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라는 소재는 민감하다. 접근하기도 어렵지만 이를 제대로 만들어내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붉은 달 푸른 해>는 쉽게 만나볼 수 없는 걸작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밸런스를 잡아가며 끝까지 주제의식을 잃지 않은 작가의 힘은 그래서 위대하게 다가온다.

묵직한 주제의식을 추리극 방식으로 풀어낸 걸작

붉은 울음은 우경의 선배이자 은호의 친형인 정신과 의사 태주였다. 물론 혼자 한 일이 아닌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의 집합체였다. 혼자가 아닌 다수가 '붉은 울음'이었기에 수사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온다. 범인이지만 잡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범죄에 대한 울림은 그래서 크게 다가온다.

마지막 회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붉은 달 푸른 해>는 주제의식을 놓지 않았다. 그 흔한 로맨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주요 인물들의 러브라인을 앞세워 어설픈 이야기 전개에 주력하는 여타 드라마와는 결이 달랐다. 아동학대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며 너무 앞서가지 않은 채 적정 수준에서 균형을 잡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MBC 수목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

평생 동생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세경이 사실은 새엄마가 낳은 딸이었다. 녹색 아이는 바로 세경이었고, 그 아이가 등장하며 모든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알 수 없는 기묘한 현상에 우경은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내면의 모든 문제를 풀어내는 이유가 되었다.

우경의 눈에만 보였던 녹색 아이는 친여동생이었다. 그 죽음을 애써 외면하기 위해 기억을 봉인해 버린 우경은 다른 아이를 동생이라 믿고 살았다. 아버지는 그런 우경에게 가짜 기억을 심어주었다. 그렇게 조작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던 우경은 녹색 아이를 만나며 자아를 찾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어린 세경은 아동학대를 받은 아이였다. 깨끗한 것을 좋아했던 새엄마는 어린 세경을 학대했다. 자신은 그저 아이를 키우면서 가끔 어쩔 수 없이 때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온 결과라고 웅변한다. 하지만 우경의 아버지가 세경의 죽음을 은폐한 이유는 몸 여러 곳에 선명하게 남겨진 흔적들 때문이었다.

옆에서 잠을 자던 동생이 사망했다. 그 끔찍한 기억을 어린 우경은 담을 수 없어 스스로 기억을 봉인해 버렸다. 새엄마가 존재한다는 기억마저 지워버린 우경은 그렇게 아버지가 만든 기억을 자신의 것이라 생각한 채 살아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그녀가 아이를 상담하는 직업을 가지게 된 것은 우연보다는 필연이었다.

'붉은 울음'에 의해 죽어간 이들은 잔인한 아동학대 가해자들이다. 그런 그들을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태주가 모든 사실을 인정하며 형사인 지헌에게 이런 자들을 용서할 수 있겠냐고 되묻는 장면에서 시청자들 역시 동일한 질문에 답을 했을 것이다.

MBC 수목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

"용서 못하지만 심판도 못한다" 태주의 질문에 지헌이 한 답변이다. 법치국가에서 법 위에 다른 것이 군림할 수는 없다.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자를 심판하는 것은 법이다. 법이 존재하는 한 개인적인 복수는 그 역시 범죄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당연한 답변이지만, 속 시원한 대답도 아니다.

우경은 자신의 집 벽난로 바닥에서 녹색 아이 세경을 발견했다. 사라진 시체를 찾으며 새엄마의 범죄 사실은 드러났지만, 어떤 처벌도 할 수 없었다.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에 대해 그 어떤 처벌도 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새엄마가 죽였을 수도 있고, 아이가 다른 이유로 사망했을 수도 있다.

아버지는 사실을 숨기고 벽난로를 만들어 그 안에 숨겼다. 자신의 아이를 벽난로에 숨기고 그곳에서 살았다는 사실에 우경은 분노했다. 이미 사망한 아버지와 공소시효를 넘겨 그 어떤 처벌도 받을 수 없는 새엄마. 우경으로 인해 새엄마인 진옥은 마음의 짐까지 내던질 수 있었다.

평생을 옥죄던 공포와 죄책감을 벗어낸 진옥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행복하다. 자신의 친딸이 곁에 있고, 손녀딸은 여전히 자신을 따른다. 법의 심판도 받지 않은 채 그렇게 편안한 노후를 보내는 새엄마를 보면서 우경은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MBC 수목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

'붉은 울음'의 부추김에 넘어가는 듯했던 우경은 지헌과 함께 그를 잡기 위해 함정을 팠을 뿐이었다. 우경 역시 모범답안이었던 지헌과 같은 생각이었다. 용서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심판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딸이 좋아하고 세경이란 이름으로 산 송이도 행복한 상황에서 우경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태주가 우경에게 던진 "살아 있음을 용납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은 평생 그녀가 짊어지고 가야 할 숙명이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붉은 울음'과 우경, 지헌과 같은 존재가 함께한다. 한편에서는 함무라비 법전처럼 대응하고 싶기도 한다. 하지만 법치주의 국가에 살고 있기에 법의 심판을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하기도 한다.

법과 현실의 괴리가 심할수록 '붉은 울음'이 세상에 튀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적절한 수준으로 법이 집행되지 못하면 우리 사회에서 수많은 '붉은 울음'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부각시키며 이를 어떻게 대응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게 하는 <붉은 달 푸른 해>는 값진 화두를 다시 던졌다.

아동학대 문제는 단 하나의 방식으로 해결될 수 없다. 사회 전체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시스템으로 아동들을 보호하는 방법을 찾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아동학대 만연한 상황에서 드라마가 던진 문제의식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이제 우리 모두의 몫이다. 묵직한 주제의식을 추리극에 담아낸 <붉은 달 푸른 해>는 민감한 주제를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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