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등장했던 학원물은 왜 그렇게 극단적이었을까? <땐뽀걸즈>를 보며 드는 의문이다. 대단할 것 없지만 지나면 평생을 기억하고 살아가게 되는 학창 시절의 이야기는 아프고 힘겨운 추억도 있지만 정겹고 그리운 시간들이기도 하다. <땐뽀걸즈>는 그 아련한 추억을 담고 있다.

이규호와 같은 어른이 만들어내는 아이들의 꿈, 학교의 역할이다

여상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이들도 많을 정도로 여자상업고등학교는 사라져가고 있다. 특성화 고교로 이름을 바꾸고 특화된 수업들로 학교도 변화하고 있다. 아직 남겨진 몇 안 되는 여상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땐뽀걸즈>는 우리가 꿈꾸었던 학창 시절이기도 하다.

평탄해 보이던 상황은 혜진이 어머니를 만나러 간 후 벌어졌다. 자신을 버리고 사라진 어머니, SNS를 통해 엄마를 찾은 혜진은 그렇게 직접 찾아갔다. 미용실을 운영하며 제법 잘 살고 있는 어머니는 혜진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우연히 어머니의 본모습을 본 후 혜진은 분노했다.

미용실 거울을 깨뜨린 혜진은 어머니에게 고소를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고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소년원에 가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혜진을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언제나처럼 그 자리엔 이규호 선생님이 있었다. '땐뽀반' 선생님이기도 한 그는 우리가 아는 교사와는 다르다.

KBS 2TV 월화드라마 <땐뽀걸즈>

사비까지 써가며 '땐뽀반'을 운영하는 이규호 선생님은 자신이 춤을 추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어쩌다 자신 곁에 있게 된 젊은 교사 한동희와 대화에서 왜 이런 동아리를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 드러났다.

교사가 되어 부품 꿈을 안고 들어간 첫 학교가 공고였다고 한다. 처음 부임한 학교는 학교라고 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스스로 절망했던 이 선생은 아이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영혼도 없는 아이들.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 못하는 아이들을 나눠서 분리하고 마음대로 평가해버린 사회에서 버림받은 듯한 아이들을 생각하며 '땐뽀반'을 만들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춤을 출 때만큼은 행복해 했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이 교사는 '땐뽀반'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사회적 시스템이 버린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는 뭔가를 찾고 싶었던 교사의 노력은 그렇게 그들에게 영원히 잊혀질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상업 고등학교만이 아니라 일반 고교 역시 소위 SKY반과 일반 대학반, 그리고 대다수의 그렇고 그런 학생들로 나눠서 관리하고 있다. 학교는 성적 우수자를 위해서는 운영된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명문고교가 되는 확실한 지름길이라는 생각에 학업 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에게 학교는 아무 의미가 없는 공간이 되었다.

KBS 2TV 월화드라마 <땐뽀걸즈>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 피해만 가지 않는다면 뭘 해도 상관하지 않는 학교. 과연 그게 공교육의 가치일까? 일반고도 아닌 실업고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땐뽀반'은 취업과 관련도 없어 학부모들이 더 싫어한다. 춤을 추는 동아리는 잠시 재미로 할 수는 있겠지만 거기에 집중해서 뭔가를 얻으려 노력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니 말이다.

우리는 제대로 된 어른들을 만나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꼰대'라는 이름으로 고착화된 어른 문화는 억압의 일상이다. 시은과 그의 어머니 이야기는 그래서 중요하게 다가온다. 조선소에 다니는 어머니는 비정규직이다. 그리고 노조 활동을 하며 언제 잘릴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있다. 남편은 몇 해 전 사망했다. 회사에서는 자살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남편의 죽음은 아이들에게 중요하다. 자신의 아버지가 우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과 사고사와는 전혀 다른 의미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모르지만 시은도 아버지의 죽음을 알고 있다. 왜 자살을 해야만 했는지 시은도 그게 궁금하다. 공부를 잘했지만 여상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아버지의 죽음 이후였다.

무조건 취직을 하라는 어머니와 대학을 가고 싶어 하는 시은. 많은 꿈을 꾸는 시은에게 너무 현실적인 어머니의 모습은 답답하게 보일 뿐이다. 대학을 나와도 취직을 하지 못하고 놀고 있는 언니로 인해 더욱 힘든 싸움을 해야만 하는 시은에게 어머니는 답답한 존재이다.

KBS 2TV 월화드라마 <땐뽀걸즈>

어긋나고 뒤틀리기만 했던 혜진을 바로 잡아 준 것은 이 교사였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화내지 않고 차분하게 다독이고, 딸을 고소한 어머니를 찾아가 애원하는 모습. 젊어 혈기 왕성해 분노하는 한 교사 역시 이규호 선생을 보면서 성장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겉돌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곳 정도로 생각했던 그곳에서 이규호 선생을 만났고, '땐뽀반' 아이들과 어울리며 한동희는 교사로서 성장을 하기 시작했다. 혜진이 스스로 반성문을 쓰고 검사 앞에서 사과를 하고 다짐을 하면서 '땐뽀반'은 다시 정상을 찾았다.

모든 것이 자리를 잡아가는 듯하지만, 이제는 이규호 선생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아이들로 인해 교사가 처벌을 받아야 하는 상황. 이들에게는 전화위복의 동기가 부여된다. 전국 규모 대회에서 입상을 하게 되면 이규호 선생은 처벌을 피할 수 있으니 말이다.

착하고 예쁜 드라마다. 어쩌면 기존 학교 드라마가 틀렸을 수도 있다. <땐뽀걸즈>는 이전의 학원물과는 전혀 다르다. 아이들은 정말 아이들이다. 간혹 일진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자주 싸우고 그만큼 화해한다. 그렇게 조금씩 성장해 가는 과정이 우리가 알고 있는 학교가 아닐까? 아니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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