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범죄에 대한 언론 매체의 태도는 우리 사회의 어떤 본질을 보여 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실체를 이해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불안을 우리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소화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어느 여성이 전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사건의 사례는 최근의 대표적 사례이다. 범인의 신상공개 방식부터 논란거리가 됐던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불안의 원인을 ‘괴물’의 탓으로 돌리면서 스스로 어떻게 안도감을 찾고 있는지를 가르쳐 준다.

대부분의 범죄에는 동기가 있기 마련이다. 이 동기가 다수의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되지 않을 때 괴물이 탄생한다. 이 사건의 범인의 동기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것은 정신질환이다. 유명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경계선 성격장애를 언급했고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말하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성격장애를 범죄의 원인 중 하나인 것처럼 말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경계선 성격장애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부터 시작된 잘못된 귀인과 이로 인한 사실오인 등으로 타인을 대상으로 한 극단적 정서적 불안정성을 특징으로 한다. 심각한 경우 이런 문제가 자해나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학문적 차원에서는 이런 성격장애로 인해 생겨난 어떤 사고방식이 범죄 행위로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됐을 가능성을 논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론 형성을 위한 언론 보도라는 점에서 본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성격장애는 환청이나 환각 등의 심각한 인지적 문제를 동반하는 조현병과는 다르다. 성격장애는 그것이 병증의 정도에 이르지 않는다면 개인의 어떤 성격적 특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범죄의 원인을 설명하는 어떤 결정적 요인으로 볼 수 없다. 즉, 성격장애의 유무가 범죄와 갖는 연관성은 간접적인 것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이 사건의 범인은 성격장애 진단을 공식적으로 받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범인의 경계선 성격장애 가능성을 추론한 유명 범죄심리학과 교수의 견해가 다수 언론에 인용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앞서 언급했듯 우리가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존재의 괴물적 성격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어떤 범죄자의 ‘과도하게 다혈질적인 성격’이 범죄의 원인이 됐다는 설명을 가정해보자. 대다수 사람들은 이런 설명이 불충분하며 ‘진정한 범죄의 원인’은 여전히 감춰져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전문가가 범인을 두고 “분노조절장애의 특징이 관찰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진정한 범죄의 원인’을 드디어 찾았다는 듯 반응한다.

그러나 범죄와의 연관성만 놓고 말하자면 ‘과도하게 다혈질적인 성격’이나 ‘분노조절장애의 특징’이라는 표현은 모두 동일한 가치의 정보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후자가 범죄의 원인으로서 더욱 정확한 설명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실이 보여주는 건 무엇인가? 정신질환에 대한 언급이 범죄자를 어떤 예외적 존재로 규정해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제주 전 남편 살해 사건' 피의자 고유정이 12일 오전 제주 동부경찰서에서 제주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이게 불특정 다수의 대중들이 이 대목에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이유일텐데, 여기서 사태를 심각하게 만드는 두 번째 요인이 등장한다. 범인의 괴물적 면모에 대한 과잉 보도의 문제가 확대되는 것에는 결국 조회수나 시청률로 먹고 살아야 하는 언론 매체의 생리가 반영된다는 것이다.

MBC의 ‘실화탐사대’나 SBS의 ‘궁금한 이야기 Y’ 등이 범인의 대학 시절이나 신혼여행 에피소드 등을 다루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동원하는 문법은 만능에 가깝다. 범인의 일상 생활에 범죄를 연상하게 할 수 있는 행동이 나왔다면 역시 범죄자의 본질은 숨길 수 없었다고 평가하면 되고, 그렇지 않고 범죄와 큰 관계가 없는 것 같으면 어떤 괴물적인 ‘이중성’을 말하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역으로 깨닫게 되는 것은 매스미디어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사람이든 괴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언론 매체의 괴물-재생산 매커니즘의 유지에는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이나 종편 이후 등장한 좌담형 프로그램에 단골로 등장하는 시사평론가들 역시도 일조하고 있다. 이 사건의 범인이 화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피해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뼛조각에서 DNA가 발견되지 않도록 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 확산된 게 대표적이다. 어느 시사평론가가 라디오 방송 등에서 언급한 이 주장은 다수의 언론에 의해 인용되면서 재생산됐다. 결국 범인이 졸업한 대학과 경찰이 화학과 졸업 등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걸 공식적으로 밝혀야 했다.

이런 점을 종합해보면 범인의 정신질환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개인의 어떤 괴물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괴물’이 등장하더라도 그 존재가 주변에 끼치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근본적 해결책을 구하는 것에 논의를 집중해야 한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라면 부모가 이혼한 경우 자녀의 양육권 문제나 면접교섭권 행사와 관련한 제도적 미비 등에 방점을 찍고 좀 더 논해볼 필요가 있다.

실제 언론이 이런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아니라 모두가 ‘괴물’만 쳐다보는 것은 오히려 문제 해결을 회피하며 현상을 유지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회피하는 게 아니라 대면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문제를 대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언론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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