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보궐선거의 막이 올랐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태도는 사뭇 비장하다. 국회의원 지역구 중 재보궐선거의 대상이 되는 곳은 2군데에 불과하지만 PK지역이라는 특수성과 현재 놓여있는 정국을 감안하면 이 선거 결과가 향후의 구도 변화에 큰 영향을 줄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본래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던 곳은 경남 창원 성산이다. 노회찬 의원의 지역구였고 과거 권영길 의원이 당선된 바 있었기 때문에 또다시 진보정당 소속의 국회의원이 탄생하는지가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MBC경남이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16~17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자유한국당의 강기윤 후보가 앞서가고 있거나 정의당 여영국 후보와 박빙 구도를 형성한 상태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를 참고하면 된다.

이 지역에서의 관건은 범진보 후보단일화의 성사 여부다. 정의당과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단일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투표용지 인쇄일인 25일 전까지 결과를 내놓겠다고 하는데 나름의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결국에는 성사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 것 같다.

반면 또 한 사람의 진보정당 후보인 민중당의 손석형 후보는 범진보 후보단일화 논의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여영국 후보와 권민호 후보 간 단일화 결과가 도출되면 어쨌든 승부의 예측은 어렵지 않으리라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또 하나의 보궐선거 대상 지역인 경남 통영 고성의 경우 애초 전국적 여론이 집중되는 형태의 선거전이 치러지진 않을 것으로 보였지만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승부수를 걸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황교안의 페르소나”라고 까지 불리는 정점식 후보를 전략공천하면서 선거전의 중요성을 확 키운 것이다.

정점식 후보는 검찰 출신이다. 황교안 대표, 정점식 후보 둘 다 공안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기 때문에 공통점이 많다. 실제로도 돈독한 사이이고 말하자면 ‘최측근’이라고들 한다.

만일 정점식 후보가 당선되면 황교안 대표로서는 천군만마를 얻는 결과가 될 수 있다. 황교안 대표는 어쨌든 대표 직무를 수행하고 있으나 기성 정치권 밖의 인사이기 때문에 믿을 만한 자기 기반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자신의 ‘직계’로 볼 수 있는 인사가 원내에서 중심을 잡아 준다면 향후에 대권을 노리는 데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4·3 보궐선거 선거 운동 첫날인 21일 오후 경남 고성군 고성시장에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주민들에게 통영·고성에 출마한 정점식 후보를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점식 후보 카드의 이런 성격은 자유한국당의 전략에서 보자면 득과 실이 모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득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은 어쨌든 ‘강한 후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야당인데 존재감이 없는 후보가 나섰다면 지역발전을 원하는 지역구민들 입장에선 지지 논리를 쉽게 만들기 어려워졌을 수 있다.

지방의 경우는 출신 지역을 따지는 선거 논리가 강화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이다. 경남 통영 고성 지역구는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자가 나올 정도로 자유한국당 지지 색깔이 뚜렷했던 곳이다. 하지만 지난 지방선거에서 통영시장과 고성군수를 모두 더불어민주당이 가져가면서 여당은 “해볼 만한 선거”라는 판단을 내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양문석 후보는 통영 출신이고 정점식 후보는 진주시에 통합된 진양군으로 출신으로 고성중학교를 나왔다. 통영시는 고성군보다 인구 수가 2배 이상 많다. 통영 사람 대 고성 사람이란 구도로 선거를 치르면 정점식 후보가 불리할 가능성이 크다. 이 핸디캡을 메꿀 수 있는 게 바로 황교안 대표와의 인연이다.

‘득’이 ‘실’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여기서 발생한다. 황교안 대표는 중도층을 겨냥하거나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 것보다는 좌파독재니 뭐니 해서 상대를 악마화 해 자기편을 결집시키는 방식의 메시지 전략을 세운 게 분명해보인다. 정점식 후보는 바로 이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즉 지역구도에서 벗어나는 만큼 중앙정치 이슈와 거리를 둘 수가 없게 되어 손해를 볼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를 뒤집어 보면 만일 이 지역구에서 자유한국당 정점식 후보가 승리할 경우 황교안 대표의 현재 전략은 총선 국면까지 이어지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할 수 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전당대회 때만 해도 김진태 의원 등 막말 인사의 등장으로 중도층을 상실할 수 있다는 걱정을 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황교안 대표가 등판한 이후 이들의 5.18 망언 등을 따로 징계하지 않았음에도 자유한국당에 대한 정당지지율은 꾸준히 올라 지금은 30%를 넘네 마네 하는 지경이다. 여기에 지금과 같은 태도를 고수해 보궐선거 승리까지 이끌게 된다면 황교안 대표 입장에선 좌파 독재 타령을 필승카드로 여길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최근의 자유한국당은 집권 여당과의 선명한 대결구도를 만드는 것에 진력하고 있다. 검경수사권 조정 문제를 자유한국당-검찰 대 더불어민주당-경찰 구도로 접근하고 김학의 장자연 사건 등에 대한 특검 요구를 황운하 이주민 특검법 발의로 받아치는 게 대표적이다. 선거법 개정에 대한 야4당의 합의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태도는 ‘침대축구’를 방불케 한다는 관전평이 나올 정도이다.

황교안 지도부가 이런 태도를 고수한다면 5.18 관련 망언을 한 의원들의 징계는 불가능해질 것이다. 국회 윤리특위의 윤리심사자문위에서 자유한국당 추천 위원들이 사퇴한 걸 보면 최소한 빠른 시일 내에 이 안을 다룰 마음은 이미 없는 것 같다. 위원장이 사퇴한 자유한국당 윤리위도 언제 어떻게 구성이 완료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자유한국당은 아현국사 통신구 화재 등 문제를 다룰 KT 청문회도 사실상 무산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KT 채용비리 등과 관련 김성태 홍문종 의원 등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며 청문회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러는 것 아니겠냐는 해석이 따른다.

보궐선거에서의 자유한국당 승리가 이런 식의 무책임한 정치가 부활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거라는 점에서 우려를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 단지 보수적 노선이 문제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합리적 보수’의 역할을 자임하던 바른미래당 내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 역시 선거법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이견으로 자기들끼리 싸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성급한 일부 매체는 바른미래당이 분당될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결국 보궐선거 이후 정계개편까지 거치면 국회 상황은 다시 양당구도로 수렴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선거법 개정안 패스트트랙 논의까지 함께 보면 우리는 기존의 양당 중심 정치냐 다당제적 장점을 살리는 정치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보궐선거 결과가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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