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봄 A대학교 법대 대형 계단강의실. 학생들이 술렁인다. 뒤쪽에 선 내게 시선이 모인다. 한국근현대사 교양시간이었다. 종이에 적어두고 고쳐가며 여러 날 날카롭게 다듬어 온 의문을 정연하게 쏟아냈다. 말을 마치고도 채 삭지 않은 흥분에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고작 스무 살짜리가 할 법한 질문은 아니라는 듯 교수님도 신기해하셨다.

법학과와 철학과 1학년으로만 가득 찬 교실에는 첫 수업부터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1등부터 꼴등까지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오랜 시간 경쟁해온 청소년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 순위에 맞춰 전공을 선택했다. 비록 같은 학교를 다녔지만 법대생과 철학과생의 입학성적은 달랐다.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과 친구들은 알게 모르게 주눅 들어 있었다. 더 낫다고 믿는 대학 또는 원했던 전공을 선택 못한 아쉬움과 패배감이 짙었다. 며칠을 벼르다 선생님에게 야심차게 던진 질의는 사실 법대 새내기들을 향해 있었다. ‘나도 너네만 못하지 않아!’라는 치기어린 승부욕이 내면에 작동했다. 숨겨진 열등의식의 발로다.
제 2전공으로 법학이나 경영학을 고르고서 교과서 겉장에 법학과 또는 경영학과 몇 학번 아무개라고 적는 동기들이 있었다. 또 심지어 몇몇은 4학년 때 졸업앨범 제작자를 찾아가 사정해서 자기 사진을 제 2전공 쪽으로 슬쩍 옮겼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한편에선 농어촌특례로 들어온 동기를 깔보거나 편입생들을 학벌 세탁하러 왔다고 매도하기도 했다.
법대나 경상대 학생들도 그런 심리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시 수능을 치러 상위권 학교로 가기기도 하고, 자기보다 낮은 점수로 입학한 인문대 학생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사법시험이나 공인회계사 합격자수를 근거로 온라인 게시판에서 다른 대학 학생과 서로 내가 낫다며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복수전공 문호가 넓어지면서 많은 문과대생들이 기업에서 선호하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그래서 수강신청 기간마다 학생들 사이에 갈등이 벌어진다. 타과생들이 너무 몰려서 수업듣기가 어렵다는 게 경영학과생들의 드러난 불만이다. 그러나 본질은 취업에 유리한 경영학사 학위를 너도나도 따다보니 채용시장에서 자기들이 가졌던 몸값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거기엔 나보다 공부 못했던 애들과 같은 대우 받는 것이 공정하지 않다는 의식이 잠재한다. 학점경쟁에서까지 밀리다보면 입학성적에 더 집착한다.
2010년 B대학교에 편입해서 바라본 대학가의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지방 사립대 취업준비생들이 겪는 서러움이 상당하다. 그래서인가 서울 소재 대학에 못 갔다는 패배감이 캠퍼스에 팽배했다. 의학 계열과 그 외 학과생들 사이에 놓인 정서적 단절도 생각보다 심했다. 그 와중에 어떤 소방행정학과생이 다른 과 학생들을 낮춰본다는 얘기를 듣고선 그야말로 어이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길들여진 뿌리 깊은 서열의식과 그로부터 비롯한 열등감이나 우월감의 굴레에서 못 벗어난 채 그대로 나이든 젊은이들이 사회로 쏟아진다. 학벌 좋은 사람을 보면 위축되고 아닌 사람을 보면 우쭐한다. 소위 명문대 출신들은 카르텔을 형성해서 고급정보를 공유하고 끼리끼리 밀어준다. 유능한 비주류들을 불합리하게 차별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난다. 누군가는 공채를 통해 정규직이 되고 다른 누군가는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하자 정규직들이 반발한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같은 지위와 처우를 주자는데 왜 그럴까? ‘나는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서 이 자리에 왔는데 너는 아니지 않느냐. 어떻게 너와 내가 같으냐?!’ 이런 속내가 있는 건 아닐까?
동일한 업무를 하면서도 정규직이니 비정규직이니 하는 고용형태에 따라 딱지를 붙여 차별하는 것이 당연한가? 시험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경로를 통해 동등한 능력을 갖춘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옳은가? 불합리한 차별제도에 안주하며 한 줌도 안 되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속 좁은 모습은 아닐까? 그런 자세로 사는 것이 인간의 길인가?
달빛은 세상을 널리 비추면서 바다나 큰 강물, 실개천, 작은 도랑에 빠짐없이 드리운다. 만 개의 호수에 만 개의 달이 보이는 이유는 밤하늘에 뜬 달은 비록 하나지만 달빛이 물을 대하는데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이 달을 닮아 모든 이들을 대할 때 차별하는 마음이 없어야 비로소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비굴함과 오만에 휘둘리지 않고, 강자에게 배워 강자로 성장하고 약자를 가르쳐 강자로 이끄는 온전한 나가 되지 않을까?
달 밝은 날, 나는 그 빛을 돌이켜 내 마음속 어둠을 비춘다. 그리고 기도한다. 너와 나 우리네 가슴에 차별심이 다하는 그날을 손잡고 이루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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