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자유한국당 소속 김순례, 김진태, 이종명 의원이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두고 망언을 쏟아내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당 지도부가 뒤늦게 수습에 나섰지만, 보수진영에서조차 강한 비판에 직면했다. 애초에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고 있는 지만원 씨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으로 검토한 나경원 원내대표의 행태가 망언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지적이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연합뉴스)

지난 8일 김진태, 이종명 의원은 5·18 진상규명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5·18민주화운동이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지만원 씨가 발제자로 나섰다. 이 자리에서 이종명 의원은 "사실을 근거로 한 게 아니라 정치적이고 이념적으로 이용하는 세력들에 의해 폭동이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다"고 주장했다. 김순례 의원은 "종북좌파가 판치면서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이 만들어져 우리의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비난했다. 특히 김 의원은 한국당 원내대변인으로 '나경원 원내대표의 입'으로 볼 여지가 있다.

한국당 의원들의 망언이 언론에 보도돼 한국당을 제외한 정치권이 김순례, 김진태, 이종명 의원의 징계·제명을 요구하는 사태에 이르자, 나경원 원내대표는 사태 수습에 나섰다. 나 원내대표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일부 의원들의 발언은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며, 한국당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이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나 원내대표는 "다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존재할 수 있으나 정치권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나경원 원내대표의 입장표명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9일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자유한국당이 '광주의 무덤'에 침을 뱉었다"며 "자유한국당 의원들에 의해 자행된 '헌법파괴'를 두고, 나경원 원내대표가 '역사적 사실은 해석을 달리 할 수 있다'며 교묘히 감싸는 것은 자유한국당의 뿌리가 독재정권에 있음을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같은 날 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나경원 원내대표의 입장문이 목불인견"이라며 "나 원내대표에게 사과를 한 것인지, 조롱을 한 것인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고, 홍성문 민주평화당 대변인은 "잘못된 정권에 의해 무고한 시민이 희생된 사건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란 말을 쓴다는 게 궤변"이라고 비판했다.

보수진영에서도 김순례, 김진태, 이종명 의원에게 강한 징계를 내리라는 요구와 함께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한 지만원 씨에 대한 비토 여론이 형성됐다. 11일 보수시민단체들과 탈북민단체 등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진태 의원 등 일부가 지만원의 과대망상과 거짓선동을 비호 또는 옹호하고, 이에 대해 나경원 원내대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의 차이라고 묵인 방조한다면 자유한국당은 스스로 반국민적 과대망상 정당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폭로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김진태 의원 등 공청회를 주최하고 참석한 한국당 의원들의 사과, 한국당의 공식적 입장 발표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당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무성 의원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상징하며 역사적 평가와 기록이 완성된 진실"이라며 "북한군 침투설을 계속 제기하는 것은 이 땅의 민주화 세력과 보수 애국세력을 조롱거리로 만들고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우리 국군을 크게 모독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장제원 의원은 "우리가 세운 '문민정부'가 주도했던 '역사바로세우기'를 통해 역사적 평가를 끝낸 '5·18 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주장은 우리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시대착오적 '급진 우경화'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청원 의원은 "5·18 당시 조선일보 사회부의 고참기자로 회사의 명을 받고 광주에 특파돼 9박10일간 생생하게 현장을 취재했다"며 "현장을 직접 취재한 기자로서 당시 600명의 북한군이 와서 광주시민을 부추겼다는 것은 찾아볼 수 없었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비판이 이어지자 김순례, 김진태 의원은 한발 뒤로 물러선 모양새다. 김순례 의원은 입장문에서 "북한군 개입설 등 5·18 관련 비하 발언들은 한국당의 공식 입장도 아니고, 저 역시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김진태 의원은 "작년 여야 합의로 제정된 5·18 진상규명법에 의하면 '북한군 개입 여부'를 진상 규명하도록 돼있다"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논란이 발생한 근본에 한국당 지도부가 지만원 씨와 같은 인사를 진상규명조사위원 후보자로 검토하는 등의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지 씨는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했다가 허위사실유포로 유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지만원 씨는 지난달 4일 국회에서 나경원 원내대표를 만나 자신을 5·18 진상조사위원에 추천해 달라고 요구했다. 나 원내대표는 지 씨의 요구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 씨는 이 과정에서 나 원내대표가 '다른 사람을 앞에 내세우고 배후조종을 하면 안 되겠냐'는 취지의 제안을 했다고 주장했다.

지만원 씨는 지난달 5일 태극기 집회에서 "나경원 그 XX 여자 아니에요"라고 발언했고, 지난달 9일에는 나경원 원내대표의 자택 부근에서 지지자 50여명과 함께 집회를 열고 자신을 진상조사위원으로 추천할 것으로 거듭 요구했다.

당시 김진태 의원은 "지만원 씨를 추천하는 것과 관련해 당에서 굉장히 고심 중인데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 씨를) 추천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지 씨가) 한 트럭 분량의 5·18 사건 기록을 개인적으로 복사해서 수십 만 페이지를 한 번 읽는데만 2년이 걸렸다고 한다"며 "이 분보다 더 5·18에 대해 연구를 깊게 한 분은 없을 것이다. 이런 분이 들어가야 제대로 진상규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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