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SBS 이사회가 최상재 전략기획실장을 보직 해임하고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의 최측근에게 전권을 쥐어준 것과 관련해 “태영그룹이 또다시 SBS를 장악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윤창현 본부장은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태영그룹과 사측이 방송·경영의 독립 원칙을 깼기 때문에 파업을 비롯한 모든 선택지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28일 SBS는 이사회를 열어 전략기획실 산하 자산개발팀과 경영관리팀을 경영본부로 옮기고 최상재 실장을 특임이사로 임명하는 조직개편안을 의결했다. SBS 방송·경영 독립의 산파 역할을 했던 최상재 씨를 등기이사에서 내치고 사실상 무보직인 특임이사로 발령을 낸 것이다. 또 윤석민 회장의 측근으로 손꼽히는 이동희 본부장에 힘을 실어주는 조직개편이란 분석이다. (관련기사 ▶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 등극에 SBS 독립경영 물거품 위기)

이에 대해 윤창현 SBS본부장은 “대주주인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이 아버지(윤세영 태영그룹 명예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받은 후 SBS 장악 움직임을 노골화하고 있다”면서 “박정훈 SBS 사장 역시 연임 욕심에 대주주를 돕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디어스는 지난달 29일 윤창현 본부장을 만나 이번 이사회 등 조직개편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아래는 윤창현 본부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장이 3월 29일 미디어스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Q. SBS는 KBS·MBC와 달리 SBS미디어홀딩스에 속한 민영방송이다

A. SBS가 민영방송이긴 하지만 전파의 사용을 허가받은 방송 사업자이기도 하다. 즉 국민의 재산권인 전파를 빌려서 쓴다는 뜻이다. 국민의 재산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공적 가치에 맞는 방송을 해야 한다. 민간 사업자라고 해서 대주주가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방송국을 오염시켜선 안 된다는 뜻이다.

그동안 태영그룹이 SBS를 오염시킨 사례는 다수 있었다. 2004년 재허가 파동이 있었다. 당시 SBS는 ‘세전 순이익 15% 사회 환원’ 조건을 이행하지 않아 방송위원회의 재허가 심사에서 탈락 위기에 처한 바 있다. 재허가 파동의 배경에는 방송 불공정 문제 역시 있었다. 그때 구성원들의 저항이 있었고 민영방송특별위원회가 구성된다. 노·사·시청자 대표까지 참여해 소유경영의 분리 원칙이 세워지게 된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면서 윤세영 태영그룹 명예회장은 소유경영의 분리 원칙을 다 깼다. 4대강 비판 보도를 억압하고, 박수택 기자를 논설위원으로 부당 전보했다. 박근혜 정권 때는 정부를 도와줘야 한다고 압박했고, 위안부 문제 등을 왜곡해 보도한 바 있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서 노조는 투쟁했고, 2017년 사장 임명동의제·윤세영 명예회장의 SBS 경영·방송 불간섭 선언 등을 얻어냈다. 당시 대주주 일가는 상법상의 이사 임명권만 행사하고 경영에 일절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최근 문재인 정권의 개혁 속도가 떨어지고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대주주 일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경영권을 승계받은 이후, SBS를 다시 장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Q. 올해 2월 SBS 사측과 노동조합은 SBS 중심의 수직계열화에 합의했다. 그때까진 분위기가 좋았다

A. 윤석민 회장이 가면을 쓰고 나온 것으로 생각한다. 구성원을 기만한 행위였다. 앞에선 노동조합과 수직계열화·SBS콘텐츠허브 인수 등을 합의하고, 뒤로는 합의 파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여러 증거가 있다. 당시 SBS미디어홀딩스 측으로부터 ‘2월 21일 합의와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질 것이다’, ‘합의를 파기할 것이다’ 등의 말을 들었다는 증인들이 있다. 우려가 있었는데, 결국 이번 일이 발생했다.

