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도우리 객원기자] “그 기자 요새 ‘문빠’, ‘달창’ 이런 사람들에게 공격을 당하는 거 아시죠?”

국민들은 귀를 의심했다. 제 1야당 원내대표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대구에서 열린 한국당 장외집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출연한 ‘국민과의 대담’을 진행한 송현정 KBS 기자에 대한 비난을 언급하며 이 같이 말했다. 여론은 즉각 반응했다. 리얼미터가 실시한 이달 3주차 주중 집계에서 한국당 지지율이 30%초반으로 급락했다.

‘나다르크(나경원+잔다르크)’라는 별명을 얻으며 연일 강경 발언과 이미지를 내보이고 있는 나 원내대표의 이번 ‘망언’은 예견된 일이었다. ‘망언’으로 보수층을 결집시켜 온 한국당의 강경 보수 전략은 사실상 강경 ‘남성’ 보수 전략이기 때문이다.

나 원내대표가 ‘나다르크’ 별명을 얻은 결정적 계기는 4.3보궐선거를 한 달여 앞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중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이었다. 이 덕에 보수층 결집뿐 아니라 나 원내대표의 기존 ‘모범생’ 이미지, 정확히 말해 ‘온건 중립’ 스탠스에서 탈피할 수 있었다.

망언·막말은 한국당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었다. ‘망언 제조기’로 악명이 높은 홍준표 의원의 발언들은 물론 최근의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의원의 5·18 망언, 김무성 의원의 ‘청와대 다이너마이트 폭파’ 발언이 대표적이다. 막말, 망언은 피아를 선명히 가르기에 지지층 결집을 위해 부르는 주문이자 따라서 권력욕이 담긴 언어이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4월 26일 오전 국회 의안과 앞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노루발못뽑이(일명 '빠루')를 들고나오고 있다.(연합뉴스)

그런데 나 원내대표의 망언이 다른 한국당 의원들의 망언과 가장 다른 점은 ‘여성성’을 지우는 데 활용된다는 것이다. 나 원내대표의 ‘나다르크’ 이전의 별명 중 하나는 ‘얼음공주’였다. 그의 ‘냉철한’ 표정에 돋보이는 외모와 작은 체구라는 젠더 정체성이 덧씌워져 ‘얼음공주’라는 연약한 이미지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처럼 나 원내대표가 정치인으로서 입지를 다지는 데 큰 방해물 중 하나가 ‘예쁜 여성 정치인’으로만 소비되는 일이었다. 2011년 서울시장 후보시절 낙선에 큰 이유를 제공했던 ‘연회비가 1억 원인 초호화 피부과에 다닌다’는 보도가 대표적이었다. 이런 그의 이미지는 패스트트랙 정국 때 기자들 앞에서 들어올린 남성적 노동 도구, ‘빠루(쇠지렛대)’로 단숨에 쳐 낼 수 있었다.

문제는 이 여성성을 지우는 일이 여성 혐오와 직결된다는 점이다. 망언·막말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정치적 언어다. 그래서 약자 혐오는 필연적이다. ‘종북게이’ 선전이 대표적이다. 그 약자에는 단연 ‘여성’도 포함된다. 그런데 나 원내대표 본인이 여성이면서 여성 혐오적인 ‘달창’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나 원내대표 자신의 입지가 ‘남성 정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전제가 드러나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나 원내대표의 ‘막말’은 자신의 ‘권력욕’에 반하는 일이다. ‘강경 보수 딜레마’ 중에서도 ‘강경 ‘남성’ 보수 딜레마’에 빠졌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강경 보수 딜레마’는 지지층 결집에 효과적인 대신 중도층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리킨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전당대회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부정하는 취지로 발언한 바가 대선에서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이러한 딜레마의 대표적 사례다.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중도층 중에서도 여성 유권자, 그리고 젠더 감수성을 지닌 다른 성별 유권자들을 자신의 당의 이해와 상관없다고 선언하는 발언이다.

특히 ’달창’은 빠순이, 그루피처럼 여성이 어떤 대상이나 집단을 지지하는 일을 멸시하고, 여성은 섹슈얼리티의 주체가 아니라 ‘제공’하는 객체라는 시각이 담겨 있다. 한국당을 지지하는 여성 유권자까지도 싸잡아 비난하는 발언이다.

흥미로운 것은 홍준표 전 대표가 나 의원의 ‘달창’ 발언을 비판했다는 점이다. 언뜻 보면 홍준표 대표가 달창 발언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구도 같지만 “무심결에 내뱉은”, “인터넷에 찾아보고 그 뜻을 알았을 정도”라며 나 의원의 망언이 ‘실수’라는 데 힘을 실었다. 무엇보다 지지율 급락을 낳았던 5·18 망언에 대한 언급은 여성 혐오 지적 차원이 아닌 지지율 겨냥을 잘못 했다는 취지의 저격이다.

그런데 왜 지지율 겨냥을 잘못 했는가? ‘창녀’라는 단어의 선정성도 있지만 한국당 지지자들의 어머니, 딸, 아내도 저격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여성혐오는 ‘종북’처럼 뚜렷하게 정치 전선을 가르는 데 활용할 수 없다. 한국당은 자신들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 때문에 젠더 이슈를 활용하는 데 있어 갈팡질팡하고 있다. 최근 패스트트랙 저지 과정에서 여성 의원을 당리당략에 동원하며 발생한 ‘임이자-문희상 국회의장’ 성추행 논란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임이자 의원의 성폭력 ‘피해자성’ 강조에는 여성 유권자보다도 남성 유권자를 향해 있었다.

바야흐로 미투 정국이다. 2020년 총선, 2022년 대선에서 젠더 이슈가 중요한 정치 담론으로 부상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당의 낮은 성 인지 감수성을 제대로 보수하지 않으면 당장의 지지층 결집은 몰라도, 2020년 총선과 2022년 대선에서 치명적 결함으로 드러날 것이다. 특히 한국당 여성 의원들은 당의 생명력 이전에 자신의 여성 의원으로서의 정치적 생명력도 고민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이번 ‘달창’ 발언은 여성 혐오라는 점에서 나 의원 자신의 여성성을 스스로 공격하는 꼴이었다. 무엇보다 잔다르크 역시 정치적 상황이 달라지자 영국과 프랑스 양국에게 버림받으며 마녀사냥 당하지 않았는가.

닳아빠진 보수의 성 인지 감수성 밑바닥을 보수하는 일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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