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청와대와 전직 청와대 특별감찰반 김 모 수사관의 진실공방이 점입가경이다. 비위 수사관의 폭로와 청와대의 미꾸라지 운운하는 감정적 대응이 벌어졌다. 언론은 의혹을 낱낱이 밝히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청와대 전경. (연합뉴스)

지난달 특감반 소속 김 수사관이 경찰 수사에 개입하려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를 찾아가 경찰이 수사 중인 '공무원 뇌물 사건'의 진행 상황을 문의했는데, 뇌물사건의 피의자인 건설업자와 김 수사관이 지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청와대는 공직기강 쇄신을 이유로 '특감반 전원교체'라는 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전원교체의 배경이 김 수사관의 비위가 아니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감반 직원들이 친목을 도모한다며 근무시간에 '골프 회동'을 가진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 같은 의혹이 불거지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야권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조 수석을 재신임 했다. 문 대통령은 조 수석에게 "청와대 안팎의 공직기강 확립을 위해 관리체계를 강화하는 한편, 특감반 개선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비위 당사자로 지목됐던 김 수사관이 언론에 자신의 정보활동 내용을 폭로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김 수사관은 여권 인사들에 대한 첩보 보고서를 작성했다가 청와대의 눈 밖에 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수사관은 자신이 작성해 보고했던 보고서를 일부 언론에 공개했다. 실세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우윤근 주러시아대사가 채용청탁의 대가로 1000만 원을 수수했다는 첩보 보고서다. 김 수사관은 이 보고서가 조국 수석을 거쳐 임종석 비서실장에게까지 보고됐다고 폭로했다.

청와대는 발끈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이례적으로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리고 있다"며 "곧 불순물은 가라앉을 것이고 진실은 명료해질 것"이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는 임종석 실장은 이 보고서를 보고 받은 바 없다고 해명했지만, 우윤근 대사는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임 실장의 질문을 받아 해명했다고 말했다. 이후 청와대는 우 대사의 비위 첩보는 검찰 수사에서 이미 혐의가 벗겨진 사항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사안은 검찰의 수사 대상이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비위 혐의로 (김 수사관에 대한) 감찰이 진행 중이고, 수사로 전환된 전직 특감반원이 자신의 비위 혐의를 덮기 위해 일방적으로 주장한 내용을 언론이 여과 없이 보도하는 상황에 대해 강력히 유감을 표한다"며 "전직 특감반원 김 수사관은 이미 2018년 8월에 부적절한 행위로 경고를 받은 바 있고, 이번에 새로운 비위 혐의가 드러나 복귀한 것이 명백하다"고 말했다.

좀 더 객관적 정황이 밝혀져야겠지만, 비위를 저지른 전직 특감반원의 폭로나, 청와대의 감정적이고 부적절한 대응방식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매한가지다. 결국 이 논란을 종식시킬 방법은 사건의 진상이 명명백백히 밝혀지는 것뿐이다.

▲18일자 중앙일보 사설.

18일자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김 수사관이 폭로한 첩보 보고서 목록에는 외교부 간부들의 정보 유출 감찰 건은 물론, 전직 총리 아들의 개인사업 현황, 개헌에 대한 각 부처 동향, 민간 은행장 동향 등 불법 소지가 큰 정보 수집까지 망라돼 있었다"며 "이게 사실이라면 결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촛불혁명 정부를 자처하는 현 정권에서도 무분별한 사찰이 계속되고 있었다면 민주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박근혜 정부 2년 차 때 이른바 '십상시' 사건이 터졌을 때와 비교해 봐도 이번 사태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은 이율배반적"이라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가장 아쉬운 것은 청와대의 위기대처 능력이 아마추어리즘의 극치라는 점"이라며 "수사관 한 명의 폭로에 청와대의 비서실장, 홍보수석, 민정수석, 대변인이 줄줄이 나서서 집중포화를 퍼붓는 모습은 볼썽사납다"고 꼬집었다. 중앙일보는 "지금이라도 청와대는 민간인 사찰이 현 정부에서도 되풀이된 것 아니냐는 우려를 귀담아듣고 원점에서부터 진상 규명에 나서야 한다"며 "사건의 총체적 진실을 신속히 밝히는 것만이 정도"라고 말했다.

▲18일자 한겨레 사설.

한겨레도 사설에서 청와대가 투명하게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김 수사관의 폭로 의도가 석연치 않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청와대도 법적 조처와 별개로 대응이 적절했는지 돌아보고 의혹을 투명하게 밝히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에서 어떤 경우든 비리 의혹에 눈감거나 사찰 활동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각오로 내부를 다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인사 검증과 특감반 활동 등에서 실수가 없는지도 따지고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 대사 비리 의혹에 대해 '다 해명됐다'며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는 식의 감정 섞인 대응으로 반발과 억측을 증폭했다"고 지적했다.

▲18일자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도 "일견 1년도 넘게 작성한 첩보 때문에 쫓겨났다는 수사관의 주장에 의심이 가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전직 감찰반원의 이런 폭로에 '미꾸라지' 운운하며 인신공격성 막말로 맞대응하는 청와대도 민망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이어 "공직기강의 중심에 서서 모범을 보여야 할 민정수석실이 되레 진실공방에 휘말려들었으니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김 수사관과 청와대 주장을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은 피할 수 없게 됐다"며 "김 수사관 주장이 일방적이라 하더라도 청와대 해명에 석연치 않은 구석도 있다. 민간인 정보 수집이 업무 영역에서 벗어나 폐기했다면, 그 다음부터는 하지 못하도록 분명히 지시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시중에선 이번 일을 놓고 박근혜 정권 시절 '정윤회 문건'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며 "전정권 청와대는 '지라시에나 나오는 얘기'라며 깔아뭉갰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지금의 청와대는 달라야 한다"며 "도대체 청와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자초지종을 시민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