Q. 3월 28일 최상재 전략기획실장을 보직 해임했다

A. 최상재 전 실장은 SBS 경영·방송 독립에 상징적인 인물이다. 최상재 전 실장이 언론노조 SBS 본부장으로 있을 때 소유경영 분리 원칙이 확립됐다. 최상재 전 실장은 2004년 민방특위의 구성원이었고, 민방특위 보고서에는 최상재 전 실장의 사인이 들어가 있다. 언론노조 위원장으로 있을 땐 미디어법 개악을 막기 위해 온갖 희생을 감내했다.

2017년 10월 최상재 전 실장이 부임하고, 사내 등기이사로 임명됐다. 최상재 전 실장이 SBS 경영에 참여하면서 최소한의 독립성이 보장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SBS는 이번 조직개편에서 최상재 전 실장을 무보직으로 내쳤다. 특임이사라고 하지만, 사실상 골방에 처박는 인사나 다를 바 없다. 단순히 최상재 전 실장의 문제가 아니다. 그와 함께 SBS의 소유·경영 독립의 원칙이 함께 골방에 처박혔다.

▲(사진=연합뉴스)

Q. 이사회가 열리는 SBS사옥 20층에서 대의원 회의를 열었다. 당시 박정훈 사장도 가까운 거리에 있었는데 박 사장과 이야기를 해봤나

A. 박정훈 사장은 현재 SBS 구성원과 대화할 의사가 전혀 없다. 박정훈 사장은 이사회 날에 대주주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노조 구성원을 20층에 고립시킨 바 있다. 긴급소방시설인 비상구를 잠그는 등 비상식적 행태를 보이면서 이사회 강행했다. 우리는 박정훈 사장이 윤석민 회장과 야합을 했다고 판단한다. 박정훈 사장은 지금의 대주주·노·사 갈등 국면에서 자신의 전리품을 철저하게 챙겨갔다. 김영섭 콘텐츠허브 사장, 최상재 전 실장은 차기 사장 후보들이었다. 이번에 SBS 사측이 대주주에 적극 협력한 것은 박정훈 사장의 연임 욕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Q. 드라마 제작자회사 스토리웍스로 분사가 예정된 PD들의 입장은 어떤가

A. 처음에 드라마 PD들은 조직의 안정성 차원에서 분사를 찬성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난 후 제작 환경이 바뀌고 회사의 자본 조달 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스토리웍스에서 드라마 제작을 하자는 것에 동의했다.

그런데 분사에는 스토리웍스와 SBS가 조화롭게 발전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었다. 하지만 김영섭 사장이 콘텐츠허브 사장으로 취임한 후 드라마본부 내부에서는 ‘스토리웍스 조직이 SBS의 뜻과는 다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드라마본부 PD들이 분사하게 된다면 그분들의 인생과 창작권은 대주주의 사적 이익에 동원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런 우려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특히 박정훈 SBS 사장은 최근 노조 핑계를 대면서 스토리웍스의 분사가 어렵다는 주장을 한다. ‘노조가 스토리웍스 사장 임명동의제를 요구한다’면서 분사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조는 드라마본부의 분사를 반대하지 않는다. 분사할 때 제작PD의 안전장치, SBS와의 조화로운 운영을 위해 사장 임명동의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사장 임명동의제를 요구한다고 분사를 거절하는 것은 책임 경영이 아니다. 특히 사내에서는 향후 김영섭 사장 말고 다른 사람을 스토리웍스 사장으로 앉힐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며 기정사실화됐다는 분위기다.

Q. 향후 언론노조 SBS본부의 대응이 궁금하다

A. 우선 대주주와 사측에서 합의의 근본을 깼기 때문에 우리도 할 수 있는 걸 다 해야 한다. 파업이든, 대규모 시위든. 모든 방안을 선택지에 다 올렸다. 그 어떤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Q. 이 사건을 바라보는 언론 관계자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A. 방송과 콘텐츠는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다. 제작자 역시 자본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SBS 구성원은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공적 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현재 우리의 투쟁은 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길이다. 힘들고 어렵겠지만 끝까지 가보겠다. SBS와 노동조합을 호되게 꾸짖을 땐 꾸짖어야 하는데, 지금은 우리를 응원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항상 감사하고,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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