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5. 환성 사무실 입구

박환성 “우리가 여기에 모인 이유. 우리 모두가 지금 겪고 있는 방송 불공정 문제, 저작권 문제, 방송사 갑질, 폭행 사건 등 너무 많은 일에 대해서 이야기 좀 하려고 불렀어. 우리가 남아공에서 돌아오면 그때부터 시작이야. 내가 방송 일을 그만두는 한이 있어도… 다 바로 잡을 거야”

김광일 “저도 남아공 다녀와서 참여할게요. 지금 참여하지 않으면 변화하기도 어려울 것 같으니까요”

7월 13일 고 박환성·김광일 PD의 2주기 추모 행사 ‘멈춘 시간’이 열린다. 추모 행사에서는 고 박환성·김광일 PD가 아프리카로 출국하기 2일 전 있었던 일을 다룬 단편영화가 상영된다. 단편영화에는 독립 PD의 열악한 환경, EBS의 제작지원비 상납 요구 상황이 상세히 담겨있다. 김광일 PD의 부인인 오영미 작가는 “이제 고 박환성·김광일 PD에 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지만, 우리라도 이분들을 되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추모 행사는 7월 13일 오후 6시 부평 문화사랑방에서 개최된다. 행사 1부에서는 추도식 및 단편영화 상영 및 간담회가, 2부에서는 부활 8대 보컬이었던 가수 정단·하림·비쥬·성용 등의 공연이 열린다. 가수들은 고 박환성·김광일 PD가 즐겨 부르던 노래로 공연을 할 계획이다.

▲단편영화 '멈춘 시간' 촬영 현장 (사진=오영미 작가)

추모 행사와 단편영화는 고 박환성·김광일 PD의 죽음을 기리는 이들의 재능 기부로 이뤄진다. 추모 행사의 기획자인 가수 성용은 “현재 행사나 영화 촬영은 별다른 후원 없이 유족의 사비로 진행된다”면서 “가수, 제작진, 배우 등 많은 분이 재능 기부를 했다. 영화 촬영 및 행사에 참여하는 분 중 돈을 받고 온 사람들은 없다. 이번 행사의 취지를 이해해 도와주고 싶다는 분들만 모셨다”고 밝혔다.

성우 겸 배우 이규화 씨는 단편영화 '멈춘 시간'에서 박환성 PD 역할을 연기한다. 이규화 씨는 KBS 외화드라마 X파일의 멀더 역을 맡은 바 있다. 김광일 PD역은 tvN 푸른거탑에 출연한 배우 주효준 씨다.

고 박환성 PD는 지난해 다큐멘터리 ‘야수와 방주’를 찍기 위해 EBS에 제작비 2억 1000만 원을 신청했다. EBS는 1억 4000만 원만 지원했다. 제작비가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야수와 방주’는 RAPA의 ‘2017년 차세대 방송용 콘텐츠(UHD)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1억 2000만 원을 추가 지원받게 되었다. 이후 EBS는 박환성 PD에게 “RAPA와의 계약서에 지적 재산권을 방송사업자에 양도할 수 있다는 문구를 넣어라”고 요구했다. 자신들이 다큐멘터리 저작권을 소유하겠다는 것이었다.

EBS는 박환성 PD에게 제작지원금의 40%를 간접비로 납부할 것을 요구했다. 박환성 PD가 응하지 않자 EBS는 지원금을 주지 않는 것이 계약 해지 사유에 들어간다는 식으로 말했다. 또 EBS는 제작비 정산 내역, 촬영 원본을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박환성 PD는 제작지원금 납부 요구에 응하고 공정거래위원회에 민원을 넣었다. 그 후 촬영을 위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떠났고 사고를 당했다. 사고 당시 박환성·김광일 PD는 운전기사를 고용하지 않고 직접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박환성 PD 유족은 EBS 임직원 2명에 대해 업무 방해와 명예훼손을 적용해 형사 고소장을 제출했다. 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됐다. 박환성 PD가 남아공으로 떠나기 전 제출한 공정거래위원회 민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5월 열린 <고 박환성 PD가 제기한 EBS의 불공정행위 진상규명을 촉구한다> 기자회견 (사진=미디어스)

두 독립 PD의 죽음에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었다. 박환성·김광일 PD에게 제작비 상납을 요구한 PD는 유족에게 별다른 사과를 하지 않았다. 우종범 전 EBS 사장은 박환성 PD의 유족·언론개혁시민연대와 함께 ‘EBS 협의체’를 만들어 이 사건의 대책을 강구했다. 하지만 장해랑 사장이 취임한 후 협의체는 멈췄다.

독립PD협회가 장해랑 사장에게 사과를 요구했지만, 장 사장은 “시스템에 의한 문제이지 두 임직원이 사과할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장해랑 사장은 고 박환성·김광일 PD 1주기 때 초청장을 받았지만 참석하지 않았으며, 화환도 보내지 않았다. 반면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류지열 한국PD연합회장, 양승동 KBS 사장, 최승호 MBC 사장, 박정훈 SBS 사장은 화환을 보냈다. 장해랑 사장 이후 임명된 김명중 사장 역시 유가족에게 사과하지 않고 있다.

오영미 작가는 EBS가 고 박환성·김광일 PD의 죽음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영미 작가는 13일 독립영화 ‘멈춘 시간’ 촬영장에서 미디어스와 만나 “EBS에서 우리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한 적이 없다”면서 “두 PD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 EBS의 사과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했다.

오영미 작가는 대중의 관심이 사그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오영미 작가는 “사고가 났을 때는 사람들의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1주기가 지나고 나선 아무도 이번 사건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서 “1주기 당시 찾아온 정치인, 언론들은 이후 연락이 없었다. 너무 힘들었던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오영미 작가는 “두 PD의 죽음은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오랫동안 회자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관심을 가져줄 거냐’고 발언한 적 있다. 실제로 그 이후 조용해졌고, 다들 그냥 넘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박환성 PD의 동생 박경준 씨는 “대중의 관심사가 바뀌자 정치권에서 사건 해결에 대한 특별한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박경준 씨는 “이번 추모 행사는 두 PD가 잊히지 않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추모제 내용 또한 이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내용이 주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송규학 전 한국독립PD협회 협회장은 “장해랑 사장은 KBS PD때 후배들이 존경하는 선배였다. 많은 독립 PD들은 장해랑 사장이 EBS 사장으로 오면 뭔가 풀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런데 막상 취임하고 나니까 입장이 달라졌다. 유가족이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자 장해랑 사장은 ‘사내 직원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했다.

단편영화 ‘멈춘 시간’은 다음과 같은 대사로 마무리된다.

#14. 환성 사무실 옥상

광일 “선배님, 우리도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가 오겠죠?”

환성 “광일아… 지금은 좀 힘들겠지. 그래도, 곧 바뀔 거야. 안 되면 뭐 까짓거 우리가 한번 바꿔보자!”

광일 “그럴 수 있겠죠?”

환성 “당연하지. 자,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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