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이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개혁을 하자고 하면 싫다는 사람은 대개 없다. 그러나 실제 개혁에 해당하는 일을 추진하면 반드시 무슨 저항이 생긴다. 저항을 하는 사람들이 나쁜 마음을 먹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원래 하던 것 외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인 탓이 크다. 그래서 개혁은 종종 실종, 중단, 좌절된다. 전임 정권의 파탄적 국정운영으로 개혁의 당위를 획득한 이번 정권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

먼저 최근 청와대 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이 논란이다. 비위 의혹에 휘말려 감찰반에서 쫓겨난 검찰 수사관이 자신이 작성했던 첩보를 보수언론에 제공하면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 사람의 자료를 받아 보도하면서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을 했다는 듯, 안 했다는 듯, 치고 빠지며 말장난을 반복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제2의 박관천 사건’이란 이름까지 붙여가며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공세를 펴고 있다.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는 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태의 본질적 문제가 무엇인지는 지금 짚어보는 게 어렵지 않다. 18일 청와대는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전 정권이 국정농단 사태로 무너졌으니 만큼 감찰의 정당성을 지키는 것을 특별히 중시하고 있다는 취지의 해명일 것이다.

그런데 폭로를 이어가고 있는 검찰 수사관이 작성했다는 첩보를 보면 적어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실 소속 특별감찰반의 감찰 대상이나 범위에 관한 모호함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다. 대통령비서실 직제의 관련 조항에 따르면 특감반의 감찰 대상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행정부 소속 고위 공직자이거나 공공기관이나 단체 등의 장 및 임원, 대통령의 친족 및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자 등으로 정해져 있다. 보수언론에 보도된 첩보 보고서에는 참여정부 관계자 등의 대상으로 감찰을 진행한 정황이 나타나 있다. 감찰 대상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불가피한 대목인 것이다.

물론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치면 된다. 청와대는 지난 14일 특감반 개편을 공식화하고 관련 내규 등을 제정해 국무회의에서 처리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청와대는 문제의 수사관이 자신의 비위 의혹이 드러나 중징계를 받을 위기에 처하자 ‘물타기’에 나선 것으로 상황을 규정하고 있지만, 본인은 과거 정부에서도 해온 일을 그대로 했을 뿐이며 오히려 정부 여당에 가까운 인물들을 감찰해 밀려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사람이 논란이 발생했을 당시 데이터를 삭제하고 휴대전화를 제출했다는 등의 보도를 볼 때 청와대의 설명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이 5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특별감찰반 비리와 관련한 지시사항을 발표한 뒤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궁금한 것은 대통령 취임 1년 반이 넘는 기간 동안 특감반원이 과거의 방식대로 감찰 대상인지 여부가 불확실한 대상들에 대해 이런저런 첩보를 생산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냐는 거다. 물론 이 수사관이 전임 정부에서도 같은 일을 해왔다는 개인적 특성이 작용한 탓도 있다. 그러나 특감반장이나 윗선들이 ‘데스킹’을 통해 첩보를 통제하고 부적절한 경우에는 따로 경고를 했다고는 하지만 결국 기존 방식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당위를 말하는 것 외의 바람직한 운영 방법을 찾지 못한 것 또한 하나의 원인이 아닐까 싶다.

제도적으로 가장 명쾌해 보이는 해결책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설치해 현재 청와대가 갖고 있는 감찰 기능을 대신하도록 하고 따로 감찰반을 운영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이 정부가 지금까지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않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된다. 그런데 모두가 잘 알다시피 공수처 설치 등을 논의해야 할 국회 사법개혁특위의 논의는 기대만큼의 속도로 진도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사법개혁특위는 지난달 1일에야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고 내년 4월 임시국회에 이르러야 사법개혁에 관한 대략적인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검경수사권 조정 등에 있어 관계 기관들의 이견이 여전히 조정되지 못하고 남아있기 때문에 시간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 내의 특감반 등은 이런저런 제도적 보완에도 불구하고 다분히 임시적인 형태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가 드러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정부도 전임 정부와 크게 다를 것이 없으며 모두가 ‘똥 묻은 개’들일 뿐이라는 냉소적 인식을 재생산하기보다는 공수처 설치 등의 사법개혁과제 추진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는 게 생산적일 것이다. 그러나 보수언론과 보수정치세력은 어차피 문재인 정권도 똑같으니 옛날 방식대로 하게 두자는 결론이 될 수밖에 없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니 좋게 평가할 수가 없다.

정치적 영역에서의 개혁은 그나마 이런 쟁점이라도 만들어 버텨볼 수 있지만 경제적 영역에선 속수무책이다. 정부는 지난 17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2019년 경제정책방향을 내놓았다. 거의 모든 언론이 “방향전환”이나 “속도조절”이란 단어를 붙여 해설에 나섰다. 분배의 정의를 실현한다거나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경기를 활성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개혁을 내세우는 정부라고 해서 성장과 관련한 정책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경기활성화를 포기해야 한다고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번에 내놓은 정책 방향이 정권의 로드맵 중 어디에 해당하며 어떤 정책목표의 달성을 의도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개혁을 추진하려 했으나 부작용 문제만 지적이 되니 애초의 해법으로 돌아가자는 얘기로 보일 정도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와 같은 사람들이 이런 지적을 하고 있다. 전성인 교수는 18일 KBS1라디오에서 정부 발표에 대해 “‘내후년에 총선이 있구나, 이 정책은 공무원이 만들었구나’하고 생각했다”며 “‘옛날에 했던 얘기들은 그냥 한번 해본 거였어, 실제로 경제 활성화하려면 역시 투자 활성화해야 돼’, 재벌한테 ‘너희 초고층 빌딩 지어, 우리가 필요한 규제 완화 우리가 다해줄게’라는 식으로 가버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총선 얘기가 나오는 건 경제정책방향에 포함되어 있거나 뒤를 이어 발표된 대책들이 이런저런 지원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의 지역 개발을 추동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내년도 민자사업 대상을 기존 53개 공공시설물에서 모든 공공시설물로 확대한 것과 민간기업 지원을 확대한 것은 이런 움직임의 핵심 방점이 어디에 찍히는지 보여준다. 단기부양을 위해 투자가 불가피한데 정부가 전부 감당할 수 없고 결국 기업에 의존하는 것밖에 답이 없다는 거다.

이것이야말로 기성의 문제 해결법이기 때문에 앞서 서술한 개혁이 좌절되는 전형적인 경로가 될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말할 수밖에 없게 됐다. 정권이 이런 걱정을 우습게 만드는 묘수 같은 것을 따로 갖고 있으리라 상상하긴 어렵다. 결국 예정된 결론으로 가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개혁의 좌절은 정권의 운명뿐만이 아니라 한국 정치 전반을 다시 한 번 퇴행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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