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오늘 죽어도 여한 없는 시원한 드라마 <죽어도 좋아> (11월 7일 방송)

KBS 2TV 수목드라마 <죽어도 좋아>

원칙만을 고집하고 배려 따위 없는 상사에게 “존재 자체가 죄. 사형!”이라고 외치며 버튼을 누르자, 상사가 앉아있는 의자가 튀어오르면서 상사는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상사가 넘어진 그곳에 불길이 치솟으면서 화염에 휩싸였다. 부하 직원은 화통하게 웃으며 “죽어버려 개진상”이라고 외쳤다.

이루다(백진희) 대리가 백진상(강지환) 팀장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며 처형하는 모습은 KBS2 <죽어도 좋아>의 첫 장면이었다. 물론 꿈이었지만, 이렇게 시원한 오프닝이 있었을까 싶다. 가슴에 사표 하나쯤 품고 다니는 직장인들에게 이만큼 로망을 채워주는 오프닝은 없었을 것이다.

“좋아요. 어디 할 말 다 해봅시다. 나라에선 낳으라고 지랄이지, 회사에선 일보다 애가 중하냐고 염병이지. 뭘 어쩌라는 건데. 가사노동에 대한 잘못된 인식? 전업 가사인들의 노동 가치를 폄하해? 이게 왜 방향키 제대로 못 잡은 개소리입니까? 그게 죽을 둥 살 둥 유치원 다니는 첫째에 배속 둘째까지 책임지는 최 대리님한테 할 말이냐고요! 맨날 애들은 엄마를 더 좋아하니까 하면서 밖으로 나도는 남편들, 이 건물에도 200명은 족히 있을 사람들. 강당에 싹 다 모아놓고 들려줘야 할 주옥같은 말씀 아니겠냐고요! 에??? 입이 있으면 말해봐”

이번엔 꿈이 아니었다. 워킹맘 동료에게 퇴사를 권고하는 백진상 팀장을 향해 이루다 대리는 아웃사이더도 도망갈 속사포 대사를 내뱉었다. 이토록 강렬한 엔딩 대사는 없었다.

KBS 2TV 수목드라마 <죽어도 좋아>

<죽어도 좋아> 첫 회의 오프닝과 엔딩은 직장인들의 로망을 채워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현실 직장인들이 첫 회만 보고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상사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는 꿈부터 실제로 상사의 멱살을 잡고 할 말 다 하는 현실까지 오프닝과 엔딩이 수미상관을 이루면서 통쾌함을 선사했다.

팀원을 감싸기는커녕 팀원들의 잘못만 지적하고 자신은 발을 쏙 빼는 얄미운 백진상 팀장. 이루다 대리는 마음속으로 백진상 팀장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누군가가 그 소원을 들은 것일까. 회식이 끝난 후 백진상은 갑자기 트럭에 치어 죽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루다의 꿈이었다. 그리고 다시 그날이 반복되었다.

처음엔 트럭에 치어 죽던 백진상이 다음 날에는 오토바이에, 또 그 다음 날에는 맨홀 뚜껑에 빠져 죽었다. 백진상의 죽음을 보다 못한 이루다는 그의 죽음을 막기 위해 경찰서 유치장에서 하룻밤 보호하기로 하지만, 그곳에서마저 경찰서 화분에 머리를 맞아 죽는다. 상사의 죽음을 통쾌하게 다루면서도 무겁지 않게 굉장히 속도감 있게 밀어붙이는 것이 첫 회의 관전 포인트였다. 이루다의 수차례 반복되는 꿈과 백진상의 죽음이 휘몰아치면서 시원함과 코믹함이 밀물과 썰물처럼 교차했다.

그렇다고 가볍기만 한 오피스 드라마는 아니었다. 아이가 열이 나고 아프다는 어린이집의 연락에도 쉽게 일터를 뛰쳐나오지 못하고 전화로 남편과 다투는 워킹맘 최민주(류현경) 대리를 비롯해 “매일 매일이 지겨운” 직장인들의 애환을 자연스럽게 녹여 냈다. 언뜻 보면 이루다 혼자 고군분투하는 것 같았지만 알고 보면 모든 사람이 그렇게 고군분투하면서 오늘 하루가 무사히 끝나기만을 기다린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 주의 Worst: 이상한 것을 넘어 상식 없는 나라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11월 8일 방송)

MBC 예능프로그램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이쯤 되면 ‘생각의 차이’가 아니라 ‘개념의 유무’ 문제인 것 같다. 지난 8일 방송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오정태 부부 편에서는 아내 없이 오정태가 혼자 집에 있을 때 장모님이 방문한 에피소드가 방송됐다.

오정태는 하필 하루 딱 쉬는 날, 그것도 아내가 없는 시간에 방문한 장모님이 썩 달갑지 않았다. 그러나 미처 전해 듣지 못한 장모님의 방문이라도 일단 오셨으면 ‘잘 오셨다’, ‘앉으시라’, 혹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다’ 같은 형식적인 인사라도 할 법한데 계속해서 왜 말을 안 해줬는지 아내를 원망하고 장모님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딱 하루 쉬는 날인데”라는 말은 장모님이 쉬는 날 찾아온 불청객이라는 뜻처럼 들린다.

물론 남편도 아내 없이 장모님과 단 둘이 있는 것이 불편할 수 있다. 문제는 장모님께 대놓고 불편함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과거 오정태의 아내가 남편 없이 혼자 있을 때 시어머니가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아내는 무조건 부엌에 있었다. 딱히 집안일을 하지 않더라도 하다못해 시어머니 옆에 서 있기라도 했다. 그러나 오정태는 말로는 불편하다고 했지만, 어쨌든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고 장모님은 설거지를 하고 오정태가 벗어놓은 옷까지 정리했다. 적어도 몸은 편한 상황이었는데 아내보다 더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MBC 예능프로그램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심지어 장모님에게 하는 말투를 보면, 이건 단순히 불편하다는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무례한 태도다. 장모님이 어깨가 아픈 딸을 걱정하면서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거 아니야?”라고 말하자, 오정태는 코웃음을 치면서 “집안일 하는데 뭐”라고 받아쳤다. 그까짓 집안일 하는데 어깨가 아프겠느냐는 뜻처럼 들린다. 그 와중에도 애써 웃으며 “집안일도 힘들다”고 딸 편을 드는 장모님에게 “얘는 왜 안 온대”라고 불편함을 너무 대놓고 드러냈다.

집안일을 폄하하고 집안일은 당연히 여자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오정태의 선입견은 자신의 아내뿐 아니라 모든 아내를 향해 있다. MBC 기상캐스터 이현승-최현상 부부 편에서 그런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남편 최현상이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할 땐 가만히 있다가, 아내 이현승이 임신 6개월 차인 사실이 드러나자 오정태는 “그럼 (남편이) 살림할 만하네”라고 거들었다. 그렇다면 아내는 임신을 해야만 남편에게 살림을 부탁할 수 있는 입장인 걸까.

자막은 장모님과 단 둘이 있는 오정태에 대해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정태”라며 안쓰럽게 표현했지만, 팩트는 이거다. 설거지도, 집 정리도, 식사 준비도 모두 장모님이 했다. 오정태는 단지 불편한 자세로 티비를 보거나 휴대폰을 봤을 뿐, 아무런 육체노동도 하지 않았다. 오정태가 살고 있는 곳은 이상한 나라가 아니라 ‘무례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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