남홀’이란 이름을 달고 원불교 예비성직자들이 머문다.

학교 가는 길에 까칠한 개 한 마리가 살았다. 미국인들은 겨울에 개를 밖에 매 두는 법이 없기에 놈은 따뜻한 거실에서 봄을 기다렸다. 찬바람이 가시자 겨우내 유리창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던 녀석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고놈은 울타리 쳐진 정원에서 뛰놀다가도 내가 지날 적마다 유독 요란하게 짖어댔다. 주인이랑 있으면 더 심했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대서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다가 언젠가 한 번 장난삼아 겁줬더니 식겁해서는 꼬리를 내리고 잽싸게 줄행랑쳤다. 쫄보가 따로 없다. 

사진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아침 산책 나온 이들은 으레 반려견과 함께였다. 멍멍이와 댕댕이가 서로 체취를 맡는 동시에 이웃끼리 대화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매일 아침 인종만큼이나 다양한 견종을 보았다. 그중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눈에 많이 띄었다. 

늘 같은 시간 비슷한 장소에서 마주치는 콧수염이 멋진 우람한 체격의 백인 아저씨는 자그마한 시바견을 데리고 걸었다. “굿모닝” 짧은 인사를 나누고 건널목을 지나 약간 더 가면 학교본관 ‘삼성홀’이 나타났다. 

채드 교수는 학생들에게 예민한 이슈를 잡아 논쟁적 글쓰기를 해보라고 과제를 냈다. 이때 전광석화 같이 뇌리를 스친 낱말이 있었으니 바로 ‘개’였다. 불교신자라면 훗날 ‘無’자 화두의 기원이 된 조주스님과 한 사문(沙門)의 유명한 문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개에게는 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알이 없나이까?”

“있다.”

“개에게도 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알이 있나이까?”

“없다.”

그러나 내가 고른 주제는 ‘개에게 불성(佛性)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닌 ‘개고기를 먹느냐 마느냐’였다. 쟁점과 논리, 근거가 더 이상 나올 게 없을 정도로 참고자료는 차고 넘쳤다. 하지만 나의 그럴듯한 계획을 들은 채드 교수의 점잖은 얼굴이 황급히 빨개졌다. 

적잖게 당황했으리라. 개고기 식용은 미국사회에서 입 밖에 꺼내서는 안 될 금기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여느 수강생처럼 종교간 갈등, 인종차별, 빈부격차, 환경오염 가운데 하나 꼽을 거라 짐작했지 설마 개고기를 건들 줄 몰랐을 테다. 

개의 살을 먹는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평범한 미국인인 그는 개고기(dog meat)라는 단어를 차마 쓰지 못해 canine flesh라는 같은 뜻의 생소한 어휘를 사용하면서, 일그러진 표정으로 느릿느릿 또박또박 그거 안 하면 안 되냐고 꼭 그걸 해야 하냐고 물었다. 그러면서도 해보겠다는 나의 짓궂은 고집을 꺾지는 않았다. 

공자는 논어 이인里仁편에서, “군자가 천하를 대함에 있어서는 절대적으로 '이것이다' 하는 것도 없고 절대적으로 '이것은 아니다'하는 것도 없다. 매사를 옳음에 견줄 따름이다”라고 했다.  

이 말씀을 개고기를 대하는 우리네 기준으로 삼아 보면 어떨까? “먹지마라.” “상관마라.” 외치며 내 뜻과 다른 이들을 경멸하기보다 상황에 맞는 행동을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것이 성숙한 시민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누군가 “개고기를 먹지 말까요?”라고 내게 묻는다면.

“드셔도 괜찮습니다. 의사가 병든 당신에게 오직 개고기라야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처방한다면 내키지 않더라도 약으로 여기고 삼켜야겠지요. 또 만일 당신을 초대한 분이 지극한 정성으로 내놓은 요리가 보신탕이라면 매정하게 뿌리칠 수만은 없겠지요.”라고 답하겠다. 

다른 이는 “개고기를 먹어도 될까요?”라고 질문할 수 있다. 

“드시지 마세요. 단지 호기심 때문이라면, 개고기 맛에 오래 길들여진 뇌가 내리는 명령이라면 잘 익은 살점을 집으려는 젓가락질을 이제 그만 멈추셔도 좋겠습니다. 이미 배부르면서 굳이 단고기까지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대 앞에 놓인 개장국 한 그릇에 한 삶이 담겨 있습니다. 당신의 즐거운 혀 뒤에는 더러운 뜬장에 갇혀 악취와 질병에 시달리다 도살을 맞이하는 개들의 비명이 깃들어 있습니다.”

원불교에 다리 넷 달린 짐승의 살을 먹지 말라는 계문이 있으니 나는 개, 돼지, 소, 말, 양, 염소 등이 품은 생명의 가치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음식을 마련할 때는 파, 마늘, 달래, 부추와 육식을 삼가고 수행에 긴요한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한 것 이상의 식욕을 덜어낼 뿐이다. 

올해 복날은 갔다. 그간 동네 개 여러 마리가 사라졌다. 그리고 낡은 빈 집에 새로 들인 강아지가 1m 목줄에 묶인 채 바동거리는 풍경을 본다. 사람이 숨을 거두면 가까운 정분을 좇아 다시 태어나기 십상인데 모습을 달리해 새 몸 받아 찾아온 옛 인연을 먹거리로 길러서야 쓰겠는가. 알고서는 못 할 일이다. 나는 그러하지 못하겠다.   

한 교우敎友가 약용으로 산 잉어를 바치거늘 “죽은 것은 없더냐?” 하시고, 그가 간 후 시자侍者에게 “못에 놓아기르라.” 하시니라. - 원불교 정산종사법어 14:32

백종훈 원불교 교무 webmaster@mediaus.co.kr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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