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자유한국당이 국회 복귀를 하려다가 말면서 정국은 더 꼬이고 있다. 24일 의총에서 합의안이 거부된 이후 자유한국당은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여당은 “꿈도 꾸지 말라”는 반응이다. 이것은 자유한국당에 결코 유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자초한 것에 대한 해석이 그야말로 분분하다.

자유한국당이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의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의 구상이 충돌한 결과라는 해석이다. 황교안 대표는 원외인사이고 차기 대권주자라는 점에서 자신이 스포트라이트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국회 복귀를 반대하고 있지만, 나경원 원내대표는 자신의 역할 확대를 위해서라도 국회 정상화를 추진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라는 거다.

일리가 있는 해석이지만 의문이 남는 대목도 있다. 이 해석대로라면 24일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의 결과는 황교안 대표의 구상이 관철된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황교안 대표가 이후 상황을 다시 주도하는 분위기가 보여야 한다. 그런데 25일 자유한국당의 분위기는 오히려 우왕좌왕에 가까웠다. 의원총회에서 합의안 추인이 거부될 경우를 전제한 시나리오가 가동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보면 ‘투톱’의 구상이 충돌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도부의 총체적으로 부실한 리더십이 확인됐다고 말하는 게 올바른 해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황교안 대표는 국회 정상화 합의에 대해 원내의 일과 관련한 것은 나경원 원내대표에게 일임했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놓고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모든 결정은 황교안 대표와 교감 속에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설명에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다면 국회 정상화와 관련해서는 황교안 대표가 자기 목소리를 강하게 내지 않고 있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차기 대권주자인 당 대표가 명확한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는 것은 여야의 합의안이 정치적 방어막(?)이 없는 상태에서 다뤄질 수밖에 없다는 걸 의미한다. 합의를 합의 자체로서 본다면 자유한국당 내 강경파 의원들이 주장하는 “얻은 게 없다”는 평가도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패스트트랙 지정 안건의 처리 방식은 “합의정신에 따른다”는 불분명한 선언으로 봉합됐고, 국회선진화법 위반에 대한 고소 고발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사안은 내년 총선의 상황과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23일 오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구멍난 군사경계! 청와대 은폐조작! 문정권 규탄대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나경원 원내대표도 “얻은 게 없다”는 지적에 대해선 나름대로의 계획을 주장한 걸로 알려져 있다. 일단 국회를 정상화 하고 오는 30일로 예정된 정개특위 활동 기한의 연장에 동의하면서 위원장을 자유한국당 소속 인사로 교체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구상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거부된 걸로 보인다. 첫째는 여당이 현 위원장인 심상정 의원을 교체하는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없다는 거고, 둘째는 선거법이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이미 지정된 상태에선 큰 실효성이 없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경원 원내대표가 좀 더 의지를 갖고 명확한 전망을 바탕으로 소속 의원들에 대한 설득에 나설 수 있었다면 불균형한 협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합의안은 추인될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장에서 아예 조건없는 등원으로 일종의 정치적 역습을 가하자는 의견이 나왔다는 점을 봐도 그렇다. 자유한국당의 관점에서 보자면 국회에 복귀가 이뤄질 경우 할 수 있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자유한국당이 최근의 북한 목선 귀순 문제나 노후 수도관 문제 등 제한적 범위에서 선별적으로 상임위에 참여하겠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앞서 언급한 대로 황교안 대표가 현장에서 합의안 추인에 힘을 실어줄 수 있도록 설득하는 정치적 역량을 발휘했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수 있다. 그렇다면 황교안 대표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배경은 무엇인가? 먼저 원내 정치 경험이 없는 인사로서 미숙함을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 그렇잖아도 황교안 대표는 아들의 ’스펙’ 및 특혜 취업 논란이나 중소기업의 노동 조건 개선 등의 문제에서 연일 실언을 내놓고 수습에 급급한 상태다. 이런 일들은 ‘정치 초보’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데 원내 전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원외의 극단주의자들이 목소리를 키우는 국면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우리공화당으로 이름을 바꾼 대한애국당은 연동형비례대표제가 도입되는 것을 전제로 현역 의원 영입 등에 공을 들이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마케팅을 통해 정당지지율을 확보하면 최소한 대구경북 지역에서 승부가 가능하다고 본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 몸 담았던 상징적 인물인 황교안 대표 입장에선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움직임이다.

이런 여러 조건들이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결단력 부족과 리더십 붕괴를 촉발시켰고 합의안 추인 불발의 근본적 원인이 됐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조건이 당분간 변할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 추가 협상을 통한 합의를 모색하는 것도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전국우정노조가 파업을 선언한 상황 등에서 국회의 역할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추경 논의에 집배원 추가 채용 등의 예산을 반영하는 것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KBS 등의 보도에 의하면 집배원 추가 채용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해 예산 논의 때 여야가 원칙적인 공감대를 이룬 바 있다.

자유한국당의 국회 복귀는 자신들 스스로에게도 필요한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하는 여당에게 절실한 문제이다. 따라서 적극적인 협상 기조를 유지하면서 국민 여론에 호소하는 것으로 압력을 키우는 전략을 유지해 갈 필요가 있다.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극단적인 지지층의 여론에만 끌려가선 미래가 없다는 판단을 해야 ‘결단’이 가능할 것이다. 이 점에서 국회 정상화의 필요성을 스스로 증명하는 정치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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