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KTX 탈선 사고는 우리가 이미 세월호 참사를 통해 겪은 안전에 대한 트라우마를 다시 자극한다는 점에서 쉽게 보아 넘길 수 없는 사건이다.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하고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데 정치권과 보수언론은 각자 자신들에게 유리한대로 사태를 해석하고 황당한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이는 정책적 차이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정파적 유불리만 따지는 모습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큰 문제다.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은 ‘기강해이’를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정치권 출신의 낙하산 사장이 노동조합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정책만을 추진하면서 코레일 직원들의 통제가 불가능해졌고 이게 사고의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보수언론들은 연일 이런 내용의 기사와 사설을 지면에 싣고 있다. 과연 이런 주장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11일 사퇴 의사를 밝힌 오영식 사장을 ‘낙하산’으로 평가하는 게 무리인 것만은 아니다. 또 오영식 사장 체제에서 ‘일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SR(구 수서고속철도) 통합 등 노동조합이 요구해 온 정책이 부분적으로 추진돼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사고의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이 논리적으로 가능한 것일까?

사고의 기술적 원인에 대한 논의를 보면 이런 주장을 합리적인 것으로 평가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SBS 등 보도에 의하면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10일 강릉선 KTX 전 구간에 대한 안전개선권고를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에 긴급 발송했다고 한다. 탈선 사고의 1차적 원인은 선로전환기와 경고 신호를 연결하는 회선이 거꾸로 연결돼 있었기 때문인데, 해당 지점의 회선 도면에서부터 회선이 바뀐 것으로 돼 있었다는 거다. 11일 국회 국토교통위에서 강릉선 KTX 구간 선로전환 시스템을 한 업체가 납품한 사실이 드러났다. 때문에 전 구간에 대한 점검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내려질 수밖에 없다.

공식적 차원에서 원인을 더 추적해볼 필요가 있겠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로 보면 과연 노동조합에 편향된 회사 운영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오히려 이 대목에 대해서는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지적한 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동조합은 사고의 원인을 두 가지 차원에서 짚고 있다. 첫째는 평창동계올림픽 일정에 맞추기 위해 강릉선 KTX가 시일에 쫓기며 개통돼 제대로 된 점검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둘째는 선로의 건설은 철도시설공단이 운행은 코레일이 담당하도록 한 이른바 상하분리 방침이 문제라는 것이다. 철도시설공단이 시설업체와 계약을 해 강릉선을 건설했고 이후 신호 연동검사를 단독으로 수행한 뒤 코레일에 이를 인계했는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되지 않은 것은 코레일이 발주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시설물에 대한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사고 당시 현장에 출동한 인원이 세 명에 불과했고 그 중 신호를 점검하는 전문 인력은 한 명에 불과했다는 사실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코레일 소속의 강릉선 신호 유지 보수 인력은 애초 120여명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됐지만 예산 부족을 이유로 90여명만 충원됐고 약 40킬로미터에 이르는 구간을 한 사람이 담당해야 하는 체계가 된 게 문제라는 것이다. 선로는 늘어나는데 정비 예산이 줄어 인력 부족이 심해지고 있다는 점은 노동조합이 단골로 지적하는 문제이다.

이렇게 보면 노동조합 때문에 기강이 해이해진 게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회사가 노동조합의 목소리를 듣지 않아 생긴 문제에 가깝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보수세력이 주장하는 대로 낙하산이 아니라 전문성 있는 인사가 경영을 책임지도록 해야 했다고 본다면 노동조합의 경영 참여를 좀 더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놔야 할 것이다. 앞서 봤듯 코레일 내의 전문성 있는 인력들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노동조합에 있고, 이들은 입을 모아 선로 정비 등에 대한 코레일의 직접 관리와 인력 충원을 주장하고 있다.

오영식 사장은 사퇴의 변을 밝히며 사고의 원인을 나름 성실하게 짚었다. 공기업 선진화라는 미명 하에 추진된 대규모 인력 감축과 과도한 경영합리화 및 민영화, 상하분리 등의 문제가 방치된 게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당 일각에서는 특히 ‘공기업 선진화’에 초점을 맞춰 전임 정부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전임 정부가 추진한 공기업 민영화 정책이 사고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공기업 민영화는 여당의 전신인 국민의 정부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사고의 구조적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상하분리는 철도공사 민영화를 전제로 논의되고 추진되었다.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이 분리돼 있는 현재의 체제가 완성된 것은 참여정부 시기인 2004년이다. 일부 경제신문 등은 이번 사고가 공기업 체제에서도 충분히 안전이 도외시될 수 있는 사례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으나 이런 진단은 완전히 틀렸다. 공기업을 효율화 하기 위한 민영화를 전제하고 추진한 정책이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 적어도 이 점에 있어서는 보수세력이나 오늘날의 민주세력 모두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한쪽은 노조 탓이라고 하고 또 한쪽은 전임 정부 책임이라고 하는 건 정파적 이득을 둘러싼 수 싸움에 불과하다. 정치권과 언론이 유리한 자리를 잡기 위하여 프레임 만들기에 열중하는 것은 실제 일상에서 위협을 느끼는 시민과 노동자의 눈으로 보면 그야말로 한가한 탁상공론에 불과한 일로 보일 뿐이다.

최근 이어지는 여러 사고를 놓고 ‘하인리히의 법칙’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 큰 사고가 일어나는 전조일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그러나 효율을 위해 안전을 희생한 결과로 사람이 목숨을 잃는 일은 이미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협력업체 직원 김 모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채 발견된 일도 이 중 하나이다.

김 모씨는 협력업체 직원으로 밤에 혼자 일하다 변을 당했다. 심지어 시신이 발견되기 까지 5시간이나 걸린 걸로 추정된다고 한다. 숙련도가 높지 않은 노동자를 혼자 위험한 작업에 투입한 결과이다. 협력업체에서 중대 재해가 3회 이상 발생하면 이후 입찰에서 탈락되기 때문에 사망 사고를 은폐하려던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미래의 위험을 외주화하고 실제 사고가 일어나면 협력업체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효율추구’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말했듯 이미 이런 일은 일상이 되어 있다. 반복되는 비극 앞에서 우리는 오히려 무감각해지고 있다. 근본적 구조를 바꾸기 위한 과감한 투자와 효율을 안전에 우선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에 우리 사회가 합의할 때이고, 정치와 언론은 이를 이뤄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 정치적 효과를 계산하며 장난을 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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