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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 푸른 해’ 끝에서 만난 단죄의 딜레마, 울음의 끝은 깊다

기사승인 2019.01.17  14: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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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아이를 학대하다 죽인 엄마의 주검 앞에 남겨진 시로 시작되었던 드라마, 그 문학적 상징성의 함의가 모처럼 드라마 덕후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 설렘을 배반치 않고 1월 16일 종영을 맞이한 <붉은 달 푸른 해>는 한 편의 명작처럼 묵직한 물음을 던지며 깊은 여운을 드리운다. 

전작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을 뛰어넘은 도현정 작가의 치밀하고 밀도 깊은 극본. 그 극본을 문학적으로 구현해낸 최정규 연출과 제작진. 이 드라마에게 시청률이 몇 프로인지는 의미가 없다. 마치 대학생 권장도서를 사람들이 즐겨 찾지 않듯이. 하지만 그 권장도서 목록 속의 명작들처럼 아마도 지금 시청률이 좋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오래오래 사람들이 찾게 될 드라마가 될 터이니. 

차우경이라는 씨실로 풀어간, 시가 있는 죽음들 

MBC 수목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

평범하게 살아가던 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에게는 번듯한 남편에 예쁜 딸과 그리고 조만간 태어날 아이까지,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나마 걱정이라면 교통사고로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한 동생 정도. 하지만 그 행복의 시간은 그녀 앞으로 뛰어든 어린 소년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났다. 아니, 어쩌면 그 소년은 매개였을지 모른다. 애초에 그녀의 행복했던 삶 자체가 신기루 같은 것이었을지도. 

그렇게 <붉은 달 푸른 해>는 차우경(김선아 분)의 궤멸되어가는 행복한 삶을 씨실로 엮으며 시작된다. 사고, 유산, 드러나는 남편의 외도 그리고 그녀 앞에 등장하기 시작한 초록색 원피스의 소녀. 그녀를 뒤흔드는 사건들 속에서 우경은 그 무엇보다 초록색 원피스의 환영에 집착한다. 그리고 그 환영을 따라가는 곳에서 그녀는 이 드라마의 날실인 살인사건의 현장을 마주하게 된다. 

시작은 감옥에서 죄를 다 치르고 나왔다는 한 여성이다. 아이를 죽인 남편을 방조했다는 혐의를 받은 여성은 몇 년의 형을 치르고 감옥 앞에서 달걀 세례를 받으며 그래도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녀가 집에 머무르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얼마 뒤 그녀는 불탄 시체로 발견되었고, 이 사건은 강지헌 경위(이이경 분)를 사로잡는다. 

MBC 수목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

이어서 발생한 또 다른 불에 탄 시체. 사건에 등장한 상징성 가득한 한 편의 시구들을 통해 이 사건이 학대받은 ‘아이’로 인한 연쇄살인 사건임이 드러난다. 시를 품은 사건의 뒤를 집요하게 i은 지헌과 특별 수사팀은 사건 속에서 '밤새 울었다던' 붉은 울음을 건져낸다. 첨단의 사이트를 활용하여 아동학대 피해자들에게 접근하여 그 가해자들을 '단죄'해주는 이, 혹은 이들의 꼬리는 쉽게 잡히지 않는다. 스스로 드러내기 전까지는. 

차우경이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를 따라 찾아간 곳에서 발견된 시와 엄마의 죽음, 그리고 방치된 채 자란 아이, 그 모든 비극의 원흉으로 처단되는 개장수 아빠, 그리고 그 잔혹한 사적 복수의 끝에서 등장한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은호. 어린 시절 자신을 학대하고 나아가 은호의 세계를 온전히 지배했던 상담센터 전 원장을 죽이며 스스로 붉은 울음이라 밝혔던 은호의 타살이지만 자살과도 같은 죽음은 시청자들을 한껏 연민 속으로 밀어 넣으며 아동학대의 뿌리 깊은 연원에 몸서리치게 만든다. 

모든 사건의 주범이라 스스로 밝혔던 은호의 죽음은 하지만 또 다른 사건의 시작이고, 결국 은호의 공범이자 이 모든 사건의 설계자인 진짜 붉은 울음의 정체가 드러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토록 우경을 괴롭혔던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의 비극적 사연이 비로소 베일을 벗는 시간도 다가오며 16부의 큰 그림이 완성된다. 

우리 사회의 짙은 그늘, 아동학대의 갖가지 모습들

MBC 수목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

차우경의 환영, 붉은 울음의 거대한 음모와 그 실행이 주도면밀하게 직조되어 도달한 곳에는 우리 사회의 그늘로 짙게 드리운 '아동학대'가 있다. 처음 여자 친구의 임신을 외면했던 지헌이 지나가듯 말했듯이, 중학교 때까지 맞았다던 그 경험이 여전히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는 새삼스러운 경험이 아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지헌의 경험은 아이를 낳아 기를 자신이 없는 것으로 귀결되었지만, 아이를 학대하고 때리면서 그걸 사랑이라고 항변했던 민아정, 그리고 16회에서 우경 새엄마의 '아이를 키우다 보면 때릴 수도 있다'는 뻔뻔한 자기고백의 살인이 되기도 한다. 

