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도우리 객원기자] 자유한국당이 24일 문희상 국회의장이 임이자 의원을 성추행을 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보도된 이날 사건 정황은 다음과 같다. 문 의장이 한국당 의원들을 뚫고 의장실 밖을 빠져나가려 하자 “여성 의원들이 막아야 돼”, “자 의원들 저쪽으로 갑시다”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잠시 후 임이자 의원이 나타나 문 의장 앞을 막아선다. 임 의원이 두 팔을 벌린 채 “의장님 이거 손 대면 성희롱이에요”라고 말하자 문 의장은 “이렇게 하면 되느냐”며 임 의원의 볼을 두 차례 감싸며 귓속말을 한다. 그 이후로도 임 의원은 계속 문 의장을 막다가, 나경원 원내대표가 손짓으로 비켜주라고 하자 길을 터줬다. 그 뒤 임 의원은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며 병원으로 향했고, 한국당은 규탄 성명을 내어 "국회의장과 야당 여성의원 위계간 벌어진 권력형 성비위로도 볼 수 있으며"라며 문 의장의 의장직 사퇴까지 요구했다.

그래서 임이자 의원이 성추행을 당한 것인가? 이런 질문은 이번 사건을 읽는데 너무 거칠다. 어떻게 임 의원의 몸이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국회의장 사이에 끼이게 되었는지 그 맥락을 먼저 살펴야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송희경 의원 등 자유한국당 여성 의원과 여성위원회 소속 당직자들이 24일 오후 국회의장실 앞에서 임이자 의원과의 신체접촉 문제로 문희상 국회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송희경 한국당 여성위원장은 문 의장 규탄 성명서에서 “국회의장과 야당 여성의원 위계간 벌어진 권력형 성비위로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임 의원의 여성성이 동원된 데에는 국회의장과 야당 여성의원 간 위계보다도 자유한국당의 이해와 임 의원이 놓여있는 위계 때문이었다. 이날 임 의원의 행동은 “여성 의원들이 막아야 돼”라는 목소리로 시작됐고, 나경원 원내대표가 손짓으로 비켜주라고 하자 멈췄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애초부터 임 의원의 몸을 당리당략에 이용했다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최근 황교안 대표도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주장하며 "여성의 몸으로 오래 구금 생활을 하고 계신다. 아프고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계신 점 감안해 국민들의 바람이 이뤄지길 바란다"라고 발언한 것도 ‘여성의 몸’이라는 약자성을 부각한 정치적 수사였다. 그런데 이번 사건이 더 심각한 것은 ‘성폭력 담론’을 정쟁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물론 문 의장이 임 의원의 뺨을 감싼 처사는 잘못이다. 임 의원의 성희롱 언급에 문 의장이 신체 접촉을 피하기보다 손을 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건 당시 수많은 의원들과 기자가 지켜보는 상황이었던 데다, 문 의장이 임 의원의 뺨을 감싼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법한 부위에 손을 대며 반발한 것에 가까워서 성추행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상황, 그리고 뺨이라는 부위가 성추행과 무관하다고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성폭력 문제는 단순 신체 접촉 여부나 당사자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맥락들을 정확히 읽고 해석해내야 하는 문제라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성폭력에 얽힌 구조와 맥락을 축소하는 위험, 즉 “성희롱에서 강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해는 본질적으로 동질적인 것으로 취급(여성학자 권김현영)”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문제는 옷차림이나 평판, 피해 당시 침묵, 가해 이후 가해자를 대하는 태도 등으로 쉽게 지워져왔다. 그래서 페미니즘 진영에서 남성 가해자 위주의 문화에서 피해자의 입장에 더 귀 기울이자는 취지로 ‘피해자 중심주의’를 이야기하고, 폭력과 협박이 없이도 일어나는 성폭력을 가시화하기 위해 ‘위계와 위력’ 개념을 말하고, 지금까지의 ‘미투’ 운동을 사회적 문제로 부각시키기 위해 ‘하얀 장미’를 상징화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한국당은 무조건 여성 당사자의 말이 옳다는 의미로서의 피해자 중심주의, 이번 사건을 성추행 프레임으로 만들기 위한 권력형 성비위, 미투 운동의 맥락에 이번 사건을 얹기 위해 기자회견에서 하얀 장미 소품을 동원했다. 결국 임 의원과 여성 전체, 미투 운동까지 수단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당의 성추행 프레임이 더욱 나쁜 것은 피해자성을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수동적인 피해자상은 피해자다움에 갇히게 해 문제 해결의 주체로 서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을 익히 봐왔다. 이채익 의원이 임이자 의원을 두둔한다며 “키 작은 사람은 항상 그 어떤 자기 나름대로 트라우마가 좀 열등감이 있다고요… (임이자 의원은) 정말 결혼도 포기하면서 오늘 이곳까지 온 어떻게 보면 올드미스입니다”라고 하거나 “문희상 국회의장의 경우 승승장구를 했다, 서울 법대를 나오고 승승장구했다고 해서 못난 임이자 의원 같은 사람은 그렇게 모멸감을 주고 조롱해도 되느냐”라고 했다. 임 의원의 작은 키, 학벌과 출신, 혼인 여부로 ‘열등함’을 부각하다 도리어 임 의원을 공격해버린 것이다.

특히 이번 성추행 논란이 선거제도 개혁, 공직자수사처 설치를 위한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상징적이다. 공수처의 경우 버닝썬, 김학의, 고 장자연 씨 성폭력 사건을 규명할 중요한 기관이며,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경우 여성의원의 진출과 대표성을 확장할 수 있는 핵심 제도이기 때문이다. 결국 반(反)여성 정치를 위해 반(反)여성적인 방법이 동원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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