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치러진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의 자민당은 ‘단독으로’ 과반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다시 공명당과 연립여당을 구성해야만 한다. 또한 아베가 필생의 업적으로 추진해온 일본 헌법 개정의 정족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아베는 선거 후 언론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는 개헌을 묻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아베의 인터뷰에 의아할 수밖에 없지만 이를 비판할 언론이 없는 일본의 현실을 말해준다. 그러나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일본 참의원 선거를 주목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자민당의 개헌선 확보 여부에 있었다. 일본이 전쟁할 수 있는 국가, 즉 다른 나라와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의 전환 가능성이었다.

아베, 참의원 선거 과반 확보…‘개헌 발의선’ 확보는 실패(KBS 뉴스 보도화면 갈무리)

그러나 선거 결과는, 다시 말해서 일본 민심은 평화헌법의 개정을 원하지 않았다. 아베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22일 자 한국 언론 보도는 대부분 ‘개헌선 확보 실패’에 맞춰졌다. 일본 헌법개정이 아베가 일생의 업적으로 추진해온 것을 감안한다면 이번 선거는 아베의 패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도 과반을 차지했으니 승리라고 말할 수 없는 실질적 패배인 것이다.

아베는 자유무역의 가치를 강조했던 G20 정상회담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한국에 수출규제를 단행했다. 자신들도 그만한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과도한 조치였다. 그렇게까지 한 이유는 선거 때문이었다는 것이 이견 없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개헌선 확보에 실패했다면 이번 선거의 의미는 과반 확보에 방점을 찍을 수는 없는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아베의 승리에 방점을 찍는 언론이 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이다. 조선일보 1면의 “아베, 이변 없는 승리”라는 타이틀이 눈에 띈다. 중앙일보는 “아베, 참의원 과반 얻자마자 한, 제대로 된 답변 가져오라”는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는 직설화법을 사용했고, 중앙일보는 간접적으로 아베의 승리에 무게를 두었다.

물론 조선과 중앙만 그런 것은 아니다. 포털에 ‘일본 참의원 선거’로 검색을 하면 대부분의 언론 기사 제목이 유사하다. “아베, 일본 참의원 선거 승리, 개헌 발의선 확보 실패”라는 기사들이 줄을 잇는다. 특히 경향신문은 “선거 낙승한 아베”라고 했다. JTBC, SBS, YTN, 노컷뉴스 등이 ‘반쪽 승리’라는 표현을 썼다. 또한 JTBC는 자민당이 압승을 거뒀던 6년 전 선거보다 의석수가 ‘줄어든’ 사실에 주목했다.

[오늘의 1면] 아베, 이변 없는 승리… 2019년 7월 22일 / 조선일보 (네이버 TV 영상 갈무리)

일본 방송을 통해 본 일본 선거 개표상황에서 아베의 표정은 어두웠다. 아무리 우호적으로 해석해도 승리의 표정은 아니었다. 심지어 인터뷰 때의 표정 역시 밝지 못했다. 물론 아베는 과반의 의석을 확보했다. 여전히 일본 정치를 주도할 힘은 유지되는 것이다. 그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승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베의 어두운 표정 그리고 굳이 “개헌을 묻는 선거가 아니었다”는 아베의 말바꾸기에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패배를 읽게 된다. 그럼에도 한국 언론들이 자민당의 승리라고 말하는 것은 연립 여당의 의석이 절반을 넘었다는 기계적 판단에 의한 것에 불과하다. 일본 참의원 선거의 진정한 의미는 실종됐다. 이처럼 일본 선거 결과에 대한 고민 없는 시각이 우리 정부와 국민의 일본 대응에 영향이 없을지 우려가 된다.

적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적을 과소평가해서도 안 되지만 과대평가는 더욱 위험하다. 전쟁에 있어 때로 전력을 뛰어넘는 요소는 사기이다. ‘아베의 승리’라는 표현은 팩트로서도 불충분하고, 아베와 싸우는 정부와 국민들의 사기 진작에도 적절치 못하다. 기사에 굳이 애국심을 담으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일본과 분쟁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는 말자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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