그저 아이를 키우다 보니 때리는 것만이 아니다. 대놓고 가정폭력의 부산물이기도 하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아내는 물론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권위를 폭력적으로 행사한다. 번드르르한 사채업자건 개장수건 일용직 노동자건, 그 수직 피라미드 가정폭력의 가장 하부에 놓인 아이는 폭력에 무방비하게 그것을 감내하거나 죽어갈 수밖에 없다. 

가부장적 구조는 가정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입양 간 형과 떨어져 보육원에 맡겨진 어린 은호는 원장의 방에 불려가 시를 읽으며 또 다른 폭력을 당한다. 그 어린 시절의 학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를 원장과 그 아들의 세계 속에 볼모로 잡아 그의 세계를 조종하기까지 한다. 시완이 아빠가 엄마도 죽어라며 협박한 거나 우경의 왜곡된 기억까지, 미성숙한 아이의 세계는 무방비하게 어른의 '포로'가 된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저 아이의 학대가 전근대적인 가치관이나 가부장적인 패러다임의 문제만은 아니라며 덧붙인다. 우경이 본의 아니게 죽음에 이르게 한 일곱 살 소년. 그 소년의 정체를 찾아 헤맨 우경이 만난 부모는 이 시대의 젊고 무책임한 부모들이었다. 두 아이를 놔두고 피씨방에 사는 아빠, 그런 가정을 버리고 나온 엄마. 그들은 자신의 즐거움과 현생이 두 아이의 보육보다 우선인, 이 시대 또 부모의 또 다른 표상이다. 그렇게 드라마는 붉은 울음의 단죄를 통해 우리 사회 갖가지 아동학대의 양상을 폭로한다. 

차우경과 붉은 울음의 서로 다른 선택 

MBC 수목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

과연 이 학대받는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니 아이들을 학대하는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기서 <붉은 달 푸른 해>는 다시 질문을 던진다. 

자신을 찾아온 은호의 치료 과정에서 은호의 학대 사실을 알게 되고 분노한 정신과 의사 윤태주, 붉은 울음은 은호와 함께 '학대의 처단자'가 된다. 사이트를 통해 동조자를 규합하고, 블랙 챗을 통해 피해자를 유도하여 사건을 기획하고 실천한다. 윤태주는 설계하고 은호가 실행에 옮겼던, 아이를 죽였던 엄마를 죽이고 서정주의 문둥이를 남겼던 사건부터 소라 아빠 살해, 민아정 자살 유도, 하나 엄마, 개장수 살해 등을 통해 학대받던 아이를 구하고 가해자를 '단죄'한다. 그리고 그 단죄의 정점은 자신을 학대했던 원장의 입에 그가 읽도록 했던 시집을 물려 죽였던 은호의 복수를 건너, 시완의 아빠 살해와 우경의 엄마 살해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려 한다. 

하지만 붉은 울음이 의도했던 설계는, 그를 알아보고 그가 종용한 선택을 포기한 차우경으로 인해 어긋나 버린다. 붉은 울음이 그녀를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종용했던 그 '복수'를 우경은 포기한다. 덕분에 가열하게 폭주했던 단죄의 기관차는 마치 엔진이 식은 듯 멈춰 선다. 여전히 '아픈 사람들'은 많은데. 

우경의 선택은 곧 <붉은 달 푸른 해>가 남긴 질문이다. 자신의 동생을 죽여서 거실에 묻은 엄마, 그리고 그걸 방조하고 묵인한 아빠. 그런 엄마에 분노하며 쇠망치를 들었던 우경을 환영 속의 동생 초록색 원피스의 소녀가 막는다. 그런 그녀를 다시 붉은 울음이 사주했지만 끝내 우경은 엄마를 단죄하지 않는다. 이건 딜레마다. 

우경은 자신의 딸 은서가 할머니를 너무 좋아한다 했지만 그 말은 새엄마가 당당하게 말했듯 그녀를 키워준 30년의 세월, 그 무게이기도 하다. 이미 은서의 할머니가 되어버린 새엄마, 자신이 친동생인 줄 알았던 가짜 세경의 엄마, 그녀는 붉은 울음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여전히 아프고 괴롭다. 그리고 그 아픔과 괴로움은 이제 우리의 몫이기도 하다.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야'라던 그 짐은 고스란히 남는다. 

드라마는 카타르시스 대신, 여전히 드리워진 우리 사회 학대의 그늘에 대한 딜레마를 숙제로 떠맡긴다. 붉은 울음은 판타지였지만, 우경의 고민은 우리의 현실이다.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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