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먹기를 거부하는 소에게 어떻게 물을 먹여야 할까? 말이 통하지 않으니 물을 먹지 않으면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들다고 설득을 하기도 어렵고, 그저 힘을 동원해 억지로 물을 먹이기도 어렵다. 소가 관심이 있어하는 다른 수단을 동원해 물가로 데려가는 것이 먼저인데, 그러고도 결국 물을 먹을지 말지는 소 마음이다. 그럼에도 소를 물가에 데려가는 게 중요한 것은 소가 물에 가까운 장소에 있어야 물을 먹을 확률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나라를 운영하는 일은 소에게 물 먹이는 것과 비슷한 데가 있다. 권력이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국민여론이 이를 뒷받침 해도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할 수 없다면 ‘대책’은 힘을 잃는다. 소를 물가로 유도하는 과정에서 애초의 취지가 퇴색하거나 무용해지는 일도 종종 있다. 그래서 정치와 언론은 늘 애초에 소에게 먹여야 할 것이 물이 맞는지, 소를 모는 사람이 그걸 관철하기 해 동원한 수단은 적절한 것이었는지 등을 늘 따지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문제를 다루는 정치와 언론의 태도를 보면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도 민망할 정도이다. 미세먼지 문제가 대표적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문세먼지”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일종의 정치공세로 이해(납득하겠다는 게 아니다)할 수 있다. 그러나 미세먼지도 ‘종북’ 때문이라는 보수세력의 주장은 합리적으로 다루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최근 고용난과 음란사이트 차단 등 문제로 정권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이런 논리가 무리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세먼지와 ‘종북’이 만나는 곳은 중국이다. 보수언론이 유포하는 논리는 이런 형식이다. 미세먼지 농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은 중국의 영향을 부정할 수 없는데, 정부가 대북정책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중국에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또 환경단체들이 미세먼지 문제에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이유는 이 정권 들어 권력을 ‘나눠먹게’ 된 때문 아니냐고도 한다. 환경단체들이 당장 천안문 앞에 가서 시위를 해야 할 판이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중국과의 협력을 언급한 것에 대해 중국 정부가 “우리 책임이라는 증거가 있느냐”고 반응한 것은 이런 주장의 근거 중 하나다. 만일 상대가 중국이 아니라 일본이었다면 우리 정부가 어떻게 했겠느냐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한일관계의 악화를 감수하면서도 위안부 및 강제징용 문제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는 정부의 태도를 함께 문제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례와 법적 쟁점이 이미 존재하는 위안부 및 강제징용 피해와 원인과 결과의 연관성을 규명하는 것부터가 난관인 미세먼지 문제를 동렬에 놓고 논할 수는 없다. 우리 입장에서 미세먼지 문제 악화의 중요 원인이 중국이라는 것은 상식에 속하지만, 중국 정부가 그걸 인정하게 만드는 것은 소를 물가에 데려가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인공강우와 같은 해법이 효력이 있든 없든 양국 정부가 문제 해결을 위한 무언가를 공동으로 하면서 논의의 틀을 계속해서 만들어 가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6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도심 (연합뉴스)

미세먼지와 ‘종북’이 만나는 논리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탈원전 괴담론이다. 미세먼지 문제는 국외적으로는 중국의 영향이 크지만 이것을 당장 해결할 수 없다면 국내적 차원에서 원인을 줄여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보수세력의 주장은 미세먼지의 국내적 원인은 상당 부분 화력발전에서 나오므로 핵 발전소 가동 비율을 늘려가야 하는데 대통령이 ‘원전 괴담’만 믿고 탈원전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원전 괴담’이란 ‘판도라’라는 영화로 압축된다. 대통령이 이 영화를 보고 탈원전에 ‘꽂혀서’ 방사능 물질 등의 영향력을 과장한 괴담을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보수언론의 주장에 따르면 이 괴담은 주로 운동권 출신들이 음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굴뚝이 없는 핵 발전소가 미세먼지 문제를 악화시키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엔 물론 일리가 있다. ‘깨끗한 에너지’라는 것은 핵 발전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핵심 논리이다. 단 이것은 핵 발전소에서 사고가 나지 않을 경우를 전제한다. 핵 발전의 최대 문제는 일이 잘못됐을 경우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이 자체를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탈원전 정책의 당위는 괴담이 아니라 바로 이 점에서 나온다. 그런 차원에서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해 핵 발전의 비중을 늘린다는 것은 10마리 늑대를 피해 1마리 호랑이가 있는 곳으로 가자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모색해야 할 대안은 늑대도 호랑이도 없는 안전한 길을 찾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정부가 내세우는 ‘탈원전’의 실제 내용은 그저 현상유지를 하자는 것에 가까운 수준이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보자면 보수세력의 주장은 음모론의 전형적 형식을 따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음모론이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근거 중 하나는 최근 2차 북미정상회담이 실제로 결렬되었다는 점이다.

보수세력은 협상이 결렬된 과정과 맥락을 분석하고 실제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다루는 데 무관심하다. 미국이 합의를 거부한 것은 북한에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인데도 우리 정부가 지금 쩔쩔매는 것은 ‘종북’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뿐이다.

실제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선 대통령과 여권 핵심인사들이 북한에 약점이라도 잡힌 게 아니냐는 식의 반응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 여의도 근방에선 지금까지 정부 여당에 정치적 어드밴티지가 됐던 ‘평화’ 담론이 오히려 부담이 되는 시점이 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실망스런 결과를 남기고 ICBM 카드를 북한이 다시 꺼내드는 지금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역시 북한이 확실한 비핵화 의지를 보여줄 때까지 손 놓고 있는 게 답일까? 이 경우 남는 것은 볼턴식 해법 뿐이다. 물론 이 방법으로 장기간에 걸쳐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는 것도 해법의 하나일 수는 있다. 그 과정에 있을 북한의 추가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의 문제가 상황을 악화시키고 북한과 미국의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이 우리에게 새로운 피해를 안겨줄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사람들은 대통령이 중국에는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하지 않으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통보를, 북한에는 “당장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도 도와줄 수 없다”는 선언을 ‘시원하게’ 하는 걸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경우 그 대가로 주어질 정치적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자는 것까지 용인할 마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평소 하루를 살아내기조차 바쁜 사람들이 소를 물가에 데려가는 방법까지 완전하게 이해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다. 그러니 소를 물가에 데려가는 문제를 다루는 걸 직업으로 하는 정치와 언론이 자기 역할을 성실히 하길 촉구하는 수밖에 없다. 비판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보수정치와 보수언론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태도로만 일관하고 있다. 당장은 이 상황이 정부 여당에 불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 공동체 모두가 감당해야 할 문제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물론 그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을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