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청년 노동자의 가방 속 컵라면. 그것도 미처 먹지도 못한 채, 남겨진 유품처럼 다가오는 라면은 서글픔으로 각인되어간다.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아들들이 그렇게 다시 위험의 위주화 속에 희생됐다. 노동의 신성성은 사라진 지 오래다. 효율성을 내세워 극단적 수익에만 목을 매는 자들은 수익의 극대화를 외친다. 자본만 앞세우는 자들이 득세하는 세상 속에서 더불어 사는 세상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많은 이들은 천민자본주의가 일상이 된 대한민국 사회가 달라지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력의 일부가 바뀐다고 그 못된 시스템이 하루아침에 바뀔 것이라는 기대는 무모하다. 오랜 시간 투쟁을 해서 바로 잡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기득권 집단이 구축해놓은 시스템은 단단하다.

공공운수노조는 이달 11일 새벽 충남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 9·10호기에서 운송설비점검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김용균(24) 씨의 유품을 15일 공개했다. [공공운수노조 제공=연합뉴스]

보수 세력들의 집요한 공격. 보수 언론들은 여전히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그 길로 가라 요구하고 있다. 다른 언론들은 기계적 중립을 외치며 보수 언론의 프레임에 빠져 있는 경향은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는 한다.

재벌 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 취업해 일하라며 청년들의 구직에 대해 비난하는 기성세대들이 많다. 실제 그 방법이 답이다. 재벌이 아니더라도 일할 곳은 찾으면 존재하니 말이다. 하지만 청년들이 쉽게 중소기업을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 시스템에 큰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 산업화 시대, 일만 열심히 하면 살 수 있었던 시절과는 다르다. 그렇게 변하는 사회에서 과거를 앞세워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만큼 우둔한 일은 없다. 사다리 걷어차기가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처음 발을 들인 직업이 남은 삶을 좌우한다. 신계급 사회는 이미 공고해지고 있다. 돈이라는 새로운 신앙에 몰입한 사회는 돈으로 줄을 세웠다. 돈은 공평함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 돈의 특성은 사회의 불평등을 극대화 시킨다.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라면의 정치경제학' (보도화면 갈무리)

뉴스룸 [앵커브리핑]은 라면을 언급했다. 왜 이 시점 라면을 이야기하는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1963년 라면이 처음 세상에 나오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이 신기한 인스턴트식품은 한국 사회의 식문화를 바꿔 놓았다. '라면으로 보통 끼니를 때운다'는 '라보때'라는 신조어가 태어나며 '라면의 정치경제학'은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70~80년대 산업화가 한창인 구로공단에서 시작된 배고픈 청춘들의 유행어는 잔인하게도 2018년을 살아가는 현재도 크게 변한 것이 없다.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처음 라면이 세상에 알려진 시대와 마찬가지로 흥미로운 유희거리로 남아 있기도 하지만, 많은 청춘들은 '라보때'의 서글픈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시인의 라면 예찬은 그나마 애정을 담았다는 점에서 헛헛함을 조금 줄여줄 수는 있다. 하지만 소화도 잘 되지 않은 라면 면발에 찬밥을 말아 허기를 채워야 했던 노동자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노동자들은 여전히 허기지고 힘겹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2년 전 구의역에서 아직 10대였던 김 군의 가방 속 먹지도 못한 컵라면 하나. 그리고 현재 태안 화력발전소의 또 다른 김 군의 가방에도 컵라면이 존재했다. 그들의 가방에는 왜 컵라면이 있어야 했을까? '라보때'의 역사는 그렇게 청년 노동자들의 삶에 여전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11일 새벽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설비점검을 하다 숨진 채 발견된 김용균(24)씨가 사고가 나기 열흘 전인 1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노동조합 캠페인에 참가해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는 피켓을 들고 인증사진을 찍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 노조 제공=연합뉴스]

'위험의 외주화'가 일상이 되면서 하청에 재하청을 받는 업체에 소속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없애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이어져야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개인의 노력을 탓하는 사회 분위기는 결국 수많은 '라보때'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 뿐이다.

대한민국의 경제 위기는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그리고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지 않는 한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 라면이 누군가를 사지로 내미는 '라보때'가 아니라 신기하고 흥미로운 먹거리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노동시장 전체가 새롭게 변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를 현명하게 넘기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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