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언론이 ‘전형적인 3년차 현상’을 이야기 한다. 집권 3년차 쯤 되면 대통령 임기 전반부에 대한 대략적인 평가가 이뤄지게 되고, 그러면 선거 걱정을 할 수밖에 없는 집권 여당 내에서 균열이 발생하게 된다는 거다. 최소한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에서 그런 맥락의 상황이 벌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요즘 이런 얘기가 새삼 나오는 건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 덕분(?)이다. 송영길 의원은 며칠째 탈원전 정책에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소신을 주장하고 있다. 신한울 3, 4호기 공사 재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현재 시점에서 추가 논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고 했음에도 송영길 의원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재차 같은 입장을 밝히고 있다. 탈원전 정책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다 보니 일부 지지층에선 “배신자”란 평가도 나오는 모양이다.

송영길 의원이 이렇게 소신을 내세우는 이유가 뭘까? 정치인의 의도를 논하기는 언제나 쉽지 않지만 크게 두 지점을 짚지 않을 수 없다. 첫 번째는 임기 중반에 들어섰다는 점에서 볼 때 실제 일부 공약에 대한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정부 내의 공감대가 계속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국정동력은 유실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실질적인 속도조절의 조건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과 청와대는 기존 정책에 변함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더라도 누군가는 ‘김을 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걸 송영길 의원이 맡고 있는 것 아니냐는 거다.

두 번째는 탈원전 정책이 영남권 일부에선 ‘지역 현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경남 창원상공회의소는 탈원전 정책 폐기를 주장하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문재인 대통령 초청으로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2019 기업인들과의 대화’ 자리에서 신한울 3, 4호기 공사 중지 문제를 언급한 것도 창원상의 회장이었다. 즉 송영길 의원의 발언은 다가오는 4월 재보선의 주요 전장이 부산경남 지역이 될 거라는 점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부산경남의 표심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전으로 돌아간 것 아니냐는 진단이 나오는 건 사실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 씨가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현철 씨는 김영삼 전 대통령 기념사업 등에 집중하겠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지만 그러면서도 정책 방향 전환의 필요성을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호남 출신이고 수도권 광역지자체장을 지냈으며 나름 대권주자로 자리매김하려는 꿈을 갖고 있는 송영길 의원 입장에서 보면 이런 기회에 ‘합리적인’ 모습을 보여 영남권에도 나름의 어필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보면 송영길 의원이 탈원전 문제로 소신을 내세우는 것은 겉보기엔 충돌이나 엇박자로 비춰지지만 실속을 따져보면 본인과 정권 모두에 도움이 되는 ‘윈-윈’일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 (연합뉴스)

다른 쪽에서 ‘순혈주의’가 새삼 논쟁거리가 되는 것도 비슷한 느낌이 있다. 시작은 우상호 의원이다. 13일 소셜미디어의 글과 14일 교통방송 라디오 출연을 통해 무소속인 이용호 손금주 의원의 입당을 불허한 당 지도부의 결정을 ‘순혈주의’라며 비판한 것이다. 15일 박영선 의원이 마찬가지로 소셜미디어 글을 통해 “지금부터 민주당은 순혈주의를 고수해야 할 것인지 개방과 포용을 해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하면서 논란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용호 손금주 의원 입당 문제에 있어서 당 지도부로서는 딜레마적 상황에 빠져있다고 볼 수 있다. 이용호 손금주 의원의 입당을 허용해 사실상의 정계개편을 촉발하고 총선을 대비한 판짜기 포석 차원의 카드가 필요하다는 판단에도 일리가 있지만, 두 의원과 함께 과거 당을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에 대해 해당 지역조직과 당내 주류가 드러내 놓고 반발하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상호 박영선 두 의원의 입장은 이후에 상황 변화가 생길 때 당 지도부의 부담을 덜어주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우상호 박영선 의원의 주장은 이용호 손금주 의원 입당 불허 결정이 총선 준비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인사 또는 호남 기반 정치인의 추가 영입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게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송영길 우상호 박영선 의원 등의 주장과 행보는 청와대나 여당 지도부에 ‘반기’를 드는 것이라기 보다는 서로 다른 입장에서 문제를 보완하려는 시도로 보이는 측면도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을 ‘집권 3년차 징크스’나 집권 여당의 내분 등의 관점으로 볼 수 없는 것은 또 아니다. 논쟁은 악의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 주장을 한 이상 그것에 대한 반론이 나오는 것은 불가피하고 특히 정책의 속도조절과 같은 문제에선 강온파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는 일이 불가피하다.

의견대립이 불가피하다면 이를 어떻게 생산적인 대안에 관한 논의로 이끌 것인가를 논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권의 정치력이 또 한 번 시험대에 오를 수 있는 시점인 것이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것은 대안적 상황을 만들 만한 뾰족한 방법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지금 이 논란이 불거지는 근본 원인은 총선이 쉽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재벌을 비롯한 기업인들을 초청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눈 행사가 보여주는 것도 결국 이 문제이다. 이 자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재계의 거물들은 재킷을 벗고 할 말은 하겠다는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고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며 덕담을 나누는 훈훈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재벌 총수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재벌 자신과 정권 모두에 도움이 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이 자리의 사람들 모두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기업인들과의 대화는 늘 그렇듯 대통령은 대기업에 고용과 투자를 요구하고 대기업은 규제완화 등을 요구하는 전형적 결론으로 마무리 되었다. 정부 여당은 변함없는 개혁을 말하면서도 이런 저런 수단을 통해 지속적인 ‘후퇴’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실제 집권 세력의 인식은 의지나 능력의 문제라기보다는 “방법이 없다”는 것에 가까운 것 같다.

물론 정치라는 게 언제나 답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려던 일을 못한 이유에 대한 평가를 사회적으로 남기는 것도 정치가 감당할 일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어차피 개혁은 처음부터 안 되는 것이니 각자의 작은 이익이라도 보장해야 한다”는 식의 결론만 남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개혁을 내건 정치의 되풀이 되는 운명이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 하여튼 이번에는 안 그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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