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빅 이슈'를 판매하는 이들이 있다. 오래된 풍경이다. 하지만 다시 낯설게 다가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사라져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991년 영국에서 처음 시작한 스트리트 페이퍼인 '빅 이슈'는 노숙인의 자립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프로젝트였다.

단순하게 성금을 모금해 도와주는 차원을 넘어 스스로 일을 해서 자립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노동을 통해 자립의 기반을 쌓게 하는 것은 노숙인들에게 다시 자존감을 살려준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도 없게 된 그들에게 노동의 신성함과 함께 스스로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빅 이슈'는 중요하다.

세밑이면 많은 이야기들이 특집처럼 등장하고는 한다. <거리의 만찬>은 그렇게 거리에 있던 이들을 찾았다. 아무리 추워도 정해진 날 그 장소에 그들은 빨간 조끼를 입고 빅 이슈를 판매한다. 웃는 얼굴로 열심히 사는 그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KBS1 <거리의 만찬>

우리 사회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거리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다. 잠깐 등을 펴고 누워 잠잘 수 있는 곳조차 없는 이들은 그렇게 거리에서 새우잠을 잘 수밖에 없다. 노숙인에 대한 편견은 뿌리 깊게 내려져 있다. 국내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사회적 약자인 노숙인들만 괴롭히는 청소년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기도 했었다.

일본의 사례는 이내 우리 사회에서도 발현되기 시작했다. 얼마 전 개인적인 문제로 화가 난 남자가 작고 힘없는 여성 노숙인을 잔인하게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만들었다. 참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제발 살려 달라는 요청에도 사망했는지 확인까지 한 이 잔인함에 많은 이들은 분노하기도 했었다.

노숙으로 가기 직전 그나마 안락한 보금자리를 가진 이들의 마지막 터전은 고시원이다. 새로운 쪽방촌으로 변해가고 있는 고시원들은 더는 공부를 하는 공간이 아니다. 보증금 없이 최소의 비용으로 바람과 비를 피해 잠을 잘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고시원도 안전지대가 될 수는 없다.

얼마 전 고시원 화재로 인해 많은 이들이 사망했다. 낡고 허름한 공간. 그 공간에서라도 살 수 있어 행복했던 이들에게는 잔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취약 계층이 여전히 방치되어 있다. 자신의 나태함보다는 어쩔 수 없이 내던져진 이들이 대다수다.

노숙인들에 대한 편견은 많다. 물론 모든 것이 편견이라 할 수는 없다. 실제 술에 취해 있고 행패를 부리는 이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노숙인들이 그런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은 그들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이유가 되고 있다. 한 단면만 보고 전부라고 오해하는 일은 그렇게 노숙인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을 뿐이다.

많은 이들은 '빅 이슈' 구매를 통해 자립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을 응원한다. 하지만 일부는 여전히 그들을 향해 거친 말들을 쏟아내기도 한다. 모멸과 멸시가 일상이 되어버린 말도 안 되는 세상. 그저 돈이 없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 된다는 것은 졸렬하다.

'빅 이슈'를 파는 이들은 노숙자가 아닌 '일하는 시민'이다. 자신이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그들은 자립에 성공하기도 한다.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이를 통해 평범한 일하는 시민의 지위를 누린다. 대접을 받은 기억도 누군가에게 대접할 기회도 없었던 그들이 준비한 홈리스의 만찬은 그래서 특별했다.

8년 동안 '빅 이슈'를 팔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집을 가지게 되었다. 열심히 노력해 얻은 집. 남들에게는 별것 아닌 초라한 집일지 몰라도 그들에게 그 공간이 주는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처음으로 그 공간에 들어선 순간 노숙인이 느낀 감정은 별것 아니었다.

발 펴고 편하게 잘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즐거움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집의 의미와 가치를 노숙인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해보게 되는 순간이다. 대단할 것도 없는 밥상이지만 자신이 누군가에게 대접하는 기회를 갖는 것 역시 대단한 일이었을 듯하다.

누군가에게 대접도 받아 본 기억이 없고 그런 대접을 할 수도 없었던 그들이 차린 만찬. 진정한 의미의 <거리의 만찬>은 노숙인의 집에서 차려졌다. 대단하지 않아도 그렇게 많은 이들과 함께 즐기는 저녁. 자신의 공간에 누군가 찾아오고, 그런 그들을 위해 정성껏 준비한 식사를 함께 나누는 것. 그런 행위를 그들은 꿈꾸었을 것이다.

8년 동안 빅 이슈를 판매하며 소중한 자신의 공간도 가질 수 있었던 노숙인의 다음 목표는 국가에서 지원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것이었다. 보일러 자격증을 따서 수리공으로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 이제는 빅 이슈 판매자가 아닌 구매자가 되고 싶다는 꿈이 어쩌면 모든 노숙인들이 가고 싶은 길일지도 모르겠다.

'새우잠을 자면서도 고래꿈을 꾼다'는 소제목은 너무 그들에게 잘 맞는 표현이었다. 누군가에게 대단할 것도 없는 그들의 삶.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의 모습이 있다. 사회에서 내쳐진 이들에게도 도전의 기회가 주어지고, 그렇게 다시 사회의 일원이 되어가는 과정.

그 일을 담당하고 있는 '빅 이슈'는 그들의 자립을 돕고 있다. 형색이 남루하다는 이유로 사무실마저 옮겨 다녀야 하는 힘든 일이지만, 그들은 그렇게 묵묵히 걷고 있다. 대단하게 도와 달라 외치지 않는다. 열심히 만든 잡지를 사 달라는 것 외에는 없다. 그들은 그렇게 편견과 멸시에서도 열심히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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