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폭죽처럼 꽃망울 터지던 늦봄. 하늘거리는 옷맵시에 환한 웃음 머금은 아가씨들이 길을 빛낸다. 끌리는 마음에 눈길을 놓지 못한다. 햇살 따사롭던 그날, 손그늘을 만들려다 빡빡 민 머리를 만지고 만다. 아! 돌연 헛웃음 지으며 고개 숙인다.

“니가 목석이간디?” 어른 말씀이 생각났다.

1년여의 간사(행자)생활을 마친 이듬해, 서른 셋 나이로 원불교학과에 편입했다. 예비교무 기숙사에 짐을 풀었다. 복학생 P가 재미난 장난감을 샀다며 여럿 앞에서 택배상자를 풀었다. 거짓말 탐지기였다. 반구형 기계 몸통 위쪽 금속 표면에 손바닥 모양으로 홈이 패여 있었다. 거짓말을 하면 전류가 찌릿 흐른다고 했다.

누구를 먼저 시험 해볼까 두리번거리다 곁을 지나던 신입생 한 명을 골랐다. 장치 위에 손을 얹게 하고 밴드로 묶었다. 전원을 넣자 윙 소리가 났다. 새내기는 자못 긴장했다. 개구쟁이 P가 짓궂게 묻는다.

“너 정화원(여성 예비성직자 기숙사)에 좋아하는 사람 있지?”
“아니요. 아니요.” 황급히 고개를 휘젓다가. “아아. 아아아 앗!!”
“누구야? 응? 누구야?” 선배들이 이제 갓 고등학교 졸업하고 출가한 어린 도반을 골려 먹는다.

나도 한술 거들었다. “혹시 염불 시간에 유달리 잘 들리는 목소리가 있던가?”
“C 교우요.”
“어라!? 100명이 큰 소리로 염불하는데 C를 알아낸다고?”
어리석을 만치 솔직한 그를 둘러싼 모두가 손뼉을 치며 자지러진다.

대전 뿌리공원 연리지(연합뉴스) 연리지 : 맞닿아 연이어진 가지.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들이 서로 엉켜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는 것으로 원래는 효성이 지극함을 나타냈으나 현재는 남녀 간의 사랑 혹은 짙은 부부애를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다음 백과)

한 지붕 아래서 한 솥밥 먹으며 한 가지 목표를 향해 공부하고 정진하기에, 남녀 관계에 아무리 주의를 주더라도 서로에게 빠져들기 쉽다. 그러나 교단에서 허락하지 않는 감정이다. 짝사랑에 그친다면 모를까 그 이상이면 징계 대상이 된다. 방장은 그에게 간단한 주의를 줬다. 그가 행여 속앓이하다 크게 다치지 않게 예방접종 놓은 셈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누군가를 향한 애틋한 심경이 무 자르듯 뚝 끊기는 건 아니다. 사랑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자연스런 정서의 흐름을 남이 나서서 억지로 그치려하는 게 순리겠는가. 허나 규정은 규정이라, 선을 넘은 연인들은 내쳐지든가 스스로 떠났다.

독학으로 통기타를 배우던 나이어린 선배 L이 있었다. 그의 연습곡은 늘 양희은 씨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서툰 기타선율에 맞춘 그의 노래가 슬펐다. 사랑은 사랑 그대로 바라봐 주면 안 되었을까?

원불교를 세운 소태산 박중빈은 출가한 제자들에게 혼인은 개인의 선택에 맡긴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리고 반세기 이전에 이미 남녀교무가 부부를 이뤄 함께 활동하는 제도까지 논의되었다. 그렇지만 남자교무와 달리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여자교무는 독신이다.

원불교 종법사(최고지도자)께서는 다가오는 7월에 최고의결기구에서 여자교무 결혼허용 이슈를 주요안건으로 다루겠다고 천명하셨다. 교조의 뜻을 받들고 시대정신에 맞게 제도를 바꾸자는 강한 의지 표명이다. 물론 이후 내부에서 벌어질 극심한 혼란을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아기에게 젖 물리는 교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도량에 사는 한 쌍의 교무를 인정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나?
낯섦을 맞이할 자세를 갖췄나?

현상계의 존재 전부는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그래서 고정된 영원불멸한 실체란 없다고,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은 바라고 부처님 말씀을 전해온 원불교가 자기 문제를 안고 시험대에 섰다. 철이 지나 어울리지 않는 법규를 혁파하고, 익숙한 것에 얽매인 마음의 한계를 넘어서야 부처님의 참 제자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여자교무의 결혼을 반대하는 분들에게 나는 이렇게 되묻는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게 죄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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