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지난 14일 박환성·김광일 PD 사망 2주기였다. 유족들은 사고가 발생한 지 2년이 지났지만 박환성·김광일 PD의 죽음에 책임을 지는 주체는 없다며 EBS의 진심어린 사과와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EBS는 ‘사고의 책임은 우리에게 있지 않으며, 유족에게 위로금을 줬다’는 입장이다.

박환성·김광일 PD는 2017년 7월 14일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들은 부족한 제작비 때문에 운전기사 없이 스스로 운전을 했다고 한다. 사고 이후 EBS가 제작비를 삭감하고 박환성 PD에게 정부 제작지원금 40%를 간접비로 납부할 것을 요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진=한국독립PD협회)

박환성 PD 유족은 EBS 임직원 2명에 대해 업무 방해와 명예훼손을 적용해 형사 고소장을 제출했다. 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됐다. 사고 조사를 위해 EBS·한국독립PD협회·언론개혁시민연대 3자 협의체가 꾸려졌지만 장해랑 사장이 임명된 후 협의체는 해체됐다.

EBS는 박환성·김광일 PD 사건에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EBS는 미디어스에 “박환성 PD에게 간접비를 요구한 사실이 없다”면서 “'외주제작사 상생 협력 방안'에 따르면 정부 제작지원 사업에는 간접비 20%를 적용하고 있다. 40%를 EBS에 귀속시킬 순 없다”고 주장했다. EBS는 “RAPA 제작지원사업은 독립제작사가 저작권을 일체 소유하고 있을 때만 적용되는 사업”이라면서 “야수의 방주가 RAPA 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된 후 EBS와의 저작권 문제가 발생했다. EBS는 저작재산권자로 당연한 권리를 행사한 것”이라고 밝혔다.

제작 예산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서 EBS는 “박환성 PD는 3편에 2억 1000만 원의 제작비를 요청했다. EBS는 2편에 1억 4000만 원으로 제작비를 조정하고 계약을 체결했다”고 했다. 제작 편수를 3편에서 2편으로 조정했기 때문에 제작비 삭감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EBS는 “박환성·김광일 PD 유족에 위로금을 지급했으며 사고 이후 정부제작지원 사업에서 간접비를 받지 않고 있다. 또 외주제작환경 안전 대책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족과 한국독립PD협회는 “박환성·김광일 PD 사고의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EBS의 주장이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한경수 독립PD는 “EBS는 간접비 40%를 요구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백 모 PD와 박환성 PD가 주고받은 문자가 있다”면서 “백 PD는 박환성 PD에게 ‘간접비를 40%로 하기로 했다’고 문자를 보냈다”고 밝혔다.

실제 백 PD는 박환성 PD에게 “협력 제작업체 상생방안 기준에 의해 1억 2천 수탁금에 대해 20% 인센티브, 40% 제작비 투여, EBS 간접비 환수로 진행된다고 한다. 콘텐츠협력제작부에서 전담 진행한다고 한다”는 문자메세지를 보냈다.

▲EBS 외주제작사 상생 협력방안(왼쪽), 백 모 PD가 박환성 PD에게 보낸 문자메세지(오른쪽)

이러한 요구는 <외주제작사 상생 협력 방안>에 따른 것이었다. EBS <외주제작사 상생 협력 방안>에는 “신규프로그램에 협찬을 유치하면 인센티브 20%·EBS 간접비 20%·제작비 60%를 적용한다. 제작 중 프로그램에 협찬을 유치하면 인센티브 20%·EBS 간접비 40%·추가제작비 40%를 적용한다”는 내용이 있다. 백 PD는 야수의 방주를 ‘제작 중 프로그램’으로 간주하고 간접비 40%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한경수 PD는 “일반적인 정부 제작비 지원 사업은 영상물의 저작권이 독립PD에 귀속되도록 규정한다”면서 “이는 독립PD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정부 정책”이라고 말했다. 한경수 PD는 “박환성 PD에게 정부지원금 신청하라고 제안한 쪽은 EBS였다”면서 “이러면 방송사는 독립PD에게 저작권을 넘겨주는 경우가 많다. 일방적으로 (방송사가) 저작권을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경수 PD는 EBS가 박환성 PD에게 준 2편·1억 4000만 원은 제작비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한경수 PD는 “단순히 제작 편수를 줄인다고 제작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야수의 방주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촬영을 해야 하는 다큐멘터리다. 자연 다큐 PD에게 ‘1편당 7천만 원으로 자연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냐’고 물어보면 모두 불가능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한경수 PD는 “산술적으로만 보면 2억이라는 돈이 크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MBC 본사 PD가 자연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수십억을 투자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2억이 어떤 금액인지 알 수 있다”면서 “적은 제작비로 촬영을 하려다 보니 박환성·김광일 PD가 스태프 없이 남아공으로 간 것이다. 그래서 사고가 난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수 PD는 “EBS의 주장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일관된다. 제작비는 삭감하고, 저작권은 자신들이 가지겠다는 것”이라면서 “이게 공영방송사가 해야 할 일인가. EBS가 독립PD에 갑질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규학 전 독립PD협회 회장은 EBS의 간접비 요구가 일상화된 관행이라고 밝혔다. 송 전 회장은 “박환성 PD가 생전에 EBS의 40% 간접비 요구에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을 봤다”면서 “간접비 요구는 박환성 PD만의 문제가 아니다. 방송사는 외주 프로그램이 정부 제작지원을 받으면 간접비를 요구해 왔다”고 말했다,

송 전 회장은 “해외 자연 다큐 2편을 찍는데 제작비 1억 4000만 원은 매우 적은 금액”이라면서 “촬영일수·항공료·스태프 인건비를 따진다면 1억 4000만 원으로 부족하다. 방송사가 제작비를 줄이면 다른 제작 스태프의 인건비가 줄어들게 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개최된 '고 박환성 PD가 제기한 EBS의 불공정행위 진상규명을 촉구한다' 기자회견 (사진=미디어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EBS가 박환성·김광일 PD 사고 수습에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김동찬 처장은 “박환성·김광일 PD 사망 이후 EBS·한국독립PD협회·언론개혁시민연대가 위원회를 꾸렸다. 당시 우리는 40% 간접비 요구에 대해 진상조사를 하자고 했다”면서 “하지만 장해랑 사장이 취임하면서 EBS 측에서 진상조사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김동찬 처장은 “저작권 문제도 그렇다. EBS는 박환성 PD에게 저작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제작비가 부족해 정부지원금을 받았는데 계약상 문제가 있다. 같이 협의를 해서 조율을 하자’고 말해야 정상”이라면서 “EBS는 박환성 PD에게 ‘너가 저작권 조항을 고쳐와라’고 요구했다. EBS가 박환성 PD를 압박한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김동찬 처장은 “이번 사고의 책임을 박환성 PD에게 지우는 것은 돌아가신 분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면서 “EBS는 진상조사를 거부했다. 그리고 사고가 발생한 지 2년이 지났지만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김동찬 처장은 “EBS가 독립PD에 대한 불공정 관행을 바꾸려는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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