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덕분에 ‘사노맹’ 이름을 다시 들었다. 조국 후보자가 과거 사노맹 활동을 한 것은 문제이며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서 결격사유라는 지적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내놨기 때문이다.

‘약발’이 오래가진 않았다. 이유가 있다. 첫째, 사노맹 사건은 이미 25년도 더 된 일이기 때문이다. 둘째,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인사검증 책임론이나 코드 회전문 인사론도 있는데 굳이 색깔론을 꺼내 들 이유가 없다는 전략적 주장이 보수정치 내부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셋째, 조국 후보자가 사노맹의 핵심으로서 활동을 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언론이 확인한 대로 조국 후보자가 활동했다는 조직은 사노맹의 산하기관쯤 되는 ‘남한사회과학원(사과원)’이다. 당시 재판부는 사노맹은 ‘반국가단체’로, 사과원은 ‘이적단체’로 판결했다. 조국 후보자가 상대적으로 낮은 형량을 선고 받은 이유 중 하나이다. 그마저도 권유를 몇 차례 거절했다가 끝에는 자진탈퇴했다고 하는 소극적인 태도였다는 점이 참작됐다.

사과원이 사노맹의 이론적 배후 역할을 했다는 점에 주목하더라도 이제와서 ‘사상검증’의 칼을 휘두르기는 쉽지 않다. 1994년 국제엠네스티는 사노맹 사건에 연루된 관계자들이 불공정한 재판을 받거나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이유로 이들을 정치범 및 양심수로 규정했다. 조국 후보자도 여기에 포함됐다. 또 이들 중 일부는 1999년에 특별사면 및 복권 조치를 받았고 이명박 정권 시절이던 2008년 12월에는 박노해 시인과 백태웅 씨 등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기도 했다. 그러니 이제와서 ‘불순한 사상’을 말할 거리가 못 된다.

사노맹이 사회주의를 내걸고 계급투쟁을 수단으로 자본주의를 뒤엎자는 주장을 했다거나 무장투쟁을 선동했다는 점에서 특별히 악독한 조직이었던 양 말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감안해야 한다. 당시 자신들이 군부독재에 항거하고 있다고 생각한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 조직의 구성원들이 무장투쟁을 주장한 것은 희귀한 일이 아니었다.

사노맹이 다른 ‘운동단체’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주장을 한 것은 그 시점에 남한에 독자적인 비합법전위당을 만들자고 한 것 정도이다. 당시 사노맹 활동을 했던 은수미 성남시장의 경우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과거 과격한 용어를 많이 사용했지만 결국 하려고 했던 건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것 정도였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조국 후보자가 ‘경제민주화’를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사직로 적선현대빌딩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따지고 보면 ‘얘기가 안 되는’ 것들 투성이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이것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려고 한다. 조선일보는 16일 사설에 “한때 프롤레타리아 계급 혁명을 부르짖었고, 그 후에도 '약자와 빈자 편'이라던 사람이 제 재산은 56억원이 넘는 재산가라면 이를 쉽게 받아들일 국민이 얼마나 되겠나”라면서 “'다중 인격자' 같다고 생각하지 않겠나”라고 썼다. 조국 후보자의 재산 형성 과정에 대한 의문에 색깔론을 결합한 기상천외한 논리이다. 조선일보는 “이 사람의 내로남불은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라며 “이번에도 '맞으며 간다' '직진한다' '비 오면 비 맞는다'는 등으로 말장난을 할 것이다”라고도 했다.

다른 건 제쳐놓더라도 재산이 많은 사람이 진보적 사상을 갖는 게 ‘내로남불’이라는 것은 고약한 논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재산이 많은 사람도 평등한 사회를 꿈꿀 수 있고 이를 위한 정치적 실천에 나설 수 있다. 세상을 바꾸자 하지 말고 가진 재산으로 남을 도우라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전 재산을 기부하는 것보다는 정치결사체를 만드는 게 좀 더 세상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재산이 많은 사람이 진보적 사상을 말하는 것은 ‘위선’이라는 주장은 정치가 대의명분이 아니라 오직 이해관계의 반영으로만 작동한다는 냉소적 현실인식을 전제한다. 이런 인식은 결론적으로 정치적 문제를 개인화, 파편화시킨다는 점에서 탈정치의 주요 논리를 형성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주제가 사노맹이든 조국 후보자든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문제’임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것은 예컨대 이런 질문이다. 법조인 특히 검찰 출신의 전유물이던 법무부 장관직이 이 정부 들어 적어도 법학 교수 출신 정도는 맡을 수 있는 직책이 된 것은 역사의 진보인가? 장관 인사는 능력과 대표성 중 무엇을 중요시해야 하나? 조국 후보자는 민의를 대표하는 인물인가, 법조-엘리트에 가까운 인물인가? 그런 점에서, 사회주의자 법무부 장관은 앞으로도 불가능한가? 재산 형성 과정이나 위장전입 이력을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번 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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