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문재인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은 그래도 지난해와는 다른 풍경이 연출되었다. 대통령의 입·퇴장 시 회견장의 기자들이 기립하는 모습이었다. 지난해 기자회견 때 보인 기자들의 태도에 대한 비난여론을 의식한 듯한 변화였다. 특히 올해 문재인 대통령은 사회자 없이 스스로 기자 선택부터 답변까지 1인2역을 도맡아 진행했다.

당연히 과거 대통령 기자회견처럼 미리 정해진 질문과 답변은 없었다. 질문과 답변 모두 정해지지 않은 생생한 라이브 기자회견이었다. 보통 정해지지 않은 기자회견은 묻는 자보다 대답하는 쪽이 훨씬 더 어렵고 힘든 법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기자들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을 했고, 오히려 작년과 다름없이 기자의 질문이 문제가 됐을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내외신 출입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은 24명의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았고, 시간은 총 89분을 소요했다. 예정됐던 시간은 80분이었다. 그중 외신기자는 5명이 질문을 했다. 이에 대해서 누군가는 문 대통령이 외신을 유독 선호하는 것 아니냐는 언급을 통해 불만을 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불만을 무색하게 만든 것은 언론 자신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신년기자회견 후 낯선 이름과 방송사가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낯선 이름의 주인공은 기자였고, 이번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에서 벌어진 태도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이었다. 해당 기자는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질문을 했고, 질문내용도 당돌함을 넘어 무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 논란의 크기는 매우 커서, 하루가 지나도록 검색어 상위를 유지하고 있다.

기자의 질문은 동업자들로부터도 비판을 받았다. KBS 최경영 기자는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을 대표해서 대통령에게 질문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자리고 영광입니다. 조금 더 공부하세요”라며 쓴소리를 했다. 반면 JTBC 손석희 앵커는 “권위주의 정부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면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애써 긍정요소를 끌어내려는 모습도 없지 않았다.

사실 이 기자가 자신의 질문은 본인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무엇을 묻고 싶은 건지는 불분명하다. 분명한 것 하나는 무례해 보였다는 것이다. 기자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너무 당황했었다는 변명을 했지만 수첩을 보며 읽는 모습을 보아 본래 준비했던 질문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문 대통령 신년기자회견 (JTBC 뉴스특보 화면 갈무리)

그런데 소속과 이름을 밝히지 않은 또 하나의 기자가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 기자는 네티즌들로부터 칭찬을 넘치도록 받았다. 문제는 역시 태도였다. 서툴지만 연습 많이 한 흔적이 역력한 한국말로 인사말과 질문 일부를 읽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했다. 또한 공교롭게도 두 기자의 드레스코드도 이목을 끌었는데, 논란의 기자는 빨간색 머플러를 했고, 로라 비커 기자는 파란 계열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드레스코드는 어떤 자리에서의 예의 혹은 센스를 드러낸다.

기자의 태도논란은 자연스럽게 작년에 이어 최고와 최악의 질문을 규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연히 최악의 질문자로는 논란의 기자에게 돌아갔고, 최고의 질문자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BBC 로라 비커 기자였다. 로라 비커 기자는 국내 기자들 중 아무도 하지 않은 양성평등에 대해 질문을 했다. 흥미로운 점은 로라 비커 기자 역시 소속과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앞선 기자가 논란의 대상이 된 것과는 다르게 칭찬을 받았단 점이다. 같은 실수를 범하고도 극과 극의 반응으로 갈리게 된 것은 역시나 태도 때문이었다.

2년 연속 국내언론이 아닌 외신기자가 가장 많은 칭찬을 받는 현상은 아무래도 부끄러운 일이다. 대통령에게 기립으로 최소한의 예를 표하는 모습은 그나마 나아진 변화라고 할 수 있으나 정작 중요한 질문에 있어서 태도나 내용의 논란은 이번에도 그치지 않고 있다. 일상의 관계에서도 상대에 대한 잘 갖춰진 태도와 예의는 자신을 높이는 최선의 방법이다. 하물며 대통령을 대하는 태도는 어떻겠는가. 권력에 기죽지 않는 것과 무례한 것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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