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재벌이 동시다발 인수합병을 추진 중입니다. 통신이 방송을 장악하려 합니다. 세상에 세 종류의 리모컨만 있다면, 그 리모컨을 통신재벌들이 만든다면, 그 방송과 통신은 얼마나 다양하고 공공적일까요? 절대 아닐 겁니다. 티브로드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동조합 조합원들은 ‘나쁜 인수’에 반대하는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은 방송, 통신 가입자인 여러분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함께해주십시오. 이 싸움 이길 때까지 ‘철농성’은 계속됩니다. /글쓴이주

5월 9일, 올 것이 왔다. 우리는 언론을 통해 티브로드가 사라질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회사가 계속해서 매각을 예고해온 터라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마음이 요동쳤다. 애써 의연한 척 했다. 그리고 동지들을 쳐다봤다. 나와 똑같아 보였다.

LG유플러스가 CJ헬로, KT가 딜라이브, 그리고 SK가 티브로드… 이제 방송통신은 이동통신 3사가 싹 장악하게 된다. 5G, 유료방송, 초고속인터넷 등 땅 짚고 헤엄치는 노다지를 통신재벌들이 독과점하게 생겼다. 규모의 경제? 참내, 말이 안 나온다. 우리는 이것을 ‘독과점’이라고 배웠다.

통신재벌의 관심은 오직 ‘업계 1위’에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친정부 행보를 보이며 4세 경영세습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LG도 똑같다(케이블 설치는 하청업체에 시키고, IPTV 설치는 자회사 정규직에게 맡기겠다는 게 여러분이 아는 ‘착한 재벌’ LG다). 심지어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지탄이란 지탄은 모두 얻어듣고 아현지사 화재사고와 채용비리로 매일 두들겨 맞는 KT마저도 인수합병에 목을 맨다.

가관은 SK다. 수감생활 중에도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셨다는 분이 총수로 있는 이 재벌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 문제에는 1도 신경 쓰지 않는다. “노동자들 고용 보장할 것입니까?” 기자회견에서 물어도, 공문으로 물어도, 국회와 언론을 통해 물어도 답을 않는다.

리스크 관리에 정통한 재벌 대기업이 하나마나한 말 한 마디를 내놓지 않는다. “합병법인은 SK, 티브로드 직원의 고용을 보장하고 티브로드 현장 설치, 수리업무를 하는 협력업체 직원들을 SK브로드밴드의 자회사인 홈앤서비스로 고용할 계획입니다.” 이 정도 수준의 답변조차 하지 않는다. SK의 침묵은 곧 ‘노동자를 자르겠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진짜사장’ 태광그룹이 너무 싫다. 총수일가, 사모펀드, 태광그룹은 우리 등에 빨대를 꽂고 매년 수십억, 수백억원의 배당금만을 챙겨갔다. 심지어 징역형을 받고도 병보석으로 풀려난 총수는 술집에 드나들고 담배를 태우다 걸려서 다시 구속이 됐다. 단 한 번도 사회적 책임이 있는 일을 한 적이 없는 우리의 회사 티브로드… 갈아치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그래도 지금과 같은 방식은 아니다. 왜냐면 우리가 피땀 흘려 지켜온 일자리와 권리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가 된다. 권리는 매각하거나 거래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싸움을 시작했다. ‘SK에 팔린다더라’는 카더라통신이 돈 지 4개월 만에 말이다. 그리고 5월 9일, SK브로드밴드-티브로드 합병 소식을 듣자마자 우리는 과천정부청사 앞에 농성장을 폈다.

(희망연대노동조합 제공)

나는 5G, 융합상품, 결합상품, 사물인터넷(IoT)를 거부하지 않는다. 기술이 고도화되고 상품구성이 복잡해질수록 나 같은 현장 설치수리기사들이 할 일이 많아져야 한다. KT 화재사고에서 확인했듯 유선망이 하나 끊기면 세상이 멈추는 사회이고, 한 가정에 10대에 가까운 디바이스가 맞물려 있는 시대이고, 한편에서는 형편이 넉넉지 않아 이런 흐름에서 뒤처지는 시민들이 많아지는 정보격차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현장 기사들이 시민이나 고객을 만나 진짜 필요한 상품을 안내하고 설치하고, 생활이 불편하지 않도록 AS하는 것이 바로 ‘공공성’ 아닐까. 통신재벌이 홍보하는 일상을 바꾸는 초연결, 초능력이 가능하려면 바로 노동자와 가입자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닐까. 케이블방송, 초고속인터넷, IPTV, 이동통신… 이런 사업을 하려면 정부 인허가, 재허가가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SK는 공정거래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합병 신청 서류를 냈다. 공은 정부에 넘어갔다. 내가 사는 농성장 앞으로 하루에도 수천 명의 공무원이 지나간다. 이중에 열댓명, 몇십명은 우리 문제와 관련이 있는 분들일 거다. 부디 현장을 지키는 노동자, 방송통신업계 먹이사슬의 밑바닥에 있는 하청업체 비정규직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 달라. 하루하루 속이 타들어가지만 애써 의연한 척 유인물